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엽니다.
머릿속이 분분해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서요.
근처 바닷가 자갈밭 위에 앉아
멍이나 때리다 오자 했으나 덥군요.
무섭도록요.
대신
아파트 단지 산책이나 하자
발길을 돌립니다.
한창 혈기 왕성한 단풍잎이
그늘을 드리웁니다.
아기 손 같고, 별 같은 잎들이
이리 오라 안내하는 듯 합니다.
어머,
목 좋은 곳엔 이미
어르신들께서 텐트를 치고 계십니다.
이토록 멋진 사랑방이라니요.
저 문을 넘으면
혹시,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며 뛰어가는
바쁜 토끼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영롱한 초록이 눈부신 건지
사이사이 파란 하늘이 눈부신 건지
드문드문 빛나는 흙바닥이 눈부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가장 눈부신 건
그늘일지도 모르겠네요.
돗자리 한 장,
해먹 하나
살랑거리는 바람 한 점.
상상만으로도
삼림 같은 이국의 공원이 부럽지 않습니다.
덩굴식물로 뒤덮은 문
징검다리 길을 걸어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요?
아,
보송보송
강실강실
삶이
널려 있습니다.
어느새
분분한 머릿속 생각은 사라지고
햇살 같은 투명함이 가득입니다.
산책인 줄 알았던 길이
여행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