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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May 27. 2024

독일에서 맥주 안 마시는 사람

독일에 살지만 맥주를 안 마시고

소시지도 안 좋아하고

치즈도 안 먹고

이곳의 주식인 빵이나 케이크류마저 어쩌다 먹는 사람이 있다면?


"독일 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도대체 뭐 먹고살아?"라고 하실 거다.




그렇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알아주는 맥주의 본고장에 살면서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주식처럼 찾아먹는 빵도, 소시지도, 치즈도 잘 먹지 않는다. 한 달에 두어 번 그마저도 생각나야 먹는다. 이런 식성으로 1n 년을 독일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나도 신기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뭐 먹고사냐'며 반문한다.


맥주를 마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헛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은 아니지만(오히려 잘 받는다) 물로 배가 차는 느낌이 유쾌하지 않고, 술로 정신이 흐려지는 것도 싫다. 식사시간엔 제대로 된 음식이 들어가야 하는데 맥주를 마시면 음식이 들어갈 틈이 없어진다. 그나마 마실 수 있는 양인 100ml 정도의 작은 잔을 판매하는 식당이 없기 때문에 결국 마시기를 포기한다. 같은 이유로 슈퍼에서 파는 맥주도 내 돈 내고 산 적이 여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래도 독일 맥주가 맛있는 건 안다. 뭐든 일단 겪어보고 판단하는 성격인지라 독일생활 초창기에 다 먹어보긴 했다.


서양권의 주식인 빵 치즈, 그리고 독일 하면 알아주는 소시지마저 잘 먹지 않는 이유는 입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디저트빵이라고 해도 프랑스나 한국만큼 디테일하고 상큼하고 깔끔한 맛이 아니라 입에 오래 남는 설탕 폭탄으로 단맛을 강타하기 때문이다. 치즈와 소시지는 먹으면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하다. 하지만 꼭 먹어야만 할 상황(회식 등)이거나, 일부러 당폭탄을 맞고 싶은 날이나,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땐 먹는다.




독일생활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오히려 초반에는 아시아식보다 서양식을 많이 먹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몸이 망가지고 그들의 식단이 내 몸에 맞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직접담근 김치로 해먹은 김치돼지고기 볶음 덮밥. (출처=직접촬영)


내 입맛은 200% 한식 혹은 아시아식이다. 중학교 1학년까지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찌개와 청국장이고 피자와 햄버거는 입에도 안 댔을 정도로 전통적인 어르신 입맛(?)이다. 거주지가 한국이나 아시아였으면 행운이겠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유럽에 와있으니 이는 오히려 불행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도 한식을 못 해 먹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려면 생활비가 두 배로 드니 (한국 식재료값은 한국대비 약 2배) 구색만 갖추는 한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몸이 아플 때 김치찌개나 국밥이라도 생각나면 난감하다. 몸은 아픈데 장 봐서 할 기운은 없고, 한식당은 너무 멀거나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고, 날씨는 춥고, 해는 안 뜨고, 온돌 없는 바닥은 차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독하게도 아시아인 체질인 내 몸은 타국에서도 정직하게 하루 삼시세끼, 일주일이면 무려 21번 밥을 달라고 한다. 먹는 건 인생의 큰 행복 중 하나인데 대충 빵쪼가리 쑤셔 넣으면 행복을 잃는 셈,  행복과 맛을 다 잡기 위해 나는 어떻게든 현지 식재료를 이용하여 아시아식 요리를 하려고 한다. 


그중 한 가지는 밥 대신 오트밀을 이용하는 것이다. 

오트밀은 독어로 Haferflocken(하퍼플로켄)이며 마트에서 500g에 2유로 미만으로 구할 수 있다. 밥을 할 시간이 없는 평일 점심시간에는 오트밀에 물을 부어 반찬을 곁들이면 죽이나 밥 대용으로 훌륭한 역할을 한다.


면류는 베트남 식재료 혹은 파스타면을 이용한다.

한국 당면이나 소면은 가격도 비싸고 일부러 아시아마트를 가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류나 파스타면을 이용해서 요리에 활용한다. 현지마트에 아시아 기획으로 베트남이나 태국 식재료들이 꽤 자주 들어오는데 이때 많이 사두면 좋다. 아니면 아마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남편요청으로 만든 브라우니 / 야채죽 (출처=직접촬영)


대체재마저 없으면 만들어 먹는다.

비슷한 식재료를 찾을 수 없다면 결국 직접 자급자족 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차나 깨 혹은 곡식류를 베이스로 하는 스낵이나 음식들은 정말 찾기 어렵다. 일단 녹차를 즐기는 독일인들이 많지 않고, 그걸로 팔릴지 안 팔릴지도 모르는 디저트를 만드는 모험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일마트에서 녹차케이크, 녹차쿠키 혹은 그 흔한 녹차 아이스크림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차나 곡류 디저트에 환장하는 나는 녹차가루를 사서 집에서 녹차케이크나 브라우니는 직접 만들어먹고, 기타 곡류나 식재료는 한인/중국/베트남 마트를 돌며 구해온다. 




물론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만족도는 한국현지에 훨씬 못 미친다. 맛도 맛이지만, 레시피 찾고 여기저기서 재료 사고 요리 하면서 진이 다 빠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먹는 게 상당히 중요하고 행복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귀찮은 한식과 아시아식 여정을 멈출 생각이 없다. 이처럼 음식은 젊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라는 걸 알기에 부모님께서 유럽에 오실 때마다 규칙적으로 한식일정을 챙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일상에 지쳐서 요리하기가 점점 귀찮아지는 요태기를 보내고 있는데 다시 마음잡고 부엌에 서봐야겠다.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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