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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안 걸을 작정이었어요?

by 별빛너머앤

간호사 호출을 받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게 의사 선생님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내려 꽂혔다.

“지금 이 다리로 걸어 들어온 거예요? 목발 짚고? 평생 안 걸을 생각이에요? 이대로 놔뒀다면 못 걸을 수도 있었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보고 있던 건 몇 시간 전에 찍은 내 발목의 CT와 MRI 사진이었다. 엄마가 아끼는 비싼 그릇을 깨 먹고 혼나는 아이처럼 의사 눈치를 보며 책상 맞은편 환자 의자에 앉았다. 그보다, 못 걸을 수도 있었다니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봐 봐요. 지금 발목뼈는 사고 난 자동차 앞유리처럼 온통 미세 골절로 자글자글하고, 인대는 거의 끊어져서 정강이 쪽으로 말려 올라가고 있어요. 이 지경으로, 뭐 얼마나 됐다고요? 이건 수술도 못 해요. 해도 의미가 없어요. 시간이 하도 지나서. 그냥 입원해서 움직이지 말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나도 장담 못 하지만 조직 재생 주사 맞고, 도수 치료를 받고 ~~~”


쏼라 쏼라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 말씀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네네, 고개만 끄덕이는 내가 그제야 안되어 보였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위로를 건네셨다. “그래도 용가리 통뼈인가 보네. 정형외과 의사들은 사진 보면 딱 알아요. 어떻게 다쳤는지. 이 정도로 다쳤는데 뼈가 완전 박살 나지 않은 거 보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보기보다 뼈가 튼튼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안정 취하고 약 잘 먹고 치료 열심히 받으면 못 걷지는 않을 거예요. 힘내 봅시다.”


... (중략)...

주사와 약과 물리치료와 재활을 겸한 도수치료로 한 달이 바쁘게 지나갔다.... (중략)... 인간의 걸음과 로봇의 걸음을 번갈아 걸으며 퇴원했다. 걷는 게 글자 그대로 고역이었다. 온 힘을 다해 대여섯 걸음을 걷고 나면 온몸이 욱신거렸다.

... (중략)...


아이가 학교생활에 얼추 적응해 갈 때도,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벚꽃이 천지를 화사하게 물들일 때도 바깥은 내게 한 발짝도 디딜 수 없는 다른 세계였다. 생동하는 연둣빛으로 세상이 물들어 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집 안에서 가구를 붙잡고 목발을 짚고 화장실에 가는 일이었다. 걷고 싶었다. 목발 대신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싶었고, 무겁고 칙칙한 까만색 로봇 다리 대신 가볍고 산뜻한 흰색의 스니커즈를 신고 싶었다.


병원에서 받은 두툼한 프린트물을 옆에 놓고 매뉴얼 대로 발목 강화 훈련을 했다. 수건을 발목에 걸고 발등과 발가락을 몸 쪽으로 당겼다가 멀리 뻗어 보냈다. 고작 열 번에 발목에 지구가 매달린 듯 무거웠고 온몸이 지쳤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매일 프린트물의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진땀이 삐질삐질 나는 각종 재활 동작들을 반복했다. 한두 달쯤 지나자 보조기구 없이 천천히 걸어 아이 등하교를 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더 이상의 외출은 힘들었다. 오른쪽 발목의 움직임이 극히 제한적이라 오래 걸으면 발목부터 다리 전체가 뻣뻣해지고 아파왔다. 오른쪽 발목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아 쪼그려 앉을 수도 없었다.


상가 건물들의 공용 화장실은 대부분이 재래식 화장실 형태로 쪼그려 앉아야 한다. 지금은 양변기 화장실도 많아졌지만 쪼그려 앉아야 하는 화장실도 여전히 많다. 집 밖의 화장실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좌변기지만, 집에서도 식탁 의자보다 낮은 변기에 편하게 앉을 수가 없었다. 기마자세처럼 무릎과 발목을 엉거주춤 굽힌 후 양손으로 세면대와 벽을 짚어 몸을 지지한 후, 오른쪽 무릎을 펴고 다리를 뻗은 후 조심조심 앉아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만큼 나을 수 있을 거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평생 이렇게 화장실을 다닐 수는 없었다. 재활다운 활동이 필요했다. 한국이라면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을 텐데… 방법을 찾아야 했다.


더없이 좋은 초여름, 근처에 괜찮은 요가원이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요가? 안 그래도 어렴풋이 요가를 생각하던 때였다. 요가를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나의 어설픈 중국어 실력으로 과연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길게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두말없이 가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몇 명이 모여 월, 수, 금 주 3회 아침 8시 30분의 그룹 수업을 하나 만들었다.






공감과 위로, 희망의 에세이 <흔들려도 괜찮다고, 몸이 먼저 말했다>의 일부 발췌입니다.

2025년 7월 출간 예정입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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