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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Cactus Mar 30. 2024

2화 여우의 방문

여우의 방문

2화 여우의 방문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인종, 특정단체, 국가는 실제와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나갔지?’


‘맞아'


‘너는 같이 살려면 결혼을 하던가 혼인신고라도 하고 살아야지 그것 봐라 결국은 지가 살만하니깐 도망가잖아

뭐 하러 남의 집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해서 니 인생을 망치니, 남자 때문에 인생 망치는 건 엄마에서 끝내야지

너를 사랑한다는 놈이 어떻게 그렇게 내뺄 수가 있어  그런 놈들이랑은 상종도 하지 말라니깐 뭐 좋다고 근본도 없고 나이 많은 남자를..'


전화기저편으로 끝없는 잔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잔소리가 잦아들고 엄마의 긴 한숨이 들린다.


‘갓김치 보냈으니깐  알아두라고'


‘알았어’


갓김치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로 엄마가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반찬이다.


‘엄마 결혼식에서 남자 같은 옷 좀 입지 말고 예쁘게 하고 와’


나는 한 번도 못한 결혼을 엄마는 벌써 몇 번째 한단 말인가.


한 소리하려다가 기분만 망칠 것 같아서 그만둔다.


‘준비 잘해, 난 좀 자야겠어’


전화를 끊고 미소가 사그라드는 여자.


조용히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저기 열려있는 서랍들과 쓰레기들로 집안이 난장판이다.


평소라면 시간에 상관없이 대청소를 시작하겠지만 침대에 눕는다.


아득해지는 시선에 눈을 감는다.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빠, 저기 여우다. '


‘쉿'


덤불 안에 무장한 사냥꾼은 렌즈로 여우를 잡아낸다.


기대에 찬 소녀의 얼굴을 보고는 이내 여우를 겨냥한다.



찰나의 시간에 총알은 여우의 몸통을 관통한다.


여우는 짧은 괴성을 지르며 날뛰다 힘없이 쓰러진다.


가까이 다가간 아빠가 소녀를 불러 세운다.


‘잠깐만 '


남자는 죽은 여우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댄다.


‘이런’


‘왜?’


‘아무것도 아니야'


난감한 표정의 남자는 생각에 잠긴다.


‘여우꼬리 가져도 돼?’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로 한 여우꼬리를 갖고 싶은 소녀다.


‘이 여우는 병에 걸린 것 같아, 일단 텐트로 돌아가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소녀는 베이스캠프로 앞서갔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어두워지는 밤하늘이 지루해질 때쯤 남자는 돌아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여자가 남자를 불러 세운다.


피범벅인 남자는 가볍게 웃는다.


‘미안해, 여보 오늘은 돌아가자’


남자는 받은 천으로 손을 닦고 짐을 챙긴다.


‘아까는 숲 속에서 혼자 뭐 한 거야?’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남자를 추궁한다.


‘음.. 내가 쏜 여우가 임신 중이었어..

새끼들이 너무 어려서 이미 죽었더라고요

무덤을 만들어주고 왔어’


아이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는 시선을 거두고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잘했네, 근데 오늘따라 별이 참 여우 같네'


‘여우?’


‘저기 봐 곰보다는 작고 강아지보다는 기다란 입이 너무 예쁘다.’


‘그렇네’


끼익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강렬한 불빛 다가온다.


안돼!



부스럭 소리에  눈이 떠진다.


‘김치택배가 왔나 보다’


대충 겉옷을 걸치고 정문으로 다가간다.


빼꼼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집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앞엔 아무것도 없다.


이상하다.


부스럭


마당에서 들리는 소리다.


도둑인가?


장전된 샷건을 들고 뒷마당으로 진입한다.


중년의 여자가 남자가 떠나자 침입자에 의해 살해되다.

같은 비극적이고 지루한 뉴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



철컥


얼른 눈앞에 총을 댕겨 초점을 맞춘다.


타깃 화면 중앙에 오렌지색이 반짝 빛난다.


금빛인지 오렌지색에 시선을 거두고 바라본다.


배만 불룩한 여우 한 마리가 강아지 밥그릇에서 개사료를 먹고 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여우를 바라본다.


눈치도 안 보고 먹이를 삼키는 여우의 볼은 홀쭉하고 다리는 앙상하다.


원칙대로라면 야생동물을 쫓아내야 하지만 임신한 여우 아닌가.


게다가 올해는 혹한기중에서도 가장 춥고 어두운 겨울이었다.


반쯤 열린 서랍 속에 강아지 육포간식이 보였다.


샷건을 옆에 세워두고 육포를 쭉 찢는다.


조용히 한쪽문을 열어 손을 내밀었다.


육포냄새를 맡기 전에 던져야 한다.


너무 놀라면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근처로 날아든 육포에 여우는 화들짝 놀라서 점프를 한다.


다가가 냄새를 맡더니 냉큼 한 입 물었다가 뱉어낸다.


프리미엄 소고기라 비싼 건데 맘에 안 든다 이거지?


냉장고로 뛰어간다.


한참을 뒤지다가 드디어 찾았다.


포장을 찢어 다시 한번 던진다.


100% 유기농 저염베이컨 한팩에 5조각만이 들어있고

가격은 $53(달러)이다.


여우가 관심을 보인다.


냄새를 맡다가 한입 물었다.


뱉어낸다.


개사료를 마저 비우고 담장사이로 사라진다.


내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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