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났다.
1화 그가 떠났다.
본 작품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인종, 특정단체, 국가는 실제와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로마로 여행 갈까? 같이 산지 오 년이 넘어가니 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변하게 했다. 엄마도, 친구도 틀렸다. 내가 옳았다.
처음으로 우리를 위해 계획을 세우던 그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나는 그와 함께 떠날 수 없었다. 바로 전화 한 통 때문이다. 곧 돌아온다던 그는 출국직전에 전화를 했다.
‘응, 바로 인터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먼저가 있을래? 곧 따라갈게’
걱정하는 나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엄마라면 화를 낼 테지만 그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니 언제나처럼 내가 참아준다.
며칠 후에 나를 따라온다던 약속은 깡그리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는 그이다. 하루에 한 번밖에 전화통화를 못하는 것에도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취업이 되지 않아 날카로워진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외로울 거라는 내 생각은 틀렸다. 마음 내키는 대로 관광 가고 먹고 자니 너무 좋았다.
멀리 기차를 타는 장거리에 조금 지친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대충 말린다. 화장을 할까 하다가 선글라스를 집는다.
호텔 앞을 걸어 다니다 발견한 아담한 카페로 들어간다. 외국인들이 저마다 선글라스를 쓰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노신사는 양복을 차려입고 신문을 반을 접어 읽으며 간장종지만 한 잔을 들어 홀짝인다.
옆테이블 쪽진 머리금발의 미녀들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와인을 한잔씩 들이키고 있다. 숨 쉴 새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담배도 피운다.
담배생각이 나서 하나 빌릴까 하다가 건강에 안 좋으니 금연하라는 그의 말이 생각나서 포기한다. 그나저나 냄새를 맡으니 더 피고 싶다.
자리를 옮겨야 하나 하고 고민할 때 서버가 커피 한잔 크로와상접시를 내려놓는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 도전에 등을 돌리고 돌아선다.
왜 저렇게 말 한번 못 붙이게 턱을 하늘로 고정시키고 다닐까? 핸드폰을 꺼내니 역시 연락이 없다. 전화를 해본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는다.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 물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랜만의 햇빛이 강렬하게 쏟아진다.
일찍 도착한 공항은 한산하다. 비행기좌석 상단의 짐을 넣고 바로 문자를 보냈다. 이륙하기 전에 ‘보고 싶어’라고 문자를 남긴다.
핸드폰 전원을 끄라는 승무원의 말에 마음이 급해진다. 문자를 하나 더 보낸다.
‘이제 비행기 안이야 인터뷰는 잘 봤어?’
‘물론’
예상외의 답장이다. 여행 내내 짓눌렀던 찜찜한 감정이 내 가슴속에 드리워진다. 비행기는 이륙했고 나의 배속은 끊임없이 타들어갔다.
미국에 도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미국입국심사는 더 까다롭다.
뭐가 불만인지 얌전히 줄 서있는 사람들에게 투덜대며 함부로 대한다.
테러리스트나 불법입국을 한다고 해도 모두를 돼지우리의 동물처럼 함부로 대하고 소리쳐야 할까
일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사 온 짐이며 옷가지를 마음대로 휘젓더니 어디론가 끌고 간다.
짐을 X-ray 검색대를 통과하고 몸수색을 한번 더한다. 미국여권을 들고 검색대에 서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줄이 줄어들며 내 차례다. 유리건너편에 사람이 호명하면 옆의 직원이 안내를 한다.
모두 인상을 쓰고 좋지 않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소리치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지만 그들의 태도는 가히 폭력적이다.
그중 유독 이마의 주름이 짙고 삼백안의 눈동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
저 사람만 아니길 바랐지만 그가 부르자 안내직원이 나를 재촉한다.
‘어떻게 오셨죠?’
‘여행을 갔다가 돌아왔어요.‘
미국여권인데 어떻게 오셨냐니 불안감이 증폭된다.
‘미국에서 태어나셨나요?’
‘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누구나 시민권을 가질 수 있다. 입양아인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직장과 집주소를 물었다. 집소유 유무를 묻고 직장을 구글링 했다.
‘알래스카자연박물관’ 웹사이트를 한참 둘러보더니 말했다.
‘직원 사진이 없네요. 마지막으로 직장상사 전화번호 좀 적어줄래요?’
최대한 감정표현을 숨기기 위해 입을 굳게 닫는다. 핸드폰을 꺼내 상사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번호를 불러주자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며 핸드폰을 내려놓으라고 소리쳤다.
크로와상 같은 손으로 용케도 펜을 쥐고 전호번호를 옮겨 적었다.
숙였던 고개에서 눈만 치켜 튼다.
‘잠시 기다리세요’
공항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면 샷건으로 머리를 날려 버릴 텐데.
‘가도 좋아요’
검색대여자의 이름표를 확인하고 물러난다. 출국장으로 나가니 역시나 그가 없었다. 그도 그다.
여행당일 그가 내차를 타고 출국 전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공항 주차장으로 향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뭐에 홀린 것처럼 주차장 엘리베이터에 내 몸을 실었다.
미리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지하로 내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차는 여행 전 찍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주차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의 손에 차키가 포함된 키꾸러미를 넘긴 것이 생각났다.
설마.. 스페어키로 차문을 열고 짐을 아무렇게나 넣고 운전대를 잡았다. 평소 같으면 음악도 듣고 여유가 있었을 길인데 거칠게 운전해서 집에 도착했다.
한 시간 족히 걸리는 거리를 달려오는데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인기척은 없었다. 문 앞에 화분을 들어 비상키를 꺼냈다. 천천히 키를 집어넣고 문고리를 돌렸다.
집안은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불을 켜고 집안을 살핀다. 문 앞에 항상 걸려있던 그의 재킷과 부츠가 있다.
안도감에 한숨을 쉬고 차의 짐을 찾으려고 돌아보는 순간 문 앞 협탁이 눈에 들어왔다.
협탁 위의 바구니엔 그가 좋아하는 오렌지가 없다. 복도를 따라 옷이 걸려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그의 옷은 모조리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장롱의 문도 열려있었다.
나는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떠났고 이 모든 것은 계획적인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빠 어디 가’
내가 들어가고도 남을 슈트케이스가 그의 물건으로 가득 채워갈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옆을 지켰다.
모든 물건이 채워지고 슈트케이스를 세우니 더 거대해져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배웅하는척하며 집안으로 끌고 들어왔지만 아빠는 신경질적으로 나를 밀어냈다.
쓰러진 나를 보고도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일어났다. 피맛이 났다.
‘어디가’
‘너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
마침온 택시에 낑낑대고 짐을 실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혼자서 하루를 보낸 나는 일이 끝나고 돌아온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힘들게 일을 마치고 온 엄마도 애써 내색하지 않고 나를 불러서 같이 씻었다.
지끈거렸던 머리 위로 따듯한 물이 닿자 이마의 주름이 느슨해졌다.
‘향기 좋지?‘
고개를 끄덕이는데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거품 놀이를 한참하고 내가 물기를 닦았다.
머리가 제법 길어서 드라이어를 들어 말리자 칭찬을 들었다.
목욕가운에 대충 걸치고 냉동식품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오렌지주스를 따라주며 엄마는 싱크대밑에 보트카를 꺼내 한잔 따른다.
‘엄마, 우리나라가 어디야?‘ 엄마는 여기가 우리나라야 라고 말했다.
’ 처음부터 알래스카에 오는 게 아닌데 ‘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엄마는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 알래스카에 뿌리를 내렸다.
파리목숨 노동자비자를 가진 엄마는 영주권을 미끼로 갑질하는 한국인들 밑에서 개처럼 일했고 임금도 적게 받으며 버텼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몸만 축나던 엄마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아무도 가고 싶지 않아 하는 농업을 선택했다.
당시 농가를 소유한 아버지의 일을 돕던 엄마는 나를 가지며 알래스카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학교를 갈즈음에 큰 마트와 공장이 지어지면서 그의 농장은 빚더미로 변했다.
그는 일자리를 찾아 집을 떠나는 일이 잦아들었고 어느 날은 도둑처럼 자신의 짐만 급히 챙겨 사라졌다.
내 남자친구도 도둑처럼 짐을 쌓았을까?
긴 시간 혼자 지내던 엄마는 ‘남자는 믿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새아버지와 사귄 지 몇 달 만에 결혼을 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그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에 비해 나이는 좀 많았지만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결혼이 확정되기도 전에 좋은 동네로 이사 갈 수 있었다.
엄마가 일을 하지 않아도 비싼 지역으로 가족여행을 가거나 고가의 선물도 자주 해주었다.
특히 사냥을 좋아했는데 그가 틈틈이 가르쳐준 총기관리기술은 내 천직이 되었다. 총을 쏘고 싶다는 내 말에 신나서 나를 가르쳐주는 모습은 나조차 들뜨게 만들었다.
그렇게 겨울 사냥을 함께 가는 것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가장 큰 가족행사가 되었다. 불행히도 그는 우리와 오래 하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렇게 새아버지가 우리를 떠난 해 나는 내 남자친구를 만났다. 사냥과는 거리가 먼 결벽증이 심한 공붓벌레였다.
나처럼 반은 아시안 반은 백인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았고 공부밖에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면 좋았겠지만 그는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전공을 전향하며 대학원을 두 번가니 그야말로 빚쟁이었다.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나는 대부분의 생활비를 냈다.
새아버지는 말했다. ’ 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쓸 때 의미가 있는 거야 ‘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는 졸업하고 무의미한 여러 번의 인턴쉽을 끝냈다. 인턴은 구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좌절하는 그와 달리 나는 자연박물관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한참을 우울해하던 그는 웬일로 나의 합격소식에 기뻐하며 로마여행을 제안했다.
변한 줄 알았던 그는 그대로였고 분노할 틈도 없이 사라졌다. 그에게 화를 내야겠다.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연결음만 새어 나온다.
서재로 달려갔다. 다행히 내 물건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물쇠를 열어 새아버지의 유품인 샷건을 꺼내 들었다.
유난히 총기소지를 반대하던 그이기에 샷건을 건드렸다면 정말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 도착했니?‘
귀신이 따로 없다.
그의 말을 믿고 혼자 여행 가는 걸 반대하던 엄마가 전화를 해왔다.
’응‘
’ 걔 나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