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순간들
중국어에 이런 표현이 있다. ‘想开了就是天堂, 想不开就是地狱.’ 직역하면 ‘생각이 열리면 천국이 되고, 생각이 닫히면 지옥이 된다.’란 뜻이다. 생각을 연다는 건 뭘까? 긍정적인 사고,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 넓은 시각, 내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탐구하는 것이 아닐까.
‘열린 사고’는 분명 좋은 말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실제로 행하기는 너무도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똑같은 환경, 늘 만나는 사람들, 비슷비슷한 일들 사이에서 넓은 시각과 다른 각도를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역시 집, 직장, 학교의 테두리를 크게 넘지 않는 일상에서는 좀처럼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며 마음을 열고 다른 생각을 해보는 간접 체험을 한다. 간접 체험은 말 그대로 간접이다. 그렇다면 직접 체험하는 방법은 없을까? 직접, 가장 빠르게 마음을 여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간단하게 자세를 바꾸면 된다.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의 사회심리학자 에이미 커디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자세가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몸의 특정 자세가 호르몬의 변화를 가져와 특정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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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의 어원을 ‘단단하게 묶다’ 혹은 ‘결합한다’라는 뜻의 유즈(yuj)에서 찾는다. 우스트라 아사나를 하면 몸을 뒤로 젖혀 손바닥이 발바닥에 닿아 몸이 하나의 커다란 네모난 원을 만들게 된다. 단단하게 결합한 손과 발 덕에 가슴뿐만 아니라 허벅지, 골반, 목까지 온몸의 앞면이 활짝 열린다. 그렇게 열린 몸에 갇힌 생각이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 몸과 마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늘 함께 움직이니까.
중국에는 시월 초 국경절이라는 비교적 긴 연휴가 있다. 연휴에 맞춰 몇 개월 전부터 미리 베트남 여행을 계획해 놓았던 터였다. 떠날 날이 가까워질 즈음 이런저런 일들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상당히 지쳐 있었다. 간절히 쉼을 바라며 호찌민 가까운 곳, 무이네로 떠났다. 무이네는 작은 어촌마을이지만 두 개의 사막으로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붉은 모래가 인상적인 레드 샌듄과 오아이스 같은 호수를 품고 있는 넓은 화이트 샌듄이 그곳에 있다. 사막이라고 하지만 실은 바람에 모래가 날려 와 쌓인 사구라고 한다. 하지만 그 규모가 사막이라 불러도 충분했다. 특히 높낮은 사구가 잇달아 펼쳐지는 화이트 샌듄은 사막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실컷 사막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 나서,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그저 해가 지는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기답게 구름이 장관이었다. 그 사이로 눈부시게 퍼져 나가는 햇살을 보다가 문득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릎과 정강이, 발등을 모랫바닥에 댄 채, 허벅지를 일으키고 상체를 세웠다. 모래 언덕이다 보니 바닥이 고르지 않았다.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았다. 모래를 살살 골라 대강 수평을 맞춘 후 서서히 상체를 뒤로 넘겼다. 천천히 천천히. 낙타의 느릿느릿한 걸음을 떠올리며 숨에 맞추어 내려갔다. 자세가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자리에서, 사막에서 한 마리의 낙타가 되어 보는 느낌이라면 충분했다.
태양은 점점 고도를 낮춰 구름 속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찬란한 황금빛 광채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얀색에 가까운 엘리스 블루부터, 라이트 블루 미스트, 인디고 블루, 사파이어 블루, 짙은 잉크 블루까지 온갖 파란색이 뒤섞인 하늘에 황금빛이 퍼지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하루 종일 달궈진 사막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히 시원했고 부드러웠다. 드넓게 펼쳐진 하얀 모래 언덕들, 그중 가장 높은 사구의 정상에서 낙타 자세를 한 채 찬란하게 저물어가는 해를 온몸으로 받았다.
쇄골을 펴고 가슴을 활짝 열고. 바람이 등 아래 내가 만든 공간을 통과해 지나갔다. 내가 바람길이 되었다. 금빛 휘황한 햇빛이 내 전면에 쏟아져 내렸고 부드러운 바람이 내 등을 떠받들듯 지나갔다. 사막이 나를 받아주는 걸 느꼈다. 정신없던 일상 속에 미처 버리지 못하고 쌓여 있던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쏟아지는 햇빛에 타버렸고, 불어오는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가슴을 활짝 열자 온 세상이 내게로 들어왔다. 지칠 대로 지쳐 에너지가 방전되었던 몸이 세상을 품으며 다시 생동력으로 차올랐다. 내 몸을 하나로 단단하게 묶음으로써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해방감을 느꼈다. 어려움? 실패? 그까짓 것 부딪혀 보면 되지. 온 세상이 내게 열려 있는데 뭐가 더 겁나겠어.
일단 가슴을 열어보자. 그러면 마음이 열린다. 마음이 열리면 생각도 열린다. 생각이 열리면 세상이 열린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곧 천국이 된다.
브런치북 <흔들려도 괜찮다고> 연재를 끝낸다고 했는데 알고 봤더니 브런치 북 <발간하기>는 최소 10편의 글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이제야 알았습니다...ㅡㅡ;;;
<<이완의 순간들>> 이 출간되고 귀한 후기들을 한 조각씩 받고 있습니다.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독자님의 삶에 닿았다는 후기를 볼 때마다 울컥울컥 눈물이 납니다.
세상을 향해 작은 걸음을 내디뎠더니 세상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세상에게 마음을 내었더니 세상이 더 큰 마음을 가져다줍니다.
오늘도 우스트라 아사나를 하며 세상에 나를 내맡깁니다.
진짜 마지막으로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