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그럼 오늘… 저랑 같이 술 마셔요.”
그는 날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네? 왜요? 제가 그쪽이랑요?”
“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요.”
그는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
“같이 먹을 생각없는데요. 그쪽한테는 금요일이라 신났을지는 몰라도 저한테는 그냥 지나가는 하루라서요”
나는 그 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술 한 번만 먹어줘요.
그럼 더는 귀찮게 안 할게요.
어차피 여기서 할 것도 없잖아요.”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쉰 뒤, 조용히 말했다.
“하아… 가요, 가.
대신 미리 말해두죠. 전 돈 한 푼도 안 낼 거예요.”
“네. 누워만 있는 사람한테 얻어먹을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나는 그를 한번 훑어보고는, 못 이긴 듯 웃었다.
“근데 그 셔츠랑 바지, 여러 벌 있는 거죠?”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짧게 말했다.
“그런가 보죠.”
“하여간…”
그렇게 우리는,
동네의 아주 작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낡았고, 벽엔 습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
손님은 우리를 포함해서 네 팀 정도.
그는 말없이 구석 자리에 앉더니,
메뉴판을 건성으로 훑어보다 말고
지난번 봤을 때는 없던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자세를 낮춰 천장을 올려다보고,
테이블 아래도 살폈다.
그리고 셔터를 몇 번 연달아 눌렀다.
찰칵, 찰칵.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쪽..백수라더니 무슨 사진작가 같은 건가요? 아니면 취미?”
그는 대답하지 않고 또 한 번 셔터를 눌렀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말했다.
“뭐라고요?”
나는 다시 물었다.
“사진작가예요? 프리랜서 같은 거?”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느리게 입을 열었다.
“아… 아뇨. 그냥 뭐, 비슷한 거 해요.”
“그렇군요. 대답하기 싫다는 거죠?”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요.
그냥, 그런 비슷한 거 한다고 보면 돼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술은 뭐 마실래요?”
“아무거나요. 그쪽이 먹고 싶다 했잖아요.”
“하아… 그래요. 그럼 소주나 마시죠.”
“네.”
주문을 마친 뒤, 나는 그를 슬쩍 쳐다보며 툭 내뱉듯 말했다.
“근데 그쪽은… 저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물었다.
“뭘 물어봐야 하죠, 제가?”
나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받았다.
“진짜 예의 없네요. 말이라도 좀 곱게 하던가.”
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요.
근데… 전 사람한테 궁금한 게 잘 없어요.”
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특이한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그 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조심스레 물었다.
“사람한테 궁금한 게 없다니…
그럼, 보통은 뭘 궁금해하죠?”
그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대답했다.
“뭐… 그냥요.”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또 ‘뭐 뭐’ 하시네요.
그래도 사진은 열심히 찍는 것 같은데 그런 거에 관심이 있나 봐요 사물? 풍경?
아까 사진 열심히 찍던데.”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천천히 말했다.
“네, 그런 건 좀 있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거든요.
내 기준에서 예쁘거나 신기한 게 있으면,
계속 시선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찍고,
나중에 다시 보고.
그게 좋아요, 저는.”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래도 사람이긴 하네요.
관심사 얘기하니까 말이 좀 늘었어요.”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약간 쑥스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아… 뭐.
좀 부끄럽긴 하네요.”
나는 잔을 쥔 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의외로 부끄러움을 잘 타네요? 평소에는 무슨 생각을 해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깜빡이더니, 조용히 말했다.
“작품 생각요.”
“작품 생각...? 신기하네요. 예술가들이나 하는 말 같아요. 역시, 그런 쪽 일 하시는구나.”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네. 뭐, 그런 거예요. 아까도 말했듯이, 비슷한 거 하고 있어요.”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작품생각이라니, 보통은 그런 말 하면 오글거리는데… 그쪽은 진짜 그런 사람 같아서 좀 납득돼요.”
그는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흉내 내기일 뿐이에요. 어차피... 쓰레기나 만들고 있는 거겠죠.”
그 말에 나는 잠깐 당황했다.
위로를 해야 할지, 그냥 흘려야 할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쓰레기라뇨. 본인이 만든 거잖아요. 아까처럼 '작품'이라고 불러야죠.”
그는 여전히 얼굴을 들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덧붙였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제대로 봐주지 못해요.”
그는 마지못해 웃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었다.
“그렇게 말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냥,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감상은커녕, 그냥 지나치기 바쁘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감상...? 혹시 전시 같은 것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