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 되는 것은 어려워
최근의 난자채취는 계속 일정이 빠르게 잡혔다. 평균적인 예상일 보다, 그리고 과거의 나보다 빠른 감이 있었다. 평균과 그리고 과거의 경험과 다르면 대부분의 일반인은 불안함을 느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평균을 벗어난다는 건 언제나 이상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의사는 첫 진료날에 호기롭게 말했었다. 목표는 5일 배양 배아, 2개라고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어색한 듯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그전에 두 번 만났던 삼신할배라 불리던 의사도 말했었다. 5일 배양 배아와 3일 배양 배아는 임신율 자체가 다르다고. 그전까지는 3일 배양 배아여서 임신이 잘 안 되었던 거라고 말이다. 누가 그걸 모르나. 안 나와서 문제였다.
'수능 3등급이 서울대를 가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소리로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넘게 시험관을 하면서 단 한 번도 5일 배양이 나온 적이 없었다. 첫 병원의 담당의사는 5일까지 배아가 버틸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아 3일 차에 보통 동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에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지만,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5일 배양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3일 배양 배아 단 1개가 나오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3일 배양 배아도 똑똑한 한 놈이면 상관없다는 후기 글로 스스로 위로하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3일 배양 배아도 중~하급만 한 차수에 한 개씩 몇 달을 모아 이식했던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 딱 하나 나왔던 상급 배아는 동결했으나 해동과정에서 폐기되어 이식도 할 수 없었다. 3일 배양 상급 배아도 이식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남들에게는 꽤 흔한 5일 배양 배아는 그야말로 꿈같은 소리였다. 이 병원의 배양 기술이 대단하다고 하니, 한 번 믿어봐야 하나 싶었다.
한 번에 10만 원이 넘었던 에르메스 과배란 주사는 병원을 옮기면서 중단되었다. 4일을 맞았지만, 새로운 의사는 약을 바꿨다. 나는 내심 안도했다. 주사값으로 100만 원은 안 쓰겠구나. 의사가 처방을 바꾼 이유는 물론 금전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극난저고, 그동안 처방했던 약들이 나에게 좀 과했다는 의학적 의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 보통 몸이 붓는데 그 4일간은 정말 심하게 부었다. 종아리는 붓는 걸 넘어서 땡땡해져 걷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주사를 바꿈과 동시에 난자채취 일정이 잡혔다. 초음파로 보이는 난자는 2개, 한 개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했다.
전원한 병원에서 첫 난자 채취였다. 두려웠지만 알 수 없는 설렘도 들었다. 이번에는 병원도, 주사도, 의사도 모든 환경이 바뀌었으니 결과도 다를 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 간호사는 혈관을 못 찾았고 주삿바늘은 팔 여기저기에 계속 꽂혔다. 난자 채취를 하기 전, 의사가 와서 말했다.
"환자분, 이 병원에서 난자 채취도 처음이고, 혈소판 수치도 낮아서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입원하고 내일 가는 걸로 합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난자 채취 바로 전 그런 소리를 들으니 두뇌회로가 정지된 듯했다. 무엇보다 의사가 권하는 데 거절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 마취제의 기운이 이끄는 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남들은 집에 가는데 나는 왜 입원까지 해야 하는가. 남편은 정액 채취를 하고서도 출근을 하기 위해 가버렸고, 그전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필수여서 친정엄마가 왔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간호사는 입원하려면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말하며, 지금 입원실도 없어 1인실만 남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복실에 누워있는데 보호자도 없어 서글펐으며, 1인실은 얼마일까 등의 현실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전에도 난자 채취를 하고 나서 복수가 차거나 출혈이 있거나 복통이 있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없었다. 난 괜찮을 것이다. 괜찮아야 했다.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잡고,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공난포 있나요? 그리고, 입원실도 없다고 하니 담당 의사 선생님께 그냥 집으로 갈 수 있게 잘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입원하는 게 더 불편할 것 같아서요."
첫 난자채취 때 경험한 공난포의 여파는 1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눈뜨자마자 묻는 건 항상 공난포의 여부였으니 말이다. 간호사는 의사와 얘기를 했는지 금방 돌아왔다.
"공난포는 없고, 난자는 2개 채취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오늘은 바로 돌아가시고, 문제 있으시면 바로 응급실로 방문하라고 하시네요."
다행이었다. 의사는 걱정돼서 한 말이겠지만, 입원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긴, 입원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냐 되겠냐만은. 전신마취를 해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임신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시간과 돈과 모든 체력과 에너지를 써도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똑같은 난자 채취여도 누군가는 입원 없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누군가는 입원을 해야 하고, 응급실에 가야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 되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평균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평균과는 동떨어진 이 현실이 못 견디게 서럽고, 조금은 억울했다. 그러다 수능 3등급이 서울대를 입학하는 일은 정말 없을까 생각한다. 지능은 이미 타고났다. 수험생이 피 터지게 공부한다면? 일타강사의 강의를 듣는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을 다 무력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바로 운, 하늘이 도와야 한다. 찍기 신이 수험생을 돕는 것처럼 이제는 삼신할매든 삼신할배든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그게 누구든 도와달라고 빌고 싶었다. 안되면 내 탓을 하고, 잘되면 운이 좋았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이런 감정의 파도 속에서 앞으로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10일을 더 버텨야 했다. 수정란이 몇 개가 될까. 며칠 배양 배아가 나올까. 5일 배양이 목표라던 의사의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아니, 그 병원의 배양 기술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것도 아니면 그동안 치열하게 식단을 관리했고, 운동했고, 일찍 자려고 노력했던 그 시간들을 믿어보려 한다. 평균이 누구보다 어려운 사람이 살아가기엔 꽤 가혹한 현실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사진출처 :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236회(2024.3.20) 방송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