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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Aug 27. 2024

키 작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EP.면접일기

지금의 회사에 오기 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2022년부터 몰아쳤던 면접은 정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 자신을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내 이야기들 중에서도 여러분들이 보고 ‘와, 이렇게까지 간절했구나.’ 하고 피식 웃게 될 만한 후기를 지금 들려주겠다. 


 나에 대해서 알겠지만, 나의 키는 159cm 후반, 160cm다. 참 애매한 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너무 작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에미렛항공, 쿠웨이트, 걸프 항공 등 중동의 항공사 키 제한이 160cm 임을 감안하고 바라보면 참 애간장을 태우는 키가 맞음에는 틀림없지. 


그래서 내가 항상 면접 때마다 한 짓이 바로 헤어 메이크업 샵에 가서 머리 뽕 안에 가채를 넣어가는 거였다. 가채? 맞다. 가채. 가채를 어떻게 머리에 넣어가는 건 지 궁금하다면, 전혁직 승무원들과 승무원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쪽머리를 만들 때 머리를 단정하게 묶는 용도로 사용하는 얇은 그물망이 있다. 그것을 어찌저찌 정성스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뭉쳐서 머리 뽕 안에다가 숨긴 뒤 잘 다듬는 방법. 바로 이것이 머리 뽕 안에 가채를 넣어가는 것이다. 


 중요한 팁은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 욕심난다고 너무 높게 뽕을 띄우면 반드시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쓸 때는 승무원들이 자주하는 왼쪽 혹은 오른쪽 가르마를 타서 하는 것이 아닌 문어 머리처럼 가르마 없이 앞으로 머리를 다 넘겨서 가채를 숨기는 것이 팁 아닌 팁이다. 


 머리에 가채를 넣는 것이 가능한가? 라고 한다면 ... 그렇다고 면접 관련 안내사항이나 주의사항에 ‘머리에 가채 심어서 걸리면 탈락’ 이라는 조항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간절했기에 나는 했어. 내 꿈인 걸.. 내가 정말 하고 싶은데 키가 작은걸 어떡합니까? 안되면 되게 하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낼 것. 이것이 나의 마음가짐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이 가채를 숨기는 나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면접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걸프항공이었다. 당시 걸프항공이 두 번째고 한국 채용으로 방문했던 시기였었고, 감사하게도 나는 또 면접의 기회를 얻게 되었지. 이에 간절함에 나는 또 머리에 가채를 심고 갔었다. 면접장에서 만난 여자 면접관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키가 매우 컸었다. 이미 큰 키에다가 힐 까지 신었으니 이건 뭐 키가 2미터는 족히 되는 거인 급이었다. 

면접 시작에 앞서 호텔에서 프레젠테이션으로 회사 소개 및 면접 소개가 진행되었었다. 그런 뒤, 당시 방문했던 거인 같던 여자 면접관과 한 남자 면접관이 옆에 컨퍼런스 룸에서 그루밍 체크를 할 테니, 지원 등록 순서에 맞춰서 대기 후 들어오면 된다고 말했었다. 그루밍 체크라 함은, 이 지원자가 키, 피부, 치아, 상처 등등 우리 회사에 일하는 지원 자격에 맞는 외형을 가졌는지를 체크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이 단계는 맨 처음부터 하기도하고, 맨 마지막 단계에 하기도 하고 회사마다 절차는 다르다. 


 나의 경우, 한 번도 그루밍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가채를 심던 날이면 항상 심장이 콩닥콩닥했지만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고, 다들 나의 깨끗한 피부에 대해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 뿐. 이번에도 잘 통과 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대기 줄에서 다른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루밍 체크를 마치고 돌아온 다른 지원자들에게 어땠어요? 라고 물어봤다. 


                       “머리 만져 보더라구요. 제가 키가 좀 작아보였는지, 머리 꾸욱 눌러봤어요.”


이 얘기를 듣자마자, 가슴이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점점 내려가는 느낌과 더불어 머릿 속에서 ‘와, 지읒됐다.’ 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앞선 지원자에게 그랬다면 나에게도 분명히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순간 예상치도 못한 시나리오가 펼쳐지자 나의 머리가 약간의 땀으로 점점 젖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만약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아냐, 혹시 몰라. 날 좋아해서 넘어갈 수도 있어. 원래 중동 항공사는 면접관 맘에만 들면 무조건 데리고 가려고 하잖아. 나도 그럴지도 몰라.’ 이런 긍정 회로를 일부러 돌려가면서 대기하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키를 재는 기계는 없었지만, 키 제한에 맞춰서 호텔 한 쪽 벽에 마스킹 테이프가 붙어져있었다. 


                             ‘안녕? 너 이름이 뭐야? 그래. 일단 신발 벗고 저 벽에 가서 서 있어.’ 


일부러 더 긴장을 늦추고자 활짝 웃었다. 그러고는 여자 면접관은 내 팔부터 다리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당시 여름이라서 모기에 많이 물린 상태였는데, 모기에게 뜯긴 내 다리를 보더니 그녀가 ‘모기에 많이 물렸네. 가렵지 않아? 한국에는 모기가 많지?’ 라면서 말을 건넸다. 그러고 나는 유쾌하게 면접관의 대답을 맞받아쳤었다. 


‘맞아. 모기가 많이 물었네.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아는데. 왜 그런지 아세요?’

‘아니, 잘 모르겠는데. 왜?’

‘제가 너무 달콤해서 그래요. 모기도 제가 좋은 사람인 걸 아는 거죠.’

 

그 옆에 서류 정리 중이던 남자 면접관과 여자 면접관은 내 대답에 모두 빵 터졌었다. 너 되게 재미있다며 그녀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한 눈에 봐도 느껴졌었다. 그래. 이대로 좋은 분위기만 갖고 간다면 나는 걸프항공 승무원이 됨에 틀림없다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 너 참 재밌다. 그래. 근데 너 머리에 뭐 넣은 건 아니지?’ 라면서 갑자기 내 머리를 두 손으로 꾸욱 눌러보는 야속한 그녀. 순간 여자 면접관의 표정이 굳어진 것이 보였다.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참 그 순간은 창피했던 일생일대의 순간 중 하나이다. 그녀가 큰 목소리로 뭐라 말은 안했지만, 그녀 역시 당황함으로 표정이 변하는 것은 한눈에 보였다. 역시 꼼수는 언젠가는 걸리는 법. 

결국 키를 재고 밖에 나가서 대기하고, 몇 시간의 시간이 흘러 모든 인원이 그루밍 체크를 끝냈었다. 그리고 끝내 번호가 불린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탈락이라는 쓰라린 서바이벌 인터뷰의 아픔을 가지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당연히 나도 포함이었고. 

키가 작아서 서러워서 살겠나.. 하면서 비참함에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엉엉 울었다. 키가 작은 게, 키가 작은 주제에 승무원을 꿈꾸는 게 죄는 아니지 않는가? 라면서 속상한 내 자신을 스스로 달래면서 집에 가 아빠에게 일찍 돌아온 딸은 또 떨어졌다며 말하고는 끼니를 대충 때우고 방에 처박혀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던 가슴 아픈 걸프항공의 추억은 여전히 나에게 씁쓸한 웃음을 지어주는 에피소드 중의 하나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나는 다른 항공사와 인연이 될 운명이었던 것인데, 당시에는 간절하다보니 많이 속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당시의 나의 뻔뻔함으로 면접관을 웃겼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내 재치가 꽤나 대단했다는 생각이다. 아픔으로 남은 걸프항공의 마지막 면접이었으나, 이 기세를 몰아서 나는 면접에서 더 뻔뻔하게, 그리고 여유로움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후부터 나는 더 이상 가채는 머리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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