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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Cactus Mar 22. 2024

1화 그가 떠났다.

그가 떠났다.

1화 그가 떠났다.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인종, 특정단체, 국가는 실제와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로마로 여행 갈까?  같이 산지 오 년이 넘어가니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변하게 했다. 엄마도, 친구도 틀렸다. 내가 옳았다. 처음으로 우리를 위해 계획을 세우던 그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나는 그와 함께 떠날 수 없었다. 바로 전화 한 통 때문이다.  곧 돌아온다던 그는 출국직전에 전화를 했다.   ‘응, 바로 인터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먼저가 있을래? 곧 따라갈게’ 걱정하는 나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엄마라면 화를 낼 테지만 그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니 언제나처럼 내가 참아준다.  며칠 후에 나를 따라온다던 약속은 깡그리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는 그이다.  하루에 한 번밖에 전화통화를 못하는 것에도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취업문제로 날카로워진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외로울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원하는 곳으로 관광 가고 배고프면 맛있는 음식을 내 마음대로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니 너무 좋았다. 그가 생각나서 화상통화를 해봤지만 연락은 잘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뭐.. 즐거운 시간에 집중하기로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비행기좌석 상단의 짐을 넣고 바로 문자를 보냈다. 이륙하기 전에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 문자로 그의 눈치를 살핀다.

‘이제 비행기 안이야 준비는 다됐어?’

‘물론’

생각보다 빠른 문자메시지였지만 여행 내내 짓눌렀던 찜찜한 감정이 엄습해 왔다.  비행기는 이륙했고 연락할 수 없으니 나의 배속은 끊임없이 타들어갔다.

드디어 도착했다.

그가 내차를 타고 출국 전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공항 주차장으로 향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뭐에 홀린 것처럼 주차장 엘리베이터에 내 몸을 실었다. 미리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지하로 내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차는 여행 전 찍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주차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의 손에 차키가 포함된 키꾸러미를 넘긴 것이 생각났다.  설마.. 짐을 아무렇게나 넣고 운전대를 잡았다. 평소 같으면 음악도 듣고 여유가 있었을 길인데 거칠게 운전해서 집에 도착했다. 한 시간 족히 걸리는 거리를 삼십 분도 안 걸린 것 같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화분아래 비상키로 문을 열었다. 집안은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급히 불을 켜고 집안을 살핀다. 문 앞에 항상 걸려있던 그의 재킷과 부츠가 있다. 한숨 돌리고 짐을 찾으려고 돌아보는 순간 그의 물건이 있어야 할 문 앞 협탁이 비워져 있었다. 복도를 따라 옷이 걸려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의 옷은 모조리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장롱의 문도 열려있었다. 나는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떠났고 이 모든 것은 계획적인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갑자기 어릴 때 봤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아빠 어디 가’

내가 들어가고도 남을 슈트케이스가 그의 물건으로 가득 채워갈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옆을 지켰다. 모든 물건이 채워지고 슈트케이스를 세우니 더 거대해져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배웅하는척하며 집안으로 끌고 들어왔지만 아빠는 신경질적으로 나를 밀어냈다.  쓰러진 나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는 표정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일어났다.

‘어디가’

‘너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

그날밤 엄마에게 우리나라가 어디냐고 물어봤고 엄마는 여기가 우리나라야 라고 말했다.  그날 엄마는 싸구려 보드카를 밤새 마셨다. ’ 처음부터 알래스카에 오는 게 아닌데 ‘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엄마는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 알래스카에 뿌리를 내렸다. 파리목숨인 노동자비자를 가진 엄마는 영주권을 미끼로 갑질하는 한국인들 밑에서 개처럼 일했고 임금도 적게 받으며 버텼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몸만 축나던 엄마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아무도 가고 싶지 않아 하는 농업을 선택했다. 당시 농가를 소유한 아버지의 일을 돕던 엄마는 나를 가지며 알래스카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학교를 갈즈음에 큰 마트와 공장이 지어지면서 그의 농장은 빚더미로 변했다. 그는 일자리를 찾아 집을 떠나는 일이 잦아들었고 어느 날은 도둑처럼 자신의 짐만 급히 챙겨 사라졌다.


내 남자친구도 도둑처럼 짐을 쌓았을까?


긴 시간 혼자 지내던  엄마는 남자는 믿을게 못된다고 했다. 하지만 새아버지와 사귄 지 몇 달 만에 결혼을 했다. 나의 예상과 달리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에 비해 나이는 좀 많았지만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결혼이 확정되기도 전에 좋은 동네로 이사 갈 수 있었다. 엄마가 일하는 것과 별개로 기족여행을 가거나 평소엔 생각도 못할 비싼 선물도 자주 해주었다. 특히 사냥을 좋아했는데 그가 틈틈이 가르쳐준 총기관리기술은 내 천직이 되었다. 총을 쏘고 싶다는 내 말에 신나서 나를 가르쳐주는 모습은 나조차 들뜨게 만들었다. 그렇게 겨울 사냥을 함께 가는 것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가장 큰 가족행사가 되었다.  불행히도 그는 우리와 오래 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렇게 새아버지가 우리를 떠난 해 나는 내 남자친구를 만났다. 사냥과는 거리가 먼 결벽증이 심한 공붓벌레였다.  나처럼 반은 아시안 반은 백인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았고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면 좋았겠지만 그는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전공을 전향하며 대학원을 두 번가니 그야말로 빚쟁이었다.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나는 대부분의 생활비를 냈다. 새아버지는 말했다. ’ 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쓸 때 의미가 있는 거야 ‘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는 졸업하고 무의미한 여러 번의 인턴쉽을 끝냈다. 인턴은 구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좌절하는 그와 달리 나는 자연박물관의 정규직으로 합격을 했다. 한참을 우울해하던 그는 웬일로 나의 합격소식에 기뻐하며 로마여행을 제안했다.  변한 줄 알았던 그는 그대로였고 분노할 틈도 없이 사라졌다. 그에게 화를 내야겠다.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음만 새어 나온다.

서재로 달려갔다. 다행히 내 물건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물쇠를 열어 새아버지의 유품인 샷건을 꺼내 들었다. 언제나 총기소지를 반대하던 그이기에 샷건을 건드렸다면 정말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 도착했니?‘

귀신이 따로 없다.

그의 말을 믿고 혼자 여행 가는 걸 반대하던 엄마가 전화를 해왔다.

’응‘

’ 걔 나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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