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병원에서 다른 병원을 추천했다
그런 날이 있다. 차도 안 막히고, 병원에 대기도 생각보다 없고, 점심 전에 모든 일정이 끝나 남편과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운 좋은 날 말이다. 오늘이 그런 날인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이 헛된 희망이었음을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로 알았다. 의사는 지난번 피검사 결과를 보며,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이 정도 수치면 우리 병원 마취과에서는 마취를 안 해줄 수도 있어요. 응급상황이 생기면 아무래도 좀 위험할 것도 같고... 원래도 이렇게 혈소판 수치가 낮았나? 적혈구도, 백혈구도 전반적으로 다 낮네요."
존댓말보다는 반말이 더 많이 섞인 의사의 물음에 기분이 퍽 상했지만, 첫 진료 때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다시금 반복했다.
"원래 보통 그 정도 수치예요. 혈소판감소증을 앓고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시험관 하면서 수혈을 하거나 응급 상황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물론 첫 진료 때 가장 최근의 피검사 결과도 당연히 챙겨갔다. 분명 그때도 기저질환과 관련해 꽤 긴 얘기를 나누고 결정했었는데도 물밀듯이 밀려오는 환자 러시에 나와의 상담은 의사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는 충분했으리라.
의사는 잠시만 나가있으라며, 문 밖으로 나를 내보냈다. 진료실 안에 있던 다른 의료진과 수 차례 상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가기를 두세 번 반복한 뒤 의사는 결심이 선 듯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병원에서는 어려울 것 같네요. 혹시 모를 환자의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이미 주사도 시작했고, 이번 주기는 진행 중이라 우리 병원 다른 지점에 연락을 해놓을게요. 거기는 근처에 난임센터 말고 다른 진료과도 같이 있으니 응급상황에 대처가 더 쉬울 거예요. 나중에라도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알려주고요."
그렇게 나는 힘들게 찾아온 삼신할배와 단 두 번만에 작별했다. 환자를 위한 결정이었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안된다고 거절하지 왜 받아줬을까 하는 원망 섞인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시험관 주기 도중 병원을 옮긴다는 건 감히 예상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오후에 당장 다른 병원으로 가서 새로운 의사를 만나라는 말에 한가하게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일단 몸을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검사 결과 CD와 각종 진료기록을 발급받았다. 남편의 검사결과를 듣고, 결과지를 받기까지는 오전의 꽤 빨리 빠졌던 대기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길고도 길었다. 남편도 난임병원에 가는 걸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걸로 끝이면 좋았으련만. 정부 지원금이 발목을 잡았다. 신선이식의 경우 난자채취를 시행한 병원에서 채취 이후, 보건소에 지원금을 청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또 한참을 기다려 수납창구에 물었다.
병원 원무과에서는 현재 병원에서 오늘까지 2번의 진료금액인 약 80만 원을 내가 자부담하고, 새로운 병원에서 난자채취를 할 것이기 때문에 지원금은 그쪽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원칙은 이해하지만, 상황은 이해되지 않았다. 내 자의로 병원을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이 병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가 이미 시작한 이후 전원을 권유받았다. 그렇다고 시험관 시술을 중단한 것도 아니고, 다른 병원에서 계속할 예정이었다. 같은 병원 다른 지점인데 서류를 협조해 줄 수는 없는 건가 생각했다.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아 주소지 관할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보건소 담당자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보건복지부에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병원에서 각종 서류를 챙기고, 새로운 병원 상담실과 연락을 하며 정신없이 보냈다.
보건소에서 다행히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연속된 시술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니 두 병원에서 서류 협조를 해주면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이었다. 해당 내용을 병원 원무과에 전달해도 소통이 잘 되지 않아 결국 보건소 직원과 병원 담당자가 통화를 하고 나서야 일단락되었다. (바뀐 병원에 가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지만...)
아까는 이럴 줄 모르고 호기롭게 남편 회사 점심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았었다. 헐레벌떡 회사 근처로 갔다. 이 약속이 아니었으면 아마 밥을 굶고 또 부랴부랴 바뀐 병원에 달려갔을 것이므로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남편이 사준 삼계탕의 닭은 바짝 말라 있었다. '왜 이렇게 살이 없지?' 먹을 게 없어 화가 나기보다는 유난히 탁한 국물에 내 모습이 얼핏 겹쳐 보이는 것 같아 꽤나 측은했다.
당일 접수는 마감될 수도 있다는 상담 직원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급한 마음에 평소 타지 않는 택시를 탔다. 이번에도 접수대에서 직원과 한참 얘기를 했다.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는데도 안된다는 말만 반복하다 이전 병원 담당자와 몇 번의 통화 끝에 이해가 된 건지 정부 지원금 건을 처리해 주었다.
진이 다 빠져 멍한 상태로 진료를 기다렸다. 새로운 의사는 원래 맞던 주사약의 종류를 바꿨다. 그전 의사와는 다르게 주사를 많이 쓸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친절하고, 차분하게 말해주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이전과는 또 다른 처방의 혼란스러움도 컸다. 한 번의 주기의 두 명의 의사와 각각의 처방이라...
하루 사이에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많은 일이 있었다. 멘탈도 체력도 바닥이 났다. 그 와중에도 불안했던 건 주사 시간이었다. 보통 주사는 일정한 시간에 맞는 게 좋다고 했다. 며칠 동안 오전에 맞아왔는데 오후 늦게 진료를 보고, 맞아야 했기에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이번 주기가 중단되지 않고, 지원금도 문제없이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시험관 1년 차, 고차수에 접어들고 꽤 베테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자꾸 터진다. 병원에서 주사기를 챙겨주지 않아 약국에서 직접 산 엉덩이 주사용으로 배주사를 맞지 않나, 신선배아와 동결배아를 같이 이식할 때만 해도 그게 가장 큰 사건(?) 일 줄 알았는데... 매 차수마다 새로운 사건은 끝이 없다.
힘들게 찾아온 삼신할배에게 거절당한 충격은 꽤 컸다. 유명한 병원의 유명한 의사였다. 그동안 정보를 찾아보고, 예약을 기다리고, 성공을 꿈꿨던 시간들이 무의미해졌다. 생각지도 않았던 병원에서, 모르는 의사와 함께하게 되다니, 계획형 인간에게 예상에 없던 일들의 연속은 멘탈을 뿌리째 잡고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정신 건강을 위해 서둘러 합리화를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병원과 의사가 아닌 어쩌다 만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이 하늘의 계시일지 모른다. 임신은 원래 신의 영역이 아니던가. '될 대로 돼라!' 꽤 쿨한 척해보지만, 마음은 여전히 동요한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성공한다는데, 스트레스는 이미 한도 초과다. 이번 차수 과연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