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권력을 가진 나이 든 남자들
(사회아버지와 나의 관계)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 1

by 벌판에 서서 Oct 25. 2023

  나는 내가 권력을 가진 나이 든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아니, 권력을 가지고 그것을 나에게 행사하려고 하는 남자들에 대해 극도로 반발한다. 권력의 힘을 나에게 행사하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마치 고슴도치가 적에게 등의 가시를 세우듯 적대감이 세워진다. 물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남자이어야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권력을 가진 여자가 그것을 나에게 행사하려 해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여기서 남자라고 한 것은 내 생각에 남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또 그것을 좋지 않게 행사하려 할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어서일 것이다.(권력이 나에게 좋지 않게 행사될 것이라는 선입관도 있는 것 같다.)     

  처음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 진입했을 때는 나의 이러한 습성을 알지 못했다. 그때는 아버지에 대해 지독한 적대감을 가진 채 이제 아버지 없이도 경제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해방감을 느끼며 사회생활에 진입했다.(아버지의 집에서 직장을 다녔지만) 그동안 내 옆에는 가족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있었을 뿐, 내 주위의 남자들은 그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나에게 권력을 좋지 않게 행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와 관계가 있었던 나이 든 남자들의 대부분은 학교 선생님, 교수님이거나 친척이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사회생활(직업인의 생활)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거의 무지에 가까운 채로 시작하였다.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와 권력관계에 대해 교과서적인 인식만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금방 발령받은 애송이였다. 그것도 당시에는 같은 신입 중에서도 남자보다 더 아래의 위치인 여자였기 때문에 더 미미한 지위였다. 다행히 사회생활 초기에 무사히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미미한 위치에서 권력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의 관심권에도 들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동안,(아마 십수 년을) 나 자신이 윗사람, 특히 남자 윗사람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나도 그들이 내 관심권에 거의 없었다. 단지 내 업무와 역할에 집중하고 그것을 파악하고 잘 해내는데 내 에너지의 대부분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존재들에 대해 경원시하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나도 모르게 견지하고 있었다. 그런 내 태도는 그냥 그들이 그런 존재들이어서 당연히 그렇게 대한다는 생각에서 온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아버지 자리에 놓고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지만) 물론 여자 윗사람이라도 권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즉시로 적대감이 솟아오르고 방어막이 쳐졌던 것도 사실이다. 여자의 경우 약간 네가 감히? 네가 뭔데? 하는 마음이 한 자락 깔려 있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남자가 나를 지배하는 것보다 여자가 그럴 때는 택도 없는 것이라고 깔아 보았던 것이다. 권력을 부리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끌어 올리며 내가 큰 피해자가 됐다는 감정이 깔려 있는데, 여자의 경우는 그와 조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다분히 남성적인 행동으로 보고 그것이 나를 억압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적대감은 속으로만 단단하게 자리 잡고 내 속에서 방어막을 친 것이었지 막상 윗사람이 행사하는 권력의 힘 앞에서는 다른 젊은 여자들보다 더 수그리고 저자세로 대했다.(젊은 남자가 권력에 수그리는 것과는 좀 태도가 다른 것 같다. 젊은 남자는 힘 있는 존재에 대한 힘없는 존재로서 함께 살고자 납작 엎드리는 것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나의 경우는 적대감을 가지고 내 자존심이 꺾이는 것을 감내하며 비겁하다고 느끼면서 완전 납작 엎드리는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윗사람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 존재했던 때이고, 직장 사회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던 시대였다. 힘의 논리가 지금보다 더 존재하고, 윗사람이 하라고 하면 웬만하면 하는, 또는 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 그런 시대였기는 하다. 나는 복종을 하기는 하였지만 윗사람에 대한 존경이나 좋아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었고 오히려 옅은 경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나와 다른 존재이고 내가 명령은 받지만, 정신적으로는 전혀 상대에게 복종하지 않겠다는 그런 상태.

  그런 면에서 윗사람들의 요구나 일 처리 방식에 대해 별로 공감할 수 없었고, 또 그들도 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사이였다. 그들은 나를 단지 솜털도 다 가시지 않은 애송이로 또는 직장인이 가져야 할 지식에 대해서는 백지인 미숙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잘 가르쳐서 부려 먹어야겠다는 축에도 속하지 못했다. 미숙하면서도 덜 떨어진 반항심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었지만, 그렇다는 것을 자신만 모른 체 불편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생활을 해 나갔다. 막연히 난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그런 느낌? 그러나 이런 느낌에 기죽거나 아랑곳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들을 비루하게 보는 내 마음속 푸르른 자존심이 나를 지켜주었다. 사실 어떻게 본다면 그들은 나의 가치를 평가하고 받아들이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좀 더 이익이 되거나 최소한 그들에게 곰살궂게 대하는 존재를 좋아했던 것뿐이어서 나의 이런 자존심은 한편으로 유용하고 값진 것이었다. 그렇게 좌충우돌하여 나 자신만 나를 모른 채 불편하고, 아울러 주변 사람도 불편하게 하는 채로 거의 이십여 년을 살아왔던 것 같다. 

  또, 다행히 나이 든 사람일지라도 남자들은 그런 복잡한 여자의 속내를 잘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고 젊은 여자에 대한 호감의 감정이 깔려 있기에 그토록 거칠고 제멋대로인 내가 오래 직장생활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서는 나이 든 남자 윗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주눅 들지 않는 젊은 여자들을 마치 밝은 햇빛을 쳐다보듯 부러움을 가지고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 밝은 여자들에게서 느끼는 위화감이 나에게 열등감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다른 방향으로 폭발하기도 하였다.      

  무조건적인 나의 수그림이 비굴한 굴종으로 여겨져서 자존감이 훼손되었다고 여겨질 때가 있는 것이다. 윗사람의 말이나 태도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생각했을 때이다. 그럴 때, 내 자신의 속에서 무슨 폭탄이라도 터지듯이 분노가 솟구쳐 올라와 그 분노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 분노는 나를 활활 불태웠다. 내 존재의 모든 것을 걸고 그 상대를 무너뜨리고 싶은 충동에 휘둘렸다. 내 속의 분노와 보복심이 모두 모여 상대에게 향하고 한가한 모든 시간 동안 그 보복심이 나를 차지하였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으로 보복의 장면을 상상하고 그 장면을 내 안에서 돌리고 또 돌렸다. 그것은 마치 영사기가 돌아가듯이 선명하게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반복하며 나를 휘돌리고는 했다. 그때는 그것이 나를 차지하고 휘돌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나는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사람에게 분노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였다.      

 긴 세월이었고, 난 천방지축 망나니처럼 막 살아내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것처럼 막살다가 어느 순간 사회생활에서 아주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시작은 미미한 것이었다. 당시 난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직장생활이 편해지고 매사 쉽게 넘어간다는 것을 겨우 터득하고 그 생각을 실천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때였다. 나의 의견은 집어치우고 무조건 윗사람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찬성하는 것으로 대응하기로 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때였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오기 전이라 그저 마음은 그대로인데 노력으로 그 자리를 때우고 그 결과의 열매를 따려고 했다.     

  회의 시간, 고개를 숙이고 윗사람의 의견에 건성으로 끄덕거리고 있는데, 문득 나에게 윗사람이 불쑥 의견을 물어왔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겹겹이 감추고 있던 나의 가림막을 잊어버리고 내 머릿속 반감이 드러나도록 유창하게 의견을 말하게 되었다. 그 의견이라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서투르고 단순한 것이었을 것이나 나는 그것을 마치 내가 윗사람으로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큰소리로 떠들어댔던 것이다. 곧바로 머리 위로 철퇴가 내려쳐졌다.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이다. 그 상대는 완곡한 어법으로 그것은 힘들다고 이야기했으나 나는 나의 전면적인 것이 거부당했다고 느껴버린 것이다. 곧바로 입을 다물었으나 내 내면은 그때부터 불을 때기 시작한 것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그 부글거림은 시간이 갈수록 부풀어 오르고 나를 잡아먹을 태세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별다른 이야기가 아니었으나 나는 모욕감을 느끼고 그 모욕감을 어떻게 해서든지 갚아주고 싶었다. 상상 속에서 몇 번이나 상대에게 죽을 만큼 모욕도 주고 되갚아 주었으나 그 상상은 옅어지지 않았다. 그 생생함은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감정은 내 속에서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살아서 나를 조종하고 내 정신을 휘둘렀다. 그런 내 상태를 윗사람 앞에서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잘 감추지는 못했다. 그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나름 노력해도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한 감정을 한 사람에게 품고 며칠을 연속해서 보복하고자 하는 분한 감정에 휘둘렸고 오랫동안 그 앙심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가만히 있다가 문득 그런 분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고 머릿속에서 감정이 돌고, 감정이 그리는 줄거리에 한 없이 따라가다가 ‘어, 내가 뭐하는 건가?’하는 질문을 할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어? 내가 나이 든 윗사람, 특히 나를 권력으로 누르는 사람에 대해 분노와 보복 감정을 느끼고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구나.’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렴풋이 이러한 감정에 휘둘리는 것에 대해 불편감과 실패감, 부끄러움, 열등감 같은 것을 가졌다. ‘내가 왜 이럴까?’하는 질문. 그 익숙한 감정이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비슷하다는 인식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를 지독하게 증오하고 싫어한 그 감정이 다시 생생하게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 지금 분노의 감정이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똑같이 닮았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싫어하고, 아버지를 멀리하면서 살아왔지만, 사회생활에서 또 다른 아버지 존재를 내 마음에 만들어 낸 것이다.’하는 생각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권위를 가진 존재에 복종하면서도 내 나름의 성과를 거두기를 끊임없이 재촉받는 그런 구조였다. 학교와 크게 다른 점은 학교는 내가 돈을 내고 다닌 소비자 입장이고 사회생활에서는 내가 돈을 받는 구조라는 것이다. 내가 받는 그 돈은 내 생존에 관한 것이니만치 중요한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내 자존심이나 내 중요성 같은 것은 부분적으로 내주어야 한다는 것. 어떤 부분은 권위를 가진 존재의 결정에 복종하고 그들이 휘두르는(내가 느끼기에) 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나이 든 권력자로부터 휘돌리지 않아도 될 때가 되어서야 이런 분노의 감정에서 조금 헤어 나올 수 있었다. 나이 든 권력자들이 두려워하는 제 일 대상은 더 위의 권력자일 것이나 차순위로 신경 쓰이는 존재는 자신과 나이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아랫사람일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권력 순위가 자기 아래인 경우는 무조건 아랫사람일 터이나 그래도 그 중 좀 나이가 있는 축에 속하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부터는 나의 적대감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중간 권력이나마 나이 들었다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가지고부터는 권력에 대한 반감도 크게 줄었다. 권력이라는 것이 무력적이거나 존중이 없으면 그 어느 누구도, 그 아무리 어린 학생들일지라도 반발하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권력과 아버지를 조금 분리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권력 = 아버지’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그 권력이 두렵거나 비논리적이거나 억압적이면 내 모든 존재를 끌어올려 반항한다. 그 반항에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 섞여 있다. 늘 그렇다 나도 모르게 그 권력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아버지와 동격으로 보고 그것에 대한 반항심과 적대감, 미움이 끓어오르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결혼을 망설이는 너에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