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식사를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안녕하세요, 준하와 함께가 아닌 혼자로는 처음 인사드려요. 와니입니다.
이번 주와 다음 주 수요일에는 와니와 준하가 각각 <삼각김밥>과 아가씨의 식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편의점에서 가장 쉽게 집어들 수 있는 음식, 삼각김밥. 여러분은 지난 일상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삼각김밥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궁금합니다.
삼각김밥 잘 뜯는 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밑바닥에 쓰여 있는 순서대로 따라 해 보긴 한다. 가운데를 뜯은 다음 삼각김밥 양쪽 모서리를 감싼 비닐을 벗겨내면 된다는데, 요모조모 관찰했더니 삼각김밥의 김은 포장될 때부터 밥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니라 비닐을 사이에 두고 밥과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편의점 냉장고에 오래 앉아있더라도 김이 함부로 누지지 않는 것이겠지. 하지만 포장을 제대로 뜯을 줄 모르면, 먹을 때마다 비닐 사이에 들어있는 김이 밥에 제대로 딸려 나오지 않고 늘 조금씩 포장지에 그대로 갇혀 버린다. 김이 찢어져서 밥의 한쪽 면은 그대로 드러난 상태로 약간 급하게 삼각김밥을 먹는 것이 학기 중의 아침 일상.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가면 웬만큼 일찍 일어난다 한들 수업 전까지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20분 내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침 장사를 잘하지 않는 학교 앞 식당들은 대부분 11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 대체로 아침을 그렇게 먹는 날은 이후로도 여유가 없으니, 점심도 매점에서 매번 비슷한 조합으로 사 먹는다. 샌드위치와 팩에 담긴 주스. 좀 더 거하게 먹고 싶을 때는 컵라면과 주먹밥과 초코 맛 아몬드유. 어떨 때는 다이어트 바. 아니면 크래커와 소포장된 방울토마토. 친구들은 얼굴을 볼 때마다 서로를 나무라기 바쁘다.
-오늘 점심 뭐 먹었어?
-……(대답하지 않거나 눈을 피하거나 대답하지 않으면서 눈을 피한다)
-(혼을 낸다)
-그러는 너는 뭐 먹었어?
-……
밥 먹었냐는 말은 지나가듯 하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감시가 된다. 감시당한다는 생각은커녕 나의 식생활에 관심을 두는 것이 기쁘기나 하지만. 하지만 이 지켜봄은 도통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다 보니, 어쩌다 밖에 나가서 그럴듯해 보이는 식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칭찬을 듬뿍 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서로에게 혼이 나지 않을 만큼 영양 균형도 잘 맞고 맛도 있는, 한마디로 ‘고상한’ 점심을 먹을 기회가 좀처럼 없는 까닭에서다. 남들처럼 전기밥솥이나 가스레인지가 있는 집에 사는 것도 아니고, 도시락을 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집은 고속버스로 몇 시간 거리에 두고 왔으니까.
학교 건물에 입점한 도시락 프랜차이즈 앞의 좌석은 매일 학생들로 빽빽하다. 허겁지겁 강의실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대신 남는 시간을 들여 드라마를 보거나 과제를 하거나 잠이라도 자기 위해, 혹은 정말 낼 수 있는 시간이 다음 강의까지 15분밖에 없어서 우리는 ‘간편식’에 기댄다. 골똘히 계산해 보면 그다지 저렴하지는 않지만 간편하고 신속한 식사…… 물론 아가씨가 먹는 홍차를 곁들인 가벼운 점심처럼 음식을 대하는 일은 결국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으니, 용기와 의지만 있다면 이 식사도 아가씨의 식사 못지않은 것으로 부르게 될 수 있겠지만, 일단 내 식탁이 아닌 곳에서, 애초에 식사용이 아닌 탁자(강의용, 회의용, 업무용, 학습용, 혹은 접수용)에서! 먹는다는 시작부터 무언가 어긋나 버린 것만 같다. 편의점에서 산 참치마요 삼각김밥은 밥알이 생생하게 차갑고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린 매점 스팸 주먹밥은 너무 뜨겁다. 곰 세 마리의 딜레마. 그럴 때면 정오의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서, 표고버섯 장조림이 들어간 막 싼 김밥을 따뜻한 국과 함께 먹으며 45분 정도를 쓸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다.
과연 가능할까? 시간을 때우려고, 낮은 혈당치 때문에 집중력을 잃어버려 낭패를 보지 않으려고 먹는 식사에서도 고상함을 찾을 수 있을까? 품을 들여 차렸기에 오래오래 기억할 만한 어느 날의 식사에 비할 만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끝난 간편한 식사는 벌써 수도 없이 많아서, 자주 먹어서 익숙해진 메뉴 이름 말고는 별로 기억나지 않으니까.
이 말은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떠올려 보면 잘못 뜯은 삼각김밥을 먹는 감동 없는 날 중에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시간이 있다. 그날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정확하게. 표준적이고 균일한 맛을 가진 같은 음식을 어김없이 다시 사 먹게 될 때 문득 꺼내보고 싶어지는 기억들.
이를 테면, 강의 사이에 시간이 맞는 운 좋은 사람들끼리 동아리방에 있는 비디오플레이어를 켜고 비디오테이프로 된 <소녀혁명 우테나> 애니메이션을 몰아볼 때(영화동아리다) 나는 학교 매점에서 산 김치쌀국수컵라면을 들고 생긴 것만큼 맛이 있지 않다고 불평하면서도 연신 면을 마시고 있었다. 정수기에서 그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찰랑찰랑 부어서 동아리방 탁자까지 균형을 맞춰 가져오는 일. 다른 때보다 느릿한 걸음으로 그걸 무사히 해냈을 때 그날 점심은 몹시 다행스러워진다.
아침에 새벽 수영을 마치고 두 개 묶음인 삼각김밥을 사서 명란마요 맛인 하나를 먹고, 같이 딸려 온 캐릭터 스티커를 성의 없이 노트의 남는 자리에 붙인 다음 남은 것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날도 있었다. 아침 강의를 듣다가 도저히 허기가 져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에 있는 것을 지금 먹어야겠다. 결의에 차서 건물 복도에서 미지근해진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뜯어서 먹었더니 살 것 같았다. 별일이라고 이렇게 자세하게 떠드나 싶지만, 그날 이 삼각김밥은 아주 잘 뜯겨서, 식사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에서 나는 흘리지도 않고 손에 묻히지도 않고 위기를 잘 넘겼다. 사람은 배가 고플 때 아주 침착해진다. 준하에게 이야기해 주면서는 ‘궁상맞은 식사 에피소드로 어떠냐’며 웃긴 했지만.
막 학교에 입학하기 전 기숙사에 입사했던 첫날의 편의점 음식도 아마 앞으로 튀김우동 컵라면을 먹을 때마다 나를 괴롭힐 것이다. 모르는 도시의 모르는 방에서 한가득 있는 살림을 혼자 풀다가, 배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였지만 의무적으로(이제 밥 정도는 챙겨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흩어진 잡동사니 사이를 대충 치우고 앉아서 딸랑 튀김우동 라면 하나만 사 먹었을 때는 벌써 밤 9시였고 겨울이라 오후 5시부터 벌써 깜깜했었고 기분이 일렁였다. 전화로는 엄마에게 저녁은 잘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날은 그러고 나서 이불만 펴고 곧장 잠에 들어 일렁이는 기분은 잊어버렸지만, 그날 먹었던 것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방에서 1년을 살고 나왔다. 항상 강의를 듣느라 기숙사 식당이 열려 있는 시간을 놓치는 사람이었으니까, 첫날과 똑같은 자리에서 삼각김밥을 많이도 먹었다.
표고버섯 김밥과 장국과 그걸 혼자 먹으며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금방 또 그 김밥을 파는 가게를 찾아가고 싶어 진다. 하지만 평소처럼 아무렇게나 삼각김밥을 뜯게 되는 날에, 그런 영양 불균형한 식사 중에도 있었던 그렇게 초라하지만은 않은 기억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 진다. 혼자 먹는 아가씨다운 식사의 기억이 친구들과 보는 비디오의 기억과 늘 나란히 선다는 것. 실은 무엇을 먹었는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까지 해버린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삼각김밥이 아니라 그렇게 절도 있는 움직임을 남기고 가는 정확한 마음들일지도 모른다고.
……
그래도 맛있는 걸 먹고 싶다. 멋있는 게 아니어도 좋으니까 맛있는 걸. 이왕이면 제철 채소가 듬뿍 들어간 걸.
삼각김밥을 잘 뜯는 법을 아직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