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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Cactus Apr 06. 2024

3화 엄마의 결혼식

엄마의 세 번째 결혼

이혼이 흠도 아닌  시대가 되었지만 결혼을 할 때는 더 신중해지는 것 같다. 환갑이 다 돼 가지만 로맨스만으로 내 사람을 고를 수는 없다. 어릴 때 알래스카로 이민 와서 두 번이나 결혼을 했고 이제는 세 번째이다. 내 파란만장한 결혼생활 전에 내 어릴 때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남들은 한 번만 해도 참고 살고 이혼하면 남자도 안 쳐다보고 산다는데  뭐 좋다고 자꾸 하냐고 하면 이유가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난했고 집에선 여자인 내가 돈 벌어서 남동생과 오빠를 뒷바라지하길 바랐다. 아빠의 성화에 양말공장이라도 들어가자고 마음먹었을 때 미숙언니와 마주쳤다. 미숙언니는 동네에서 소문난 효녀로 참 착했다. 일찍이 양말공장에서 일한 돈으로 오빠들을 대학 보냈고 술만 마시던 아버지의 객사로 졸지에 입이 8개나 되는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됐다. 몇 달 전 미숙은 양말공장보다 보수를 더 주는 공장으로 일하러 갔다. 손이참 길고 예뻐서 피아노가 치고 싶다던 미숙언니는 주머니에서 왼손을 꺼내지 않았다. '왼손 왜 안 보여줘?' 장난스러운 말에 미숙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좀 다쳤어' 꺼내든 손은 문들어져 보라색이다 못해 검은색이었다. 놀라 미숙의 얼굴을 쳐다보자 어두운 낯빛에 실실 웃기만 했다. '괜찮아 좀 쉬면 돼' 새 공장에서 다치고 바로 쫓겨난 언니는 가족들에게 돌아갔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아픈 손을 천으로 매어주고 일을 찾아보라고 거리로 내몰았다. 착해 빠진 미숙언니는 그렇게 거리를 전전하다 결국 비명행사했다. 장례를 치를 형편이 안 되는 미숙의 가족들은 부주의한 미숙언니 탓을 하며 돈을 빌리더니 모은 돈을 들고 야반도주했다. 마을 누구도 가족을 탓하지 않았다. 의외로 이렇게 가족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고 당연했다. 특히 여자라면 결혼하면 내식구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고 결혼 전에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는 가족구성원은 많았다. 이유 없이 죽은 미숙언니를 생각하니 어린 내 심장 꽉 막힌 듯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


아빠의 성화에 약속대로 양말공장에 들어갔지만 가족을 위해 한 푼도 내놓지 앉아았다. 몇 달은 잠잠했지만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공장문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첫 번째로 온 사람은 사촌오빠였다. 이 사촌오빠는 가족 중 가장 덩치가 크고 멍청해서 친척언니들이 돈 벌어서 보내준 중학교도 포기한 무식한 놈이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순간 미숙언니의 어두운 낯빛에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돈' 대답 없이 얼굴을 쳐다보자 배를 발로 가격하고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던졌다.  얼마나 죽도록 때렸는지 싸가지 반장이모가 달려와서 말리기 시작했다. 몇 달을 맞으며 돈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한 번은 아빠와 삼촌, 사촌오빠가 공장 앞으로 찾아왔다. 역시나 나의 월급날이었다. 돈을 내놓지 않으니 공장을 못 다니게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관리자인 남자반장을 바라봤지만 무시할 뿐이었다. 일하는 사람의 인권 같은 건 없는 시대였다. 내 멍을 보고 안쓰러워하던 한 언니가 말했다. '외국은 일하는 사람들 잘 지켜주는데 알래스카에 일자리가 많데' '알래스카?' '일자리도 많고 먹고살기도 좋아 아메리칸드림 알지?'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거기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너 영어 좀 하니?' '영어요?' '친척이 알래스카로 이민을 갔는데 일도 편하고 이번에 돈 많이 벌어서 집도 샀대' 월급날마다 가족한테 두들겨 맞아서 잠 못 이루기 싫다. 몇 달을 버티던 나는 새로운 희망을 돋아났다. 월급을 봉투째 사촌오빠에게 넘겼지만 일부를 빼돌려 비행기 값을 모았다. 가족이라지만 그들을 위해 일하다 길거리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여자라도 억울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언니가 소개해준 사람들이 내 이름이 써진 종이를 들고서 있었다. 비루한 내짐을 맡아서 들어주고는 바로 차를 출발했다. 얼마나 갔을까 창문사이로 익숙한 냄새가 났다. 동물분변의 냄새에 코를 막고 기침을 한다. 냄새가 진절머리 날 때쯤 집에 도착했다. '집 멋있지?' 자랑할만한 초록지붕의 대궐같은 3층집이었다. 내가 대답하고 그들을 따라 정문으로 들어가자 막아섰다.  '우리 가족 외에 누구도 여기로 들어오면 안 돼' 정문으로 가는 큰 계단 옆에 작은 문을 열어주었다. 천장의 줄을 당기자 작은 불을 켜지고 음식이며 짐이 한쪽에 가득했다. 다행히 매트리스와 세면대와 화장실도 있었다. '일은 4시부터 시작이고 늦으면 안 돼' 그들과 지내며 나는 영어를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당시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으며 그들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공부를 해서 운전면허를 따고 그들을 위해 장을 보거나 일처리를 했다. 근 10년 이상 그들과 함께했지만 그들은 내 임금을 올려준 적이 없다. 나의 사정을 아는 캐시가 농장에서 일할 생각 없냐는 제안을 했다. '고마워 생각해 봐도 될까?' '물론' 이틀 후 월급날이었다. 올해부터는 회계일도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이 많은데 월급 좀 올려줄 수 있어?' '무슨 소리야' '식당일이며 집안일이나 회계사일까지 하는데..' '그건 좀 곤란해'  '그럼 내가 일층에서 지내도 될까? 지하실은 벌레가 너무 많고 추워' '이 집은 가족 외엔 아무도 못 들어와 알잖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핀잔을 주는 그들에게 대충 대답을 한다. 월급날 그 집을 떠났다.



캐시의 소개로 찾은 새 일자리는 그전보다 멀리 있었다. 농장의 특성상 외지에 있었으며 사장님은 나보다 5살쯤 많은 이민자였다. 아들과 딸하나의 단란한 가족과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넘어왔지만 좀처럼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무리한 그의 대출과 계획에 가족이 떠났다고 한다. 뭐 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찬밥 더운밥 가를 때가 아니었다. 내 주 업무는 그가 소유한 돼지농장과 양계장 관리였다. 그의 집은 전 한국인들의 집보다는 작은 2층집주택이었다. 1층 부엌 옆에 작은 다락방을 내주었다. 가진돈으로 간단히 장을 보고 돌아왔다. 놀란 눈의 남자가 나를 바라봤다. '내 차를 타고 도망간 줄 알았어' 피해망상이 심한 것 같다. '배고플 것 같아서 베이컨 볶음밥에 감자튀김 어때?' 잠시 멈춘 그는 방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만들고 그를 불렀다. 눈이 붉어진 사장이 고맙다며 식사를 한다. 혼자 일하며 외로웠던 사장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아이를 가졌고 행복할 줄 알았다. 몇 년이 지나자 그의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학교 가기 전까지 회복할 줄 알았지만 그의 선택은 나와 아이를 떠나는 것이었다. 사랑이었을까? 외로움의 사무친 실수였을까? 나의 첫 번째 결혼은 이렇게 끝났다.




아이가 있으니 떠난 사람을 원망하고 시간을 보낼 수 없다. 도심지에 갈 수 있는 여유가 없으니 사냥터 근처의 주유소에서 파트타임 일을 시작한다. 아이는 학교를 가기 시작하고 월세방도 잡았다. 사냥터옆에 사냥도구샾이 생겼다. '알바구함' 눈에 보이는 여분의 포스터를 모두 뜯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 규모가 큰 가게였다. 가게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잘해준 것 없는 가족도 고향도 타향살이에 마냥 그립다. 총기코너의 맥스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심한데 그날따라 먹은 타코가 문제인 것 같았다. 대신 자리를 봐주다 눈에 띄는 남자를 봤다. 수업이 덥수룩하고 모자를 푹 눌러썼는데 눈빛이 참 예쁘다. 대화를 할수록 괜찮은 사람 같았다. 차도 있고 직업도 있는 것 같았다. 그 정도면 됐지. 데이트신청을 해서 나갔더니 동네 허름한 술집에서 햄버거를 사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아둔 돈으로 쓰기로 한다. 데이트를 하며 허름한 그의 옷을 사주고 맛있지만 비싼 식당에 데려갔다. 한국음식이 처음이라며 들뜨는 모습이 아이 같다. 데이트를 하며 딸의 이야기에도 긍정적이었다.  여러 번의 만남이 계속되고 우리는 그의 집에 정식으로 초대된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집도 알래스카뿐이 아닌 다른 나라에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발명가인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힘들게 산적이 없다고 한다. 가족이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른 나라에 와서 깨달았다. 다만 걸리는 것은 나의 가족처럼 무식하고 과격한 행동이 없지만 총으로 동물을 사냥은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로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으로 가족끼리 사냥을 해왔다고 한다. 살생에 거부감이 있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막을 수는 없다. 거침없이 딸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나는 그의 가족인가? 내 딸도?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고 큰 집으로 이사 간다. 정문이 내 키를 훌쩍 뛰어넘게 크고 길고 웅장한 정원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야 집이 나온다. 할리우드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성공한 집이었다. 그의 사려 깊고 기품 있는 가족들은 나와 내 딸을 환영했다. 교회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 후 뉴욕과 파리등 5개국을 여행했다. 여유있는 그 덕분에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되었다. 집안일도 메이드와 요리사가 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월래 일하던 성격은 버릴 수가 없다. 길게 놀지 못하고 공장에서 매일 돌리던 재봉틀이 그리워서 양장점을 하나 차린다.  물론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작은 쉬웠다. 많은 손님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고 사업은 번창했다. 그의 사랑은 물질적이었고 전폭적이었으며 무한했다.  남자지만 성격이 유순하고 침착했다. 남들에겐 사려 깊고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았다. 내가 원하는 것에 한 번도 안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물론 큰소리를 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손해를 보더라도 남들을 위하는 생활태도에 나는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제 결혼 10주년이 다가온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 같은 사람이다.  '탕' 그는 가장 좋아하는 나무집에서 머리를 쏘고 자살한다. 어떠한 약물이나 술의 흔적은 없으며 총이 머리를 관통한 후 몇 시간 괴로워하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그의 자살장소는 너무 끔찍해서 가족들도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나의 두 번째 결혼도  끝났다.



한동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서웠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혼인서약서를 쓰지 않은 나는 그의 가족들과 재산상속 관련 재판을 치르며 세월을 보냈다. 재판을 마치면 배가 너무 고프다. 푸드트럭으로 발길을 돌린다. 중년의 남자가 나를 반긴다. 한국사람인줄 알았는데 일본사람이었고 처음 보는 남자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핏대를 올려 싸우고 씩씩댔다. 메인스트릿에 자신의 초밥집에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 남자라면 치를 떨던 나는 웬일인지 딸과 그의 식당으로 놀러 간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태어나길 하와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손이 참 고운 남자는 요리사였다. '돈 없으면 안 사귀고 결혼 안 하면 안 만나요' 황당한 제안에 그는 웃어버린다. 핸드폰으로 자신의 계좌와 주식, 자신이 보유한 집과 보트사진을 보여주었다.  '결혼합시다.' 황당한 제안에 황당한 답변이다. 만난 지 일 년이 넘은 우리는 이제 결혼한다. 두려움이나 후회는 나를 어디로도 인도해 준 적이 없다. 언제나 희망과 새로운 것들이 나에게 인생을 선사해 주었다. 나의 모든 일이 완벽할 수 없지만 주저앉아있는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내 세 번째 결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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