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업이 아니다보니, 체력적으로 힘이 따릴 때면 정신적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을 드문드문 하게 된다. 바람잘날 없는 엔터테인먼트 바닥에서 이리저리 치이다보니 마음에도 생채기가 쉬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했다. 그 상처들은 곧 딱지가 되었다가 옅어지고 흐려졌다. 그리고 단단한 굳은 살로 켜켜이 마음에 쌓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일로는 상처를 받지도 않게 되었다. 적어도 일로 받는 스트레스는 현저히 줄었다. 어디서 터져나올지 모르는 문제들과 사건사고들을 십수년 마주하다보니 저절로 내성도 생겼다. 매번 힘들다고 엄마에게 혹은 아빠에게 혹은 애인에게 이야기 하며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으로 독립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버릇이 있지도 않았지만, 의지한다고해서 해결될 문제가 없다는 것도 일찍 깨달았다.
대학을 가면서 가족으로부터 육체적으로 독립과 정서적 독립을 성공했다. 동시에 경제적 독립도 함께 꾀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 외의 생활비를 벌었고,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었다. 부모에게 손벌리기 시작하면 완전한 독립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때문에 나는 꽤 빨리 사회에 나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을 한 것은 20대 초중반이었다. 내 자의로 안되는 일이란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해냈다. 박봉을 받으며 영화판에 있을 때도, 배우들과 부대끼는 매니지먼트사에 있을 때도, 아빠는 내가 하는 일이 탐탁치 않아 했다. '저러다 말겠지', '저러다 관두겠지', '언제까지 배우들 뒤꽁무니 쫓아 다니진 않겠지' 했던 것 같다.
내가 완전한 독립을 하고 나니 아빠의 잔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러니 더더욱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스스로 내 삶을 개척해나갈 방도를 찾기 위해 애쓰게 됐다. 자연스럽게 재태크에 관심을 가졌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도 남들보다 빨랐던 것 같다.
힘든 상황을 마주하게 되어도 스스로 재생하는 능력을 빨리 깨우쳤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내가 힘든 사회 생활을 뚝심있게 해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줬고, 단단한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게끔 기반을 다져줬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온다. 어떤 모양의 시련이든 그 난관을 무사히 잘 해쳐갈 수 있는 사람이 어느 바닥이든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버틸 수 있는 힘도 생긴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혹은 금전적으로든 독립하자. 내가 나에게 의지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치는 것은 독립성을 기르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일단 독립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