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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 대한 나의 판단과 선택(나의 남성상)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 2

by 벌판에 서서 Nov 08. 2023

  이제와서 내 젊은 날의 남자에 대한 선택의 기준을 돌이켜 볼 때가 있다. 내가 확신하던 기준이 그렇게 정확하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더욱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왜 그렇게 보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여자나 남자 모두 상대 성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막연한 호감의 감정을 갖게 되는 면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나의 상대가 된다고 생각되는 남자(상대의 나이나 위치 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성으로 여겨지는 존재)를 대할 때 알 수 없는 들뜬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대하는 데 좀 어색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동화 속 왕자와 같은 상상 속의 남자를 내 상대라고 생각한 것 같다. 곧 현실에서의 남자는 동화 속 존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렸을 적 환상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고 붙잡고 끌고 다녔다.      

  현실에서 난 남자를 대하는데 서투르고 내 중심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주제에 환상을 옆에 두고 그것이 나의 본성인 양 상대 남자를 비교질하고는 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결혼을 위해 남자를 선택하여야 할 때가 왔다. 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의 순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난 남자를 인생길을 같이할 동지로 보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무식한 계산으로 선택하고자 하였다.     

  내가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이라고 여긴 첫 번째 것은 실용적이고 현실적 적응에 관한 것이었다. 경제적인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 성실할 것, 진실될 것, 그리고 세상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을 것.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을 하는 내가 현명하게 생각되었다. 남자라는 대상에 대해 기대하였던 것은 연정의 대상이기보다 ‘나에게 어떤 실용성을 가지고 있느냐’였던 것이다. 

  나의 이러한 삭막한 남자 선택의 배경에는 나의 아버지에 대한 판단이나 감정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를 미워하고 그에게서 탈출하게 해 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작용했으니 말이다. 또, 경제력만 있으면 아무나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나의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남자여야 했다. ‘나의 아버지는 자기중심적이고 화를 잘 내는 성격이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그렇지 않은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조건은 막상 결혼을 위해 남자를 선택할 때는 아주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남자의 내면은 내가 알 길이 없고 아버지로부터 독립이라는 것은 그냥 남자가 약간의 경제력을 갖추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고(다행히 난 그리 큰 경제적 부유한 것을 원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또 나도 나를 전혀 내어주지 않았으니, 상대도 어느 정도 평범한 성격이면 그만이었다. 그저 내 상상 속에서 내가 원하는 남자가 될 것이라고 맘대로 기대를 하였다.      

  기준은 그러했지만, 남자에 대한 선택은 좀 다르게 이루어진 것 같다. 왜냐하면  남자에 대한 내 지식은 뜬구름 잡는 수준이었고, 내가 생각한 기준은 추상적이고 확인할 수도 없는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제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허공을 바라보고, 하늘에서 어떤 남자가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정도의 그런 기준들이었다. 아버지에게서 탈출하고자 한 남자를 찾는데 그 남자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한 기준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남자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도 남자들에게 시선을 똑바로 주고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위쪽 허공을 바라보고 누군가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리는 그런 형국이었던 것이다.      

  나의 겉면(외모나 조건)을 내세워 남자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고 내가 나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동안은 만남의 시간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었다. 난 그들과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며 사귀지 못했다. 물론 결혼을 전재로 한 그 만남은 서로의 계산으로 점철된 면이 많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의 대상이었던 남자들은 아마 무엇 때문에 깊이 사귀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도 외모나 조건을 충족시키면 자신이 바라는 여성상을 갖추고 있다고 헛되게 환상하는 면이 나와 대동소이한 사정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물게 아주 드물게는 나의 여성스런 외모(그렇게 보일 때도 있었으나 언 듯 곱상한 외모와 달리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벌판 같은, 가까이 가기 별로인 그런 느낌을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에 끌리거나, 나의 진지하고 성실한 마음에 끌린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될 수 있으면 그러한 삭막함과 덜 익은 여성성이 내비치지 않도록 최대한 자제하고 상대를 대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약간의 남자들이 그러한 나의 모습에 다가오고, 결혼을 원하였다. 나는 겉으로 참한 여성을 연기하고 내보이려고 애썼다. 이러한 허구적 모습일지언정 남자들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구애를 하는 것에 달콤한 감정을 느끼고 그런 감정을 느끼기 위해 여러 남자를 소개받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런 남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거나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것은 상대에 대한 호감 정도의 마음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다가가야 할 때도 난 그 감정을 가지지 않은 것에 미안하거나 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을 만큼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었다.

상대에게 내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다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할 때 말이다. 

  물론 반했던 남자는 있었지만 남자에게 도취되는 그 상태에서 더 진전하지 못한다.  단지 그 도취의 감정을 천착하고 천착하며 나만의 환상의 세계에 빠질 뿐이다. 남자들에게 나는 가까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좀 멀게 느낀다. 아니 다가가기 어렵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정도 이상 나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부담스럽다. 나는 나를 향해 어쩔 줄 모르고 다가오는 그 잠깐의 순간을 즐길 뿐. 내가 그의 인생을 쥐고 있다는 것에 흐뭇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해 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을 느끼라고 하는 것은 마치 벼랑 위에 나뭇가지를 잡고 버티고 있는 나에게 그 나뭇가지를 놓고 벼랑을 떨어지는 것과 같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을 할 어떤 상태도 되어 있지 못했다.

  단지, 내가 가진 것 중 그래도 괜찮은 부분은 진지하고 순수하다는 면이었다. 남자에 대해 얼띠고 세상 물정 몰랐으나 남자들에게 차갑고 냉정해서 남자들은 가까이 왔다가도 어이쿠야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런 것이 나를 지켜 주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의 남자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제약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남자를 만나 그를 내 짝으로서 받아들이고 살 수 있는 능력이나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왔다. 여기서 내가 사용한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내 모든 것, 내 가장 중요한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상태,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아니면 누군가 정의한 것 같이 ‘사랑이란 상대가 내 가슴을 갈갈이 찢어 놓도록 허락하는 것이다.’(스캇펙, “아직도 가야할 길”)라는 말에 근접하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나의 남자가 정신적으로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아버지에게서 나를 구원해 주는 멋진 기사를 계속 찾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의 짝을 찾는다기보다는 상대에게 나의 마음속 이상적인 아버지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바란, 나조차도 몰랐던 조건은 정확하게 아버지를 겨냥하고 아버지의 그림자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 반대를 찾아 헤매면서도 나 자신은 아버지와 똑같은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은 자기의 세계를 버리고 상대도 자기의 세계를 버리고 하나로 융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여는 작동일 것이다. 나는 상대를 위해 나를 조금치도 버릴 생각이 없었으면서도 그 모든 나의 바람을 실현해 줄 수 있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남자 생명체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안이하고 유치하게 겉면적인 단순한 조건이 맞는다면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들을 모두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서 독립과 나만을 위하고 나에게 맞춰주는 사랑 말이다. 


  내가 쉽게 결혼을 결정하고서도 결혼식까지 결혼을 망설이고 상대에게 이성으로서의 마음을 주지 못한 것은 아마도 마음 깊이 가지고 있는 이런 이기적이고도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허무한 남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당시 나를 둘러싸고 그 막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였으나 그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어둠 속에서 마음이 안온하다고 느낀 것 같다. 또 그 어둠 속에서 그것이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남자상을 쫒아가고 있었는데 그런 올바른 것을 따지고 그것을 바라고 찾는 나는 아버지의 방법을 닮고 있던 것이다. 자기 위주의 이기심 같은 것이 마음의 밑에 깔려 있었다. 결국 아버지의 가치관으로 남자를 판단하고 선택한 나 자신은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상대를 멋대로 상상하여 그 위치에 놓고 상대가 그렇지 못할 때는 배신감을 느끼고 실망하고, 비난하였다. 이기적이고 얄팍하고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상대에게 내 바람을 모두 실현시키려고 하였다. 억지 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내 생물학적인 아버지와는 다른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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