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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혜 Sep 06. 2023

나는 미니멀리스트입니다

삶의 배낭은 가벼울수록 좋다

울산이 고향인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여자 기숙사는 2인 1실로 개인마다 침대와 책상, 옷장이 주어졌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때면 방과 룸메이트를 바꾸었다.


  분주했던 첫 학기가 지나고 드디어 방을 바꾸는 날이 돌아왔다. 빙 둘러보니 짐이 별로 없어 보였다. 어차피 한두 층 위로 떠나는 이사니 큰 가방에 대충 집어넣고 옮기면 될 거 같았다. 그렇게 독립 후 나의 첫 이사가 시작됐다.


  서너 번 왔다 갔다 하면 끝나겠지 했던 이사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팔다리도 점점 아파왔다. 물건이 세포 분열이라도 하는 것일까.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끊임없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짐은 어디선가 나오고 또 나왔다.


  이사를 할 때면 나의 수납 솜씨에 매번 놀라곤 한다. 어떻게 이토록 작은 공간에 많은 물건을 숨겨 두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중요한 건 '숨겨 놓고'다. 잊고 있어 사용하지 못한 물건들이 존재의 이유를 잃고 제 삶을 낭비하고 있었다.


  나 홀로 서울에서 산다는 건 이사 또 이사, 잊을만하면 이사, 자고 일어나면 이사, 도시 유목민 같은 삶이다. 이삿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며 나는 점점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갔다. 마치 내 몸집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길고 긴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처럼 삶의 무게를 줄여갔다. 줄어든 살림의 무게만큼 삶의 방향성은 또렷해졌고 마음은 홀가분했다. 내가 관리할 수 있을 만큼의 것들만 소유하는 삶, 그 이상의 것은 욕심내지 않는 삶. 마치 몸에 저울이라도 달린 듯 마음이 무거워지면 미련 없이 비워냈다.


  버리거나 정리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리는 언뜻 보기에 물리적 행위 같지만 고도의 정신적 행위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외부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는 사람일수록 나와의 관계는 서툴기 마련이다. 정리는 내 안의 많은 나를 불러내어 한바탕 벌이는 반상회 같은 것이다.


  때론 정리는 서랍 깊은 곳에 묻어두고만 싶던 불편한 기억을 불러낸다. 쓰라린 실수와 실패의 경험, 배신감과 모멸감으로 한없이 어두웠던 나를 다시 만나야 하는 괴로운 순간도 있다. 그래서 회피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제대로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물건과 기억들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방치된다.


 부족하고 서툴렀던 과거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너그럽게 안아주는 일, 그 또한 정리의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물건을 버릴 때면 마음에 남아있는 상처와 앙금,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함께 흘려보내곤 한다. 마치 주술 행위라도 하듯 정리는 영적 활동으로 승화된다.


  미니멀리스트라 하면 SNS에서 흔히 보듯 절간처럼 텅 빈 공간에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할 거 같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단순히 물건을 적게 소유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필요한 물건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은 저마다 다르다.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범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버리는 것 없이 낭비 없이 내가 가진 것들을 잘 사용하고 있다면 그는 곧 미니멀리스트다. 소유와 집착이 아닌 버림과 비움의 방향으로 마음이 향해 있다면 그 또한 미니멀리스트다. 중요한 건 물건의 가짓수가 아닌 낭비 없는 삶, 연연하지 않는 마음이다.


  삶의 배낭을 가볍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번에 모든 걸 정리하려는 욕심부터 비우는 것이 좋다. 완벽히 해내려 하면 부담감에 정리는 자꾸만 뒤로 밀려난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정리를 일상화하면 좋다. 오늘은 서랍 한 칸, 내일은 냉장칸 하나를 정리하며, 작은 성취감과 개운함을 일상의 구석구석 배치해 둔다면 삶의 활력이 선물처럼 따라온다.


  얼마 전 화분 담긴 식물의 건강하지 못한 잎들을 잘라냈다. 크게 자란 잎이 아까워, 함께한 시간이 애틋해 시든 잎이 눈에 거슬리면서도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가지치기를 하고 며칠 뒤 새잎이 튼튼하게 올라왔다. 화분 속 양분도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도 그 양은 한정돼 있다. 시든 잎에 낭비되고 있던 양분이 새잎을 키우는데 쓰이는 모습을 보며 비워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자리가 생겨남을 새삼 깨닫는다. 보이지 않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살아가는 일에도 가지치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쓸데없는 일과 관계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된다. 비움은 상실이 아닌 기대요 희망이다. 허투루 낭비되던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중요한 일들에 더욱 정성을 들여본다.

 

  비울 때 더 행복한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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