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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드림 Oct 21. 2024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 되새겼던 한가지.

버티면 좋은 날이 올까?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


사무실의 히키코모리가 되어 야근을 숨쉬듯 했던 막내 시절이었다. 새벽 동이 트고 집에 가서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다시금 사무실로 향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영화가 하기 싫어졌다.


단 30분의 취침시간을 갖고 눈도 떠지지 않는채로 다시 책상 앞에 앉으니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어디까지 해야하나 싶었다. 선배들은 버티라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진짜 도망치고 싶던 어느 날, 팀장이 나를 사무실 앞 포차로 불러냈다.


“뫄뫄 영화 있잖아…?“


눈이 번쩍 떠지는 라인업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 시리즈가 엄청난 흥행을 했었고, 세 번째 시리즈가 수입되어 회사에 들어온 시점이었다.


“제가 하고 싶어요!”

“당연히 너가 하겠지. 근데 요즘 좀 힘들어 보여서. 난 너랑 하고 싶은데…할거지? 해야지!“


그렇게 그 영화는 내게 왔다. 혼을 갈아 넣어서 마케팅에 임했다. 몸은 힘들었는데, 정신은 또렸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영화, 내가 맡고 싶은 작품, 제목만 말해도 모두가 인정하는 그런 라인업.


정말이지 홍보를 때려치우고 싶을 때, 그 영화가 내게 왔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업계를 몇 번 떠나고 싶었다. 때론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았고, 배우들 뒤치닥거리도 진절머리가 나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계’쯤에 있다는 농담은 그때도 유효했고. 앞날도 캄캄해 보였다.


지금도 종종 일로 지치고 힘들 때는 나는 그 밤을 생각한다. 실력으로 보여주며 꾸준히 성장했던 그 때의 나를. 이를 악물고 대체불가한 멤버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그 때의 나를.


세상 살아가며 한 번쯤은 그렇게 스스로 담금질하고 성장시켰던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되게 일에 미쳤었지만… 돌이켜보면 때려치우고 싶었던 순간 순간에 악으로 깡으로 버텼던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나를 만들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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