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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브소

내 브런치 작가를 소개합니다

by 캐서린의 뜰


작가중심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어지간한 글솜씨로 구독자를 늘리기 어렵다. 구독자 품앗이처럼 내가 먼저 찾아가 ‘좋아요’를 눌러야 답방이 오는 구조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여간해선 새로운 작가의 글을 먼저 찾아 읽지는 않고, 새롭게 찾아와 주신 작가님의 글을 다시 읽는 노력도 부족하다. 심지어 댓글에 답글을 달지도 않는 나.


이제 와서 어설픈 변명을 늘여 놓자면, 먼저 새로운 작가를 찾지 않았던 건 이미 초반에 알게 된 주부 작가님들의 글을 빠짐없이 읽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또 에디터 추천, 뜨는 작가의 글을 읽더라도 그 한 편의 글이 내게 별다른 감흥이나 공감을 주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오히려 믿고 거르는 글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발행 알람을 꺼버리고 싶을 만큼 조용히 숨기고 싶은, 여전히 습작 단계인 내 글을 찾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께는 그저 몸 둘 바 모르게 감사하지만 답례의 방문과 좋아요를 위해 읽지도 않고 그저 ‘좋아요’를 남발하는 전략적인 분들의 뒷모습을 보면 약간의 씁쓸함이 남기도 한다. 물론 눈에 띄는 필력을 지닌 작가님들 중엔 천 단위 구독자를 가진 분들도 많지만, 구독자의 많음이 곧 글의 좋음을 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독자 수나 좋아요 수로 글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 내게 좋은 작가를 찾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기도 하다.


그 와중에 우연히 찾아낸, 보석 같은 작가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솔직히 나만 알고 싶은 마음(그러기엔 이미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셨지만)과 이 분들의 글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쓸데없이 상충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오늘 소개해 드릴 작가님들은 모두 ‘회사원’이라고 담백하게 자기소개에 적어두셨지만 결코 평범한 회사원들이 아니다. 만약 회사 탕비실에서 브런치 작가의 신분을 숨긴 김대리, 박 과장, 최팀장님과 매일 가벼운 목례로 스치듯 지나가며 등을 돌려 각자 커피나 차를 타고 있었다면 분명 원통할 일이었을 거다. 미처 알아보지 못한 나를 두고두고 질책했으리라.


radioholic

요리도 하시고 검도도 하시고 기타도 치신다. 필명에서 느껴지듯 음악을 좋아하셔서 노래와 얽힌 이야기를 담담한 필체로 풀어내 주신다. 내가 생각하는 에세이의 정석을 보여주시는 작가님이시다. ‘꼭 이래야 한다’는 확신보다는 ‘나는 이렇다’는 소박한 고백이 담긴 글들에 유독 눈길이 간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라는 에세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작가님의 글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세잇

다독가시다. 특히 소설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소설책 뒤편에 문학 평론가가 현학적인 언어로 소설을 설명해 주는 게 불만이었던 나는 이 분의 글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원작보다도, 평론가의 해설보다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이해하는 깊이도 남다르거니와 그것을 설명하는 어휘는 난해하지 않은데 지적이고, 그 표현들은 화려하지 않은데 아름답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너그럽고 따뜻하다. 아마도 이 작가님과 내가 자동차 접촉 사고로 서로를 모른 채 차에서 내리더라도 “아, 아저씨 그냥 막 밟으시면 어떡해요”, “아이씨 아줌마 운전을 왜 그딴 식으로 해요” 하며 삿대질하는 일은 없으리라 상상해 본다.




자크

독백 같은 문장들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짧은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우연한 기회로 처음 이 분의 글을 읽었을 때, 스무 살 무렵 처음 기형도 시집을 읽었을 때의 감정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이미 구독자가 많은, 아마도 나만 모르고 다 아는 작가님이실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소개하고 싶을 만큼 멋진 글을 쓰신다.



내겐 무림의 고수처럼 느껴지는, 이상의 작가님들. 언젠가 브런치를 통해 이분들의 출간 소식을 듣게 된다면 교보문고든 영풍문고든 한달음에 달려가 이 분들의 책에 사인을 받고 싶은 희망을 담아 오늘 글을 마친다.


*** 작가님들의 허락없이 글을 공유했는데 혹 불편하시면 언제든 내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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