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배란의 위험, 24시간이 난자에게 미치는 영향
약의 부작용을 꾸역꾸역 버티고, 5일이 지나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생각보다 난자가 빨리 자랐다고 했다. 특히 그중에 제일 빨리 자라는 한 녀석이 있었다. 평소보다 그 속도가 아주 빠른 편이었다.
의사는 내일 한번 더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틀 연속 왕복 3시간 거리의 병원에 가니 몸이 피곤했다. 역시 난자가 자라는 속도가 빠르다며 난자채취 일정을 평소보다 빠르게 잡았다. 심지어 공휴일이었다. 보통 난자 채취는 생리 시작일로부터 14일 정도에 하게 되지만, 이번엔 11일째에 일정이 잡혔다.
아무래도 영 이상해서 의사에게 물었다. 평소 채취 일정보다 좀 빠른 것 같다고, 남들과 비교해서도 빠른 게 맞냐고 물었다. 의사는 말했다.
"평소보다 자라는 속도가 빠른 게 맞고, 다른 분들에 비해서도 빠른 감이 있긴 하네요."
유난히 혼자 먼저 커버린 난자 1개, 다른 난자들은 아직 작았다. 다른 난자들(?)이라고 표현하기엔 2개뿐이었지만, 다른 난자가 자라기를 주사를 쓰며 기다리기엔 제일 커버린 난자가 배란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의사가 덧붙인 말은 충격적이었다. 보통 이렇게 빨리 자라는 난자는 속이 비어있는 공난포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보통의 속도로 자라지 않고, 너무 빨리 커버린 난자의 상태가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포기하기엔 제일 가능성이 높은 유일한 난자이기도 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의사에게 다시 물었다.
"보통 비슷하게 크는데... 왜 유독 한 개만 빨리 커버린 걸까요."
"아무래도 4일 차에 오셔서 그런 것 같아요. 약을 좀 더 빨리 썼으면 다른 난자들도 비슷하게 자랄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보기엔 하루차이지만 난자는 보통 2주 있다 배란을 하기 때문에 14일의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도 꽤 크죠."
그 말을 들으니 납득이 갔다. 운 나쁘게도 연휴가 끼어있어 2~3일 차에는 병원도 쉬는 날이었다. 5일 차에 갔더라면 아예 포기했을 텐데 그래도 4일 차에 갈 수 있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번 주기를 포기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의사의 말을 듣기 전까지 혼자만 유난히 커버린 그 난자에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빨리 커버린 난자가 다른 난자에 비해 틀림없이 더 건강할 것이라고 좋아하기까지 했다. 초음파로 보이는 이번엔 채취할 수 있는 난자는 딱 2개뿐이었다. 독보적으로 큰 난자 1개와 아마도 미성숙일 좀 더 작은 난자 1개였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난포 터뜨리는 주사(오비드렐)와 항생제를 먹었다. 예상했듯 난자는 2개가 채취되었고, 역시나 1개는 미성숙이었지만 병원에서는 잘 키워본다고 했다. 유난히 컸던 난자는 다행히 공난포는 아니었다. 이번에도 내막이 두꺼워지지 않아 신선이식은 힘들다는 통보를 받았다.
3일의 시간이 지난 후 병원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불길한 징조다. 전화가 늦을 때는 보통 배아의 세포 분열이 멈춰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변수가 생겼다는 뜻이다. 고민하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한 개의 미성숙난자의 배아는 세포분열을 멈췄고, 유난히 큰 난자의 배아는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동결할지 말지를 연구실에서 고민해야 해서 연락이 늦어졌다고 했다. 동결하기에 좋은 상태는 아니나, 1개밖에 남지 않은 배아라 일단은 동결했지만, 기대는 말라고 했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기에 해동 시에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에 유난히 독보적으로 큰 난자 1개가 초음파로 보인다고 했을 때, 조기배란의 걱정은 전혀 없었다. 뭔가 남다르게 빨리 자라는 이 난자가 건강한 슈퍼 배아가 될 거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역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안 되는 것일까. 평균의 속도에 맞춰 자라야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도,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혼자만 일찍 자란 유일한 난자, 공난포는 아니었지만 간신히 배아가 되어 차가운 냉동고에서 이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전에 상급배아도 해동과정에서 죽어버린 판국에 병원에서 얼리기도 주저하던 그 배아가 해동 시 무사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과한 기대라는 것을 안다.
너무 빨리 커버린 것도 문제가 되다니, 평균에 속하는 것이 정말 어렵고도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절절히 느낀다. 생각해 보면 난 평균이었던 적이 없다. 키나 몸무게도 평균에 한참 못 미쳤고, 혈소판과 백혈구 등 혈액 수치도 평균의 반토막으로 살아왔다. 난소기능도 평균은커녕 그 근처와도 동떨어져 있으니... 그런 와중에 내 난자가 평균이긴 여간 어려웠으리라.
자연의 순리대로 평균의 속도로 무난히 자라는 게 건강한 난자일 수 있지만, 유난히 빨리 자라 버린 단 하나의 난자는 본인의 속도에 맞게 자란 것이라고, 세상 밖으로 빨리 나오기 위해 서둘러 자라준 거라고 믿고, 또 믿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오늘은, 다가올 여행을 기다리며 설레는 하루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는 어제와 내일 사이 아무런 기대도 없는 무료한 날 일지도 모른다. 14일 후 배란을 앞둔 난자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이 시간, 과연 나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