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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당신 안의 신께 경배합니다

<이완의 순간들>

by 별빛너머앤

“이 세상에서 진정한 여행은 한 가지뿐이다. 바로 자신의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마리아 라이너 릴케의 말처럼 나의 요가의 여정을 잘 나타낸 말이 있을까 싶다. 비록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내게 요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나 자신을 만나게 했다. 마치 또 다른 나를 만나러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랄까. 아사나라는 지도와 요가 철학이라는 나침반이 십여 년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단순히 신체적인 동작을 넘어서, 삶의 매 순간 평화와 중심을 잃지 않으며,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법을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요가다. 내면의 진짜 나를 만나고 그를 통해 타인과 세상과의 연결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요가가 가르쳐 주었다.


아사나 수련을 통해 몸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몸을 보듬고 다를 수 있게 되었다.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오감의 감각뿐만 아니라, 공간상에서 나의 위치, 자세, 움직임, 균형 등을 인지할 수 있는 고유수용감각, 내부를 느끼는 내부감각을 세심하게 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고유수용감각은 단순히 물리적 세상에서의 나의 위치를 인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관계 속 나의 위치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친구로서 많은 관계 속에서 늘 나를 잃지 않고 나의 중심을 잡게 해 주었다. 나와 나의 균형 잡힌 관계는 타인과, 사회와의 연결로 확장되었다. 내부감각은 몸속 어딘가의 통증을 느끼는 것을 넘어 마음과 심리의 통증을 헤아리게 해주었다. 이 감각들은 다시 나의 정신을 고양시켰고 여러 요가의 철학서들을 찾게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요가 지도자들이 쓴 에세이 형식의 가벼운 책부터 『요가 수트라』를 넘어『바가바드 기타』,『우파니샤드』에 이르기까지 내면의 본질을 다룬 경전들을 읽게 되었다. 물론 읽는다고 해서 다 안다는 것은 아니다. 수 천 년 동안 내려온 그 가르침을 어떻게 한두 번 읽고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현재 나의 깜냥으로, 나의 경험으로 아는 만큼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매년 수련해 나갈수록 아사나가 달라짐을 느끼듯 반복해서 읽을수록 이해의 경계도 조금씩 깊어지리라 믿는다.


어떤 책이든 가장 먼저 ‘알아차림’을 이야기했다. 이 순간의 내 생각이 무엇인지, 나의 감정이 어떤지, 오른쪽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서 있는지, 왼쪽 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서 있는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올라가 있지는 않은지, 표정이 굳어 있는지 풀려 있는지, 신체 어느 곳에 어떤 느낌이 드는지, 숨을 얕게 쉬고 있는지, 깊게 쉬고 있는지 알아차리라고 했다. 외부로 열려 있는 주의를 거두어 자신을 하나의 대상처럼 주의 깊게 바라보라고 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바라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겪고 있는 것을 시비판단 없이 한 발짝 떨어져 그저 바라보라고 했다. ‘지금, 여기’가 내면을 여행하는 출발지이며, ‘알아차림’이 내면을 여행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아사나 수련은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책의 가르침과 아사나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주인공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책이다.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이원성의 세계를 깨달음으로 통합한 싯다르타는 강물의 흐름에 귀 기울이며 동시에 배 속의 꼬르륵거리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게 된다. 마침내 세상과 자신과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경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요가의 가르침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본질을 찾고 그 본질이 세상과 이어져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소중한 만큼 남도, 다른 생명도, 그 세상이 모두 소중하고 귀함을 글이나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요가를 하는 사람이라면 늘 하는 인사말, 요가를 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들어본 말, ‘나마스테’는 바로 그 의미를 담은 말이다. 당신 안의 신께 경배드린다는 뜻의 이 산스크리트어는 나와 당신이 결국 하나의 본질, 고귀한 신성을 담고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나를 찾는 것은 나의 고유성을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존재의 보편성을 깨닫는 길이기도 하다. 덕분에 타인을 대할 때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게 된다.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면 반드시 이른 아침에 틈을 내어 자연 속에서 요가를 하려고 한다. 아사나 수련을 빼먹고 싶지 않기도 하고, 아직 분주해지기 전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넓은 공원 잔디밭에서 현지인들처럼 맨발로 잔디를 밟으며 요가를 하기도 하고, 요가 매트가 없어도 맨땅에 머리를 대고 물구나무도 서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껏 몸을 펼쳐 보기도 한다. 자연과 한 발 더 가까이에서 따사로운 햇빛과 부드러운 미풍을 피부로 느낀다. 이국의 새소리와 파도소리, 나뭇잎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부드러운 풀과 시원한 모래의 감촉이 발바닥에 선명하게 전달된다. 은은한 꽃향기와 신선한 짠 내가 후각을 깨운다. 청량한 공기에 눈이 맑아진다. 오감으로 느끼는 세상이 내 몸 구석구석을 채운다. 이때의 오감은 더 이상 나를 흐리는 자극이 아니다. 자연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창구가 된다. 평소 요가원에서 수련할 때와는 다른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충만해지면서 동시에 겸허해지는 경험을 한다. 여행지에서는 어려운 아사나를 하지 않는다. 몸에 익은 기본 아사나들만 한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몸이 덜 풀려 기본 아사나조차 완전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충분하다.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지금, 여기’에서 ‘나’와 ‘세상’사이에 어떤 틈도 없이 몰입하는 과정만으로도 이미 충만해지고 감사해진다. 그 과정에서 세상은 더 이상 객체가 아니며 나는 세상의 일부임을 온몸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어느 날 명상 수업에서였다. 넓고 따뜻한 요가원에 선생님과 단둘이 마주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어제 읽은 책, 이불킥하고 싶은 지난주의 사건, 오늘 저녁 메뉴, 다음 주 약속 등 온갖 것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가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그냥 바라보았다. 이 생각들을 하면 안 돼, 마음을 고요히 해야지 이러면 어떡해, 하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냥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는구나, 했다. 그런 생각들이 다 지나고 나자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이들, 남편, 부모님, 친구들, 지인들…. 감은 눈에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콧물까지 훌쩍이며 손의 무드라를 풀고 눈을 감은 채 눈물을 닦아냈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건 모두 이 사람들 덕분이구나, 감사함에 북받친 눈물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환대받고 있었구나, 내가 세상에 진 빚이 너무도 많구나, 존재의 바닥으로부터 감사와 경외가 올라왔다. 콧물을 훌쩍이고 눈물이 흐르는데 충만함 가득한 미소가 지어졌다.


요가를 통해 삶의 경이를 점점 자주 접하게 된다. 타인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내가 곧 세상의 일부임을 몸과 마음속에서부터 깊이 느낀다. 모든 순간을 이렇게 깨어있는 의식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많은 순간에 내가 우선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느 순간에는 부끄러워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여전히 이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사나의 완성이 요가가 아니라 아사나를 수련하는 과정이 곧 요가이듯, 한 번 더 알아차리고 한 번 더 노력하는 과정이 곧 인생이 아닐까 한다. 공자도 일흔에서야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했다. 매일 수련하고 노력하다 보면 일흔쯤, 혹은 그 너머 삶의 어딘가에 매 순간 깨어있을 수 있는 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가 되면 내가 아닌 진정한 내 안의 빛이 언제고 인사를 건넬 것이다.


나마스테.




먼저 그동안 브런치북 <흔들려도 괜찮다고> 에 보내주신 마음 감사드려요.


브런치북 완결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요.

그냥 해당 발행일에 안 쓰면 자동완결 되는 줄 알았는데 완결 버튼을 눌러야 하는 거더라고요 ^^;;;

지난 주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오늘 <<이완의 순간들>> 마지막 꼭지글 전편을 브런치북의 에필로그 삼아 올립니다.

브런치북 <흔들려도 괜찮다고>는 완결하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곧 다른 요가 이야기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오늘이 <이완의 순간들> 예약 판매 마지막 날입니다.

요가 매트 위의 세계, 그 세계에서의 위로가 더 궁금하신 분께 건네드립니다.


https://forms.gle/pKk5rLBKookmgde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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