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혜 Sep 19. 2023

인생이라는 청룡 열차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기억한다. 놀이 공원에서 청룡 열차를 탔다. 마음 한가득 겁이 났지만 호기로운 친구들 틈에서 아닌 척 시치미를 떼며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오르락내리락 엎치락뒤치락- 혼돈의 질주가 끝이 나고, 산발한 머리로 열차에서 내리며 생각했다. 다행이다, 처음이라 탈 수 있었구나. 청룡 열차가 이토록 무서운지 알았다면 체면이고 뭐고 타지 않았을 것이다. 뒤집힐 때 안전바가 이대로 열려 아래로 쿵 떨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머리가 하얘지고, 훅 떨어질 때 간이 철렁하는 그 느낌도 겪고 나니 돈까지 줘가며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나의 첫 청룡 열차는 '몰랐기에' 탈 수 있었다. 


  얼마 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인기를 모았다. 배우 윤여정 님이 한 방송에서 “60세가 되어도 인생은 몰라요. 나도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나도 67살은 처음이야.”라는 말을 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어른이 되면 인생살이가 좀 더 수월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문자 그대로 매일이 처음인지라 뜻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아이였을 땐 알지 못했던 크고 작은 어른의 책임도 무겁게 느껴진다. 그런 어른들에게 크나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인생이 단 한 번뿐임에 감사한다. 기억 속의 청룡 열차처럼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기에 삶의 어떤 순간도 겪어낼 수 있다. 산다는 게 이토록 슬프고 힘든 일인지, 또 때론 잔혹하고 비참한 일인지, 때때로 고독과 서러움에 어깨를 들썩이는 날들도 있다는 걸 안다면 다시 태어나 이 모든 걸 겪어내고 싶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마치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듯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오늘이 힘들고 괴롭다한들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영화의 결말이 궁금한 사람처럼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내일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어쩌면 우리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모든 기억을 지워내고 다시 세상에 내보내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생명이 붙어있는 모든 것들은 오직 단 한 번의 생을 갖는다는 것은 변치 않는 우주의 진리가 아닐까. 띌 듯이 기쁜 하루도 한 없이 절망스러운 고통도 그저 단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이기에 값진 것이다. 마치 청룡 열차를 타듯 즐겨보는 건 어떨까. 


  매일 우직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나 새롭게 태어났다는 상상을 한다. 육신은 단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하지만 영혼은 뱀이 허물을 벗듯 매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상처도 아픈 기억도 지난밤의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진다. 이른 아침의 신선한 바람과 공기로 마음을 새롭게 한다. 오늘 하루도 인생이라는 청룡 열차에 몸을 싣고 내게 닥쳐올 모든 일들을 그저 감사히 즐기기로 한다. 두 번 탈 일은 절대 없으니까. 오르락내리락 엎치락뒤치락 삶의 어느 지점에 놓여있건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전 13화 식물과 함께 하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