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늦은 밤,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인도 한쪽에 쪼그려 앉아 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혼잣말을 하며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직업이 있어 보이지도, 학생 같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귀를 덮는 샛노란 머리, 두 사이즈는 커 보이는 흰 셔츠, 그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 슬랙스.
전체적으로 느슨하고 특별하지는 않은 옷차림이었지만, 기묘하게 눈에 띄었다.
도시의 소음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그에겐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단순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했다.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가 오는 날에도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고양이가 있든 없든,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러다 어느 날, 피곤에 찌들어 회식 후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길, 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고양이가 없나 보네요. 왜 매번 여기 계세요?”
그는 고개를 들고 짧게 대답했다. “그냥요. 재미가 없거든요.”
기묘한 대답이었다.
나는 묻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없는데요?”
그는 한참 시선을 멀리 두었다가, 조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요. 저는 늘 심심해요. 여기가 재밌어서 있는 건 아니고요.”
그의 말은 어딘지 날카로웠고, 표정은 비어 있었다.
“그보다... 누구세요?”
나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요. 맨날 이 자리에 있으니까, 궁금해지잖아요.”
그는 “그렇군요”라고만 했다. 귀찮다는 듯.
그 말투에 오기가 생겼다. 아마도 술기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 하는 분이에요?”
그는 표정 없이 되물었다. “그게 왜 궁금한데요?”
“궁금하니까요. 신경 쓰이니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사람이에요. 백수고, 스물일곱 정도.”
나는 물었다. “본인 나이를 ‘정도’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스물일곱이에요.”
그 말 끝, 그는 짧게 덧붙였다.
“그보다... 술 드신 것 같네요. 이제 가보는 게 어때요.”
나는 손을 허공에 올렸다. 어느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여름이어도, 비 오는 날은 쌀쌀하네요. 우산은 쓰세요.”
그는 표정 없이 말했다. “네. 다음번부터는요.”
그날의 나는, 인사도 없이 돌아섰다.
술기운이 가시고 나서야 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는 그런 말들을 했는지, 모두 후회가 밀려왔다.
그저, 이상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고, 잊혀졌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건, 가을이었다.
늦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저녁, 퇴근길의 나는 늘 그랬듯 익숙한 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공원을 가로지르던 순간, 그곳에서 문득 그를 발견했다.
예전과 똑같은 차림으로. 조용히, 벤치에 누워 있었다.
나는 어쩐지 반가웠다. 그렇게 몇 번밖에 보지 못한 사람인데도.
“오랜만이네요. 한동안 안 보이더니.”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누구시죠 저는 …기억 안 나는데요.”
“비 오던 날, 그때 말 걸었던 사람.”
“…아.”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죠. 오랜만이네요.”
그의 말투는 변한 게 없었다.
느리고, 건조했고, 선을 넘지 않았다.
“요즘은 왜 거기 안 와요?”
“네. 좀 질려서요. 눕지도 못하고.”
“그럼 여긴 누우려고 온 거예요?”
“그냥요. 여기, 누울 수 있으니까요.”
대답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나는 계속 물었다.
“근데… 그쪽은 원래 이렇게 살아왔어요?”
“어떻게요.”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백수가 그런거죠 뭐..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되는데요?”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사람은 다 그렇죠 뭐 상대 기분은 생각도 안하고 물어보고는 궁금하다는 이유라고.”
“그쪽도 사람인데요..? 그쪽은 사람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없어요.”
짧은 대답.
그의 얼굴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묘하게 거슬렸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벤치에 올려놓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