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카페 사장이 올린 글이 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알바생에게 카페 청소를 시켰는데 청소를 시켰다고 카페를 그만둔다 했다더라. 거기에 달린 댓글들이 더 가관이었다. 카페 알바에게 왜 청소를 시켰냐는 반응을 보면서는 정신이 어지러웠다.
‘그럼 알바에게 청소를 시키지, 뭘 시켜? 커피 내리고 포스에서 주문받는 것이 카페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건가?’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는 업무의 범위는 크지 않다. 입사해서 3개월은 주구장창 보도자료만 써댔다. 물론 사무실 청소도, 탕비실 정리도 내 몫이었다. 아침에 걸레를 빨아다가 대표님 책상부터 내 책상까지 막내들이 돌아가며 정리정돈했다. ‘라떼는’ 그런 것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청소를 하면서 말 한마디 더 나누며 서로의 고충을 달래는 시간도 있었으니까.
그러다보면 사무실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졌다. 대표님이 지나가며 야근은 힘들지 않는지, 어제 별 다른 이슈는 없었는지, 고생한다, 수고한다 하는 말로 (청소가 아닌 막내의 전반적 고충을) 토닥여주기도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당연히 청소를 해야된다는 마인드로 살고 있지도 않지만, 그게 마냥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신입사원 때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들로 일의 ‘맛’을 봤다. 어깨 넘어 우리 회사가 하는 일들을 배우고 익혔다. 적당히 사고 치지 않을 범위 내에서의 일들이 나를 테스트하듯 스쳐 지나갔다. 뉴스 클리핑부터 기사 검색과 노출리스트 정리들이 주요 업무들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 점점 내가 맡은 영화들이 늘어갔다.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는 의지로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면 또 빠르게 내게 다양한 일들이 주어졌다.
입사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나를 그렇게 테스트하고 담금질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매번 새로운 미션 같은 일들과 루틴하게 내가 쳐내야 하는 업무들이 혼재했고, 열심히 하나씩 배웠다.
그러다 어느 날, 새롭게 들어가는 영화의 마케팅 기획서를 컨펌 받게 되는 일이 있었다.
“잘썼다? 제법인데.”
굳이 묻지 않아도 대문자 T일 것 같은 실장님이 내 기획안을 꼼꼼히 컨펌 하시더니, 그 한마디를 해줬다. 만날 혼나기만 하고 무서워하던 그였는데… 잘 썼다니! 제법이라니! 내 강한 인정욕구가 풀충전되며 어깨가 으쓱해졌다. 지금까지 해온 업무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선배들 어깨 넘어로 열심히 배우며 다음 내 영화 기획안에서 꼭 뭔가 보여주리라 했던 다짐이 이렇게 인정받는구나 하며 그 영화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됐다.
분명 그 기획안을 지금 다시 열어보면 여기저기 뜯어고칠 것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의 그도 내 기획서가 매우 특출나게 잘 써서 했던 칭찬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묵묵히 사원으로서의 일을 하며 지각도 않고, 허드렛일도 마다 않는 내가 예뻐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날의 칭찬 이후로 자신감이라는 것을 얻었다.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성장하고 싶었다.
사원들을 키울 때 작은 일에도 칭찬하고 보상을 주라고 한다. 채찍질을 하고 혼을 낼 때는 호되게 혼을 내지만 적절한 칭찬과 인정은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성장시키니까.
사회에서 성장하고 싶다면 가장 기본적인 업무들에 충실하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의 구분을 직접 짓지 않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데려다가 월급을 줘가며 가르치고 일을 익히게 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투자라는 것도 알아야 할 터다.
인정 욕구를 채우고 싶다면, 먼저 인정 받을만한 사람이 되라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