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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Cactus Apr 19. 2024

5화 북극곰 주의보

백만 년 만에 소개팅



‘굶주린 북극곰이 바싹 마른 모습으로 배에 탄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오랜 시간 굶주린 듯 움직임이 둔화된 상태입니다.  

온난화현상으로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의 영향으로 북극의 얼음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검은 머리를  곱고 땋은 에디는 멋스러운 카우보이모자를 고쳐 쓰며 티브이를 끈다.

’ 우리 알래스카주에도 야생동물이 매년 음식을 찾아 인가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쓰레기 버릴 때 조심하셔야 합니다.  과일향 향수, 샴푸, 데오드란트 사용을 자제하세요. 캠핑지역은 나눠드리는 팸플릿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표시된 장소 외엔 캠핑은 물론 어떠한 음식도 먹어선 안됩니다. 작년에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습니다. 사체는 찾을 수 없었지만 야생동물에 의한 실종으로 판단합니다. 외지사람들이 캠핑을 한다면 반드시 신고부탁드립니다.'

에디는 원주민으로 경찰직을 30년 이상 지켜온 베테랑이다.

인자한 미소와 오랜 시간 단련된 벽돌 같은 몸이 사람들의 신뢰를 높여준다.

그는 경찰업무 외에 시민들의 안전에 심혈을 기울이며 소통한다.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알래스카에서 사냥하기'의 커리큘럼도 만들었다.  

마을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눈다.

회관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안내 팸플릿과 작은 상자를 나눠준다.


‘누가 널 기다리는데 누구야?’

‘데이트’

부끄러워하는 여자를 금발의 안나가 꼭 안아준다.

안나는 자연박물관 안내데스크를 맡고 있는다.

언제나 가장 먼저 출근해서 아이스카페모카를 마시며 직원들을 맞이한다.

20 대중반인 안나는 여자를 잘 따르지만 여자의 전남자친구를 탐탁지 않아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전남자친구인 '로난'이 친구들과 무리 지어 여자들과 어울린 것을 봤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메신저 아이디를 물어봤기 때문이다.

여자가 로난을 오래 만나는 것만큼 그의 바람이 들키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당시 여자에게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그가 떠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침내 안도했다.

어떠한 신을 믿지 않는 여자이지만 신이 그녀에게 행복한 미래만을 선사하길 빌었다.

‘역시,  넌 더 잘난 남자 만날 줄 알았어’

‘그냥 데이트야'

금발의 여자는 먼발치 남자의 사진을 찍는다.

‘너무 잘생겼다. 혹시 모르니깐 사진 찍어놔야지’

‘왜?’

‘우리 동네에 저렇게 멋있는 남자가 없었는데 말이야 혹시 모르잖아 이상한 사람일 수도'

미스터리 넥플릭스에 빠져사는 안나는 증거사진 찍듯 남자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범죄자아니야  데이트지'

‘혹시 모르잖아'

사실 여자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긴 하다. 전남자친구와 살기 전부터 190 이상의 키에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라면 근처에서 소문이 나도 났을 텐데 말이다. 안나를 막지 않는다.




-커피숍

‘어떤 커피 좋아해?’

‘난 커피보다는 Tea를 좋아하는데.. 주문하기 쉽게 통일할까?'

‘안 그래도 돼, 좋아하는 차이름을 말하면  내가 주문하고 올게'

‘아 그럼, 따뜻한 녹차’

‘잠시만'

벌떡 일어나 주문을 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니 사뭇 다르다. 주문을 받는 여자도 남자에게 활짝 웃어주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쩜 목소리도 과하지 않고 딱 좋다. 건강하고 매너 좋은 남자가 목소리까지 좋다니 너무 완벽하게 흘러가는 데이트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하며 안나의 의심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꼭 확실히 해야 한다. 일단 물어보기로 한다.

'여기 따뜻한 녹차'

‘혹시 유부남이야?’ 남자를 노려본다. 여자의 표정에 남자는 웃어버린다.

‘하하하, 유부남 아니고 여자친구도 없어, 헤어진 지 오래됐어'

설마 그렇다면... ‘혹시 게이야?’

‘왜 그런 질문을 해?’

‘너처럼 괜찮은 사람을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깐'

‘군인으로 여러 주에 자주 이동해서 여자친구 사귀기 힘들었어’

‘그럼 이제는 셰프로 정착한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지금 공부를 하고 있어'

학생이라는 말에 여자가 새파랗게 질렸다.

‘학생..’

모자를 쓰려는 여자의 손을 살짝 잡는다.

‘이젠 학생이 아니야, 내년 봄에 졸업확정이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어.

사실 결혼식에 일을 하러 갔을 때 너를 봤거든 그때 네가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데이트하고 싶었어’





-주유소 차 안

‘잠깐만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핸드폰이 문자가 울린다.

안나 - 함부로 남자집에 가면 안 돼! 어서 앱을 켜!

여자는 친구 찾기 앱을 켜고 핸드폰을 재킷 안쪽에 넣는다.

‘거의 다 왔어, 여기야'


나는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여 '90일의 데이트'는 제안하였다. 남자는 처음에 당황한듯했지만 곧 수긍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졸업을 위한 마무리를 해야 했고 나도 정규직이 된 이후 인수인계로 정신이 없었다.  간간히 연락하며 남자의 학교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온 남자와 함께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차가 없는 남자는 버스를 이용했고 나는 기꺼이 그에게 달려갔지만 남자는 정중히 거절했다. 만난 지 3개월이 다 되어갔다. 그가 구입한 전기차가 다음 주에 출고된다고 해서 '파이파티'를 했다. 마을에서 유명한 다이닝에서 금요일마다 파이를 1+1으로 판매한다. 그는 호박파이를 나는 레몬파이를 시켜 나눠먹었다. 시큼한 레몬파이만큼 달콤한 그의 눈을 보고 흔들리는 나를 발견했다. 오늘은 금요일 저녁이고 '90일의 데이트'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푸른색의 셔츠가 잘 어울리는 그가 집으로 초대했다. 안나의 문자와 엄마의 노파심을 뒤로하고 차에 그를 싣고 안내하는 곳으로 향한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3층집 주택이다. 지붕이 짙은 네이비색에 벽은 베이지색으로 고풍스럽다. 아름아름 작은 꽃들로 잘 가꿔진 작은 정원을 가로질러 문에 다다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여자는 핸드폰을 꼭 쥐고 주위를 둘러봤다. 집안에 들어서자 황금빛의 샹들리에가 입구를 환하게 비추었다. 코트를 받아 든 남자가 준비된 실내화를 내어준다. 입구엔 엔틱 한 협탁과 심플한 그림이 걸려있다. 오른쪽은 확 트인 거실, 정면으로 고급스러운 계단이  왼쪽은 작은 통로가 보였다. 거실로 안내하는 남자를 따라 들어가자 크고 흰 소파에 유리로 된 거실테이블이 깔끔한 그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소파옆엔 각종 술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골라서 마시고 있을래?' 고마워라고 말하기엔 여자는 긴장했다.’ 아니야 괜찮아' ‘그럼 내가 간단하게 저녁을 만들어줄게 샴페인 마시면서 기다려줘’ 술에 손을 대지 않는 여자를 보고 차가운 샴페인을 한잔 가져다준다.  남자가 자리를 비우자 쉴 새 없이 진동하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한다. 여자는 안나에게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낸다. ‘방금 샴페인을 마시라고 주고 갔어.’ ‘미쳤어! 마시지 마! 집주소랑 집안에 사진을 찍어봐!’ 안나가 연달아 문자를 보냈다. 오른쪽은 확 트인 거실사진을 찍다가 계단 위로 방금 배송된듯한 큰 박스 모서리가 보였다. 급히 사진을 찍어 안나에게 전송했다.  고소한 냄새가 나며 고개를 돌린 여자 뒤로 남자가 서있었다. 왼쪽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넓은 주방에 고급스러운 스톤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큰 접시 위에 먹음직한 치즈베이컨버거와 감자튀김 있다. '맛있게 먹어, 내가 제일 잘하는 음식 중 하나야'  그의 말에 힘입어 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문다. ‘와 너무 맛있다!’ 여자의 큰 목소리에 남자가 어색하게 웃는다.  ‘땡땡땡' 종소리가 난다. 귀를 기울이자 계단에서 나는 소리다. 여자는 버거를 내려놓고 계단으로 다가간다. 사색이 된 남자가 여자를 막아선다. ‘누군가 있어?’ ‘아무도 아니야 버거 먹자' 여유롭고 자비로운 표정의 남자는 사라지고 긴장한 듯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땡땡땡' 거칠어진 종소리에 남자가 소리친다.

‘안젤라 제발!’





회상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에게 다가간다.  ‘예쁘다, 드레스가 잘 어울리네’ 연보라의 촌스러운 새틴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고개를 젓는다. ‘일부러 이런 색 고른 거야?’ ‘너도 덜떨어진 놈 그만 생각하고 웃을 때도 되지 않았니? 그렇게 욕하던 지 사촌 놈처럼 신부배달닷컴에서 여자 골라서 임신시켰다던데 여자의 권리운운하면서 니 등골 빼먹을 때부터 알아봤어.’ 남자의 편도 엄마의 말에 긍정도 하고 싶지 않은 여자다. ‘저기 저 남자 보이지?’ 앞치마에 마스크, 위생모까지 써서 철저히 가렸지만 누가 봐도 멀끔한 사람이다. ‘사람이 참 괜찮다고 하네 생활력도 강하고 성실하고 한번 만나봐' ‘에이 저런 사람이 여자가 없다고?’ ‘있으면 이미 말하고 다니겠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만나봐, 너랑 잘 어울릴 거야. 이제 남자 같은 남자 만나야지''  엄마가 보낸 연락처를 가만히 쳐다보다 문자를 보낸다.  

'안녕'




‘잠깐만!’

부츠를 고쳐 신는 여자를 남자가 막아선다.

‘미안, 나는 복잡한 건 딱 질색이야, 가볼게'

‘땡땡땡' 거칠어진 종소리에 남자가 소리친다.

‘안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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