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않으면 패턴은 시스템이 만든다
※ 본래 11편은 '실수를 줄이는 사람이 아니라 루프를 끊는 사람'으로 예정이었으나, 이전 편인 '위기는 사건이 아니라 패턴이다'에서 좀 더 심화된 글을 보여드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부득이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터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순간만을 보며 놀랍니다.
그 이전에 무엇이 누적되고 있었는지는 자주 생략되기 때문이죠.
사실 시스템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외면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반복을 통해 설계됩니다.
감정은 눌리고, 설명은 지연되고, 판단은 유보된 채 ‘이번만’이라는 판단이 쌓입니다.
그 판단 하나하나는 크지 않지만, 흐름 속에서는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흐름이 굳어질 때, 그제야 우리는 ‘문제’라고 부릅니다.
흐름의 가장 무서운 점은 기억을 지운다는 데 있습니다.
명확한 사건과는 다르게 흐름은 희미하게 스며듭니다.
“왜 이 일이 이렇게 된 거지?”라고 묻는 순간조차 이미 흐름은 사라지고 난 뒤입니다.
[불편함을 그냥 넘김] → [왜 그런 기분인지 말하지 않음] → [문제가 생길까 봐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음] → [결과만 보고 원인을 따지지 않음] → [비슷한 불편함이 계속 반복됨]
이 흐름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결과만을 해석합니다.
“그 사람이 나갔어.”
“분위기가 싸해졌어.”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감정을 저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흐름으로 바꾸어 지워버립니다.
우리는 그래서 기억해야 합니다.
흐름은 말로 남기지 않으면 잊히는 구조라는 것을.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리듬, 공유되지 않은 타이밍, 의도되지 않은 오해가 쌓이면 시스템은 무표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무표정이 누군가에겐 견딜 수 없는 공기로 작동합니다.
어떤 실수는 용인됩니다.
그 실수가 누구의 것인지, 어떤 맥락인지에 따라 다르게 처리됩니다.
이 선택적 용인은 흐름을 왜곡시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기한을 자주 어겨도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넘어갑니다.
다른 누군가는 사소한 실수에도 반복적으로 지적을 받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차별’보다 ‘패턴’입니다.
시스템은 어떤 실수가 반복적으로 용서될 때, 그 관용의 패턴을 구조로 인식하고 기억합니다.
그래서 특정 유형의 실수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흐름이 생기면 그것이 마치 허용된 기준처럼 행동에 반영됩니다.
[어떤 사람은 실수해도 넘어감] → [무엇이 괜찮고 무엇이 안 되는지 기준이 흐려짐] →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짐] →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약해짐] → [갈등을 피하려는 행동이 늘어남] → [비슷한 실수가 계속되며 구조처럼 굳어짐]
이 구조 안에서 누군가는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누군가는 점점 더 무신경해집니다.
흐름은 무너지고 성과는 요행처럼 작동합니다.
기준이 사라지면 감각은 무너지고, 감정은 왜곡됩니다.
그럼 결국 위기는 찾아옵니다.
언제부터 어그러졌는가?
→ 흐름은 시점을 중심으로 기억됩니다.
→ 누군가 빠졌던 회의, 생략된 피드백, 회피된 논의. 그 '처음'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감정이 반복되었는가?
→ 당황, 긴장, 무기력, 분노. 감정은 구조를 비춥니다. 반복되는 감정은 단서입니다.
누가 먼저 멈췄는가?
→ 말하지 않기 시작한 사람, 질문을 줄인 사람, ‘알아서 하겠다’며 거리를 둔 사람. 흐름은 행동보다 빠르게 관계를 정의합니다.
이 루틴을 반복하면 흐름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건보다 흐름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 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사건은 사람의 기억에 남지만, 흐름은 시스템의 방식으로 굳어집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보통 더 쉬운 쪽으로 흘러갑니다.
말하지 않기, 덜 관여하기, 조용히 넘기기 등등.
하지만 그 쉬운 방식은 언젠가 비용을 동반합니다.
누군가는 조용히 사라지고, 누군가는 계속 남지만 피로해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합니다.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이 흐름은 누구를 지치게 하고 있었나?”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까?”
“그 침묵은 언제부터였을까?”
기록은 흐름의 재구성입니다.
흐름이 있어야 구조가 보이고, 구조가 보여야 바꿀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실수를 줄이는 사람이 아니라 루프를 끊는 사람”에 대해 다룹니다.
실수는 행동의 문제지만 루프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늘 흐름을 먼저 읽은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