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도서관!
그간 서운했던 일들이 알게 모르게 쌓여 있었나보다. 어느 인생이라고 순탄하기만 할까. 어느부부라고 다정하기만 할까. 얕은 감정도 겹겹이 쌓이니 불어나 마음이 답답해졌다. 대화로 풀어야하는데 굳이 지난 말을 꺼내자니 구차해져서 무거운 공기속에 그냥 집을 나와버렸다.
어딜가야하나 막상 집을 나와도 갈곳이 없다. 답답할 때 목적없는 산책은 도움이 된다. 아무생각없이 나무사이를 걷고 낮은 곳에 핀 작은 꽃,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무용한 것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축늘어진 고개가 점점 고개가 들어져 하늘까지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바라본 하늘이 티없이 파랗다면 좀 부끄러웠을텐데 내 마음을 닮아 우중충한 구름이 꽉 차있다. 콕 찌르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원을 걷다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갔다.
이런날에는 책도 눈에 들어올 것 같지 않은데 갑자기 다정한 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헛헛하니 감성 가득한 시를 읽어야지.
공허한 눈빛에 깊은 속내의 단단히 채울 시를 읽어야지. 메마른 감정을 녹여줄 말랑말랑한 시를 읽어야겠다.
얇은 시집이 빼곡히 꽂혀있는 책장에서 제목들을 읽어본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당신은 첫눈입니까>.....
펼쳐보지 않아도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감성에 젖어든다. 실체도 없이 닫혔던 마음에 다정한 단어들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아서 어쩔까 고민하고있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엄마 어디야?" 아이의 목소리 뒤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전화받아? 사실 남편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기 싫어서 안받았는데 아이전화는 자연스럽게 받았던 거였다. 싸운 것도 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색한 기류속에 꾹 담은 입은 열리지 않았다.
"엄마 도서관이야"
"비오는데 마중나갈까?" 어느새 남편이 전화를 바꿔 들었다.
"...그러든가"
울적한 마음에 집을 나와 온 곳이 겨우 도서관이라니. 이 시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생각한 것이 '시'라는 게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었다.
오늘의 도서관은 누구에게 터놓을 얘깃거리도 없지만 무거운 마음을, 나를 기다리는 다정한 책들이 잔잔하게 토닥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