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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 천상병 시선, 천상병, 지식을만드는지식 ]


[ 천상병 시선, 천상병, 지식을만드는지식 ]


 歸天

 - 主日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創作과 批評》, 1970.6

 평생을 아이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평생을 웃으며, 웃음 짓는다는 것의 무게조차 깨닫지 못하며. 그냥 그렇게 이유 없이 웃고 싶다. 누군가를 내가 책임지고 싶지 않다. 또, 나 때문에 누군가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아무도 싸우지 않고, 거스르지 않고 이 인생의 강에 몸을 맡긴 채 그저 둥실둥실, 여유롭게 흘러갔으면. 그 누구도 눈물 흘리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내가 시를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준 것이 바로 이 '천상병' 시인의 [ 귀천 ]이다. 또한 이 블로그 [ 책이 쉬어가는 베란다 ]가 태어난 배경도 이 시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지루한 공부가 아닌 순수하고 재미난 독서를 했을 그 시절에, 아버지께서는 푸른 난을 심어놓은 화분 하나를 사 오셨다. 그리고 그 난이 담겨있는 도자기 화분 앞부분에 적혀있던 시가 바로 [ 귀천 ]이었다.


 베란다에서 한낮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항상 [ 귀천 ]과 마주했고, 거의 수백 번은 되풀이해서 이것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또다시 읽어도, 이 시는 내게 강한 떨림을 안겨준다. 

 이는 격렬하고 절절한 떨림이 아니다. 오히려 언뜻 쓸쓸하면서도 또 설레는,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며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는 그 순간의 떨림과 같은 감정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내가, 어떻게 이 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천상병 시인은 워낙 그 기행으로 유명하니 그것을 여기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그의 시인으로서의 성질만을 몇 마디 써보자면, 그는 나이를 먹지 않는 아이와 같았다. 그야말로 육체와 영혼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사람일 것이다. 이는 그의 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했고, 새와 하늘을 좋아했고, 이 세상을 좋아했다. 거기에는 어떤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아닌, 순수하고도 원형 그대로의 아기 같은 호기심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그의 시 전부에서, 진하게 묻어 나온다.


 부끄럽지만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롤 모델을 꼽자면 나는 천상병 시인을 감히 지목해 보고 싶다. 아마 내 시를 꾸준히 읽는 사람이 있다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역시 많은 경우 아이의 입장에서 시를 써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생각한다. 내 가슴속에는 아직도 당구장보다는 놀이터를, TV보다는 시집을, 울음보다는 웃음을 좋아하는 아이가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 아이는 가끔 주체 못 할 정도로 울상을 짓는 때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천상병 시인과 같이 아직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상관없이, 나는 나를 둘러싼 현실이 언제나 빛나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내게 시를 쓰게 만드는 힘이 되었고, 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천상병 시인은 나와 통하는 면이 있고, 나는 이것이 정말 크나큰 행운이라고 믿고 있다.

 [ 귀천 ]은 천상병 시인의 에고(ego)를 가장 잘 함축했다고 평가하고 싶은 시이다. 누구나 '이별'을 두려워한다. 이별은 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거기에 '다시 시작'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상병 시인은 삶과의 이별에서마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나는 여기서 이별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여태 이별을 모든 것의 끝이라고만 인식하지 않았던가. 그 두려움에 떠밀려 이를 피하려고만 했지, '좋은 이별'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 귀천 ]은 내게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님을, 또 삶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시였다. 

 천상병 시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시인으로서의 권 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늘로 돌아가기 전까지, 이 세상을 하늘과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나는 시를 통해 해나가야겠다. [ 귀천 ]을 또 한 번 읽게 된 지금, 나는 다시 한번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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