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1
우리는 좁고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쪽 벽에는 세월이 그대로 묻어 있었고,
느릿한 진동이 발끝을 간질였다.
“와… 이런 엘리베이터 처음 봐요.
진짜 옛날 영화에 나올 법한 느낌이에요.”
“말했잖아요. 오래된 건물이라고.
괜히 ‘모지코 레트로’라 부르는 게 아니죠.”
낡은 철제문이 열리자,
은은한 조명 아래로 식당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나무 바닥과 유리창 사이로
부드러운 향신료 냄새가 퍼져 나왔다.
카레 냄새였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안쪽을 둘러봤다.
“와… 너무 예쁜데요? 이런 데는 어떻게 찾았어요?
이 냄새, 카레죠?”
“네. 야끼카레 집이에요.
모지코 하면 역시 야끼카레죠.
저는 예전부터 카레를 좋아해서요.
미안해요, 메뉴는 제 맘대로 정했네요.”
“아뇨, 괜찮아요.
제가 못 찾은 건데요 뭐. 카레 좋아해요, 저도!”
그녀는 아이처럼 신나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게,
그 웃음이 내 안에서 낯설게 번져갔다.
“우리 창가 쪽 앉아요. 제발요, 여기요!”
“예예, 그러시지요.”
그녀가 뛰듯 걸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유리창 너머로는 항구 쪽이 내려다보였다.
오래된 선박과 붉은 벽돌 창고가 석양에 물들어 있었다.
그 빛이 그녀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어디선가 익숙한 공기가 흘러들었다.
이유도 없이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잠시 후,
뜨거운 철판 위로 김이 일었다.
치즈가 천천히 녹아내리고,
가장자리에서는 바삭한 소리가 났다.
노릇한 표면 위로 뿌려진 파슬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우와… 진짜 맛있어 보여요.”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을 꺼냈다.
“이건 자랑해야겠다. 진짜 예쁘게 나왔어요.”
“결국 또 사진이네요.”
“그쪽씨가 고른 데잖아요.
이 정도면 인증할 만하지 않아요?”
나는 대답 대신 철판을 바라봤다.
김이 흩어지고, 녹은 치즈가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공기 속에 남았다.
“자, 이제 진짜 먹어요.”
그녀는 숟가락을 들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치즈가 길게 늘어났다.
그녀는 입술을 데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작은 소리에 잠시 눈길이 갔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거뒀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내려놓았다.
뜨거운 향이 코끝에 닿았다.
묘하게 익숙한 냄새였다.
그녀가 불쑥 물었다.
“그쪽씨는 여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요?
한두 번 와본 것 같지가 않아서요.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되게 익숙한 느낌이랄까.”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글쎄요. 그런가요.”
“그렇죠?
아까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렇고,
길 설명하는 것도 그렇고… 왠지 그랬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카레를 한입 떴다.
식당 안 공기가 살짝 느려졌다.
창밖에는 햇빛이 거의 기울고 있었다.
그 빛이 유리창을 타고 번져,
식탁 위 그릇 가장자리를 천천히 덮어갔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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