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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한국에서 과연 가능할까

by 가을밤

내 독일 절친중 한명이 작년에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전 결혼 파티를 했다.

식 직전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파티를 약 1년정도 미뤄야했다(동거가 매우 흔한 독일에서는 약혼 후 결혼까지 몇 년씩 걸리기도 하고, 아이를 둘 셋 낳고도 결혼 안하는 커플, 출산 후 결혼하는 커플 등 매우 다양하다).


양가 부모님, 친척, 절친들과 그 가족들만 초대한 파티로, 나름 소규모였지만 마당발 친구의 성격답게 파티 당일엔 거의 50명정도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파티는 독일 중부 어느 산속 작은 마을 호텔에서 열렸으며, 호텔 입구에는 꼼꼼한 친구 와이프의 성격이 드러나는 파티 시간표가 있었다. 이런 시간표를 만들지만 정작 잘 지키진 않는게 독일의 특징이다. 그날도 시간표보다 1시간 이상씩 미뤄졌다ㅎㅎㅎ. 음식은 메인 고기와 소시지를 제외하고 간식, 에피타이저, 디저트는 각자 준비해와야했다. 그래서 모든 가족들이 접시며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독일인들에게 (항상) 인기많은 스시, 그리고 K-유행에 편승하고자 맵지 않은 장떡을 준비해갔다.


파티는 전체적으로 매우 편안하고 유쾌했는데,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형식의 파티가 과연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싶은 의문이 들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은 No. 불가능하다였다.




1. 모임 형태

먼저,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한국에서는 상대방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그저 편하게 와서 즐기다 가라는 의미다. 초대받은 사람에게 각자 음식 해오라고 요구하고, 대놓고 기부에, 도움까지 요청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파티는 그랬다. 게다가 사연 많은 가족 구성도 그대로 드러났다. 친구의 부모님, 친구 배우자의 부모님, 두 집안 아버님이 모두 결혼을 두 번씩 하셔서 전 남편, 전 아내, 그리고 이복형제, 이복남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거기에 친인척, 오랜 친구들과 그들의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한국이라면 '이런 자리에 전 배우자까지 온다고? 헐리우드야?'라며 놀랐을텐데, 여기서는 그저 자연스럽게(솔직히 편해보이진 않았다), 가족의 확장판 같은 분위기였다.


2. 음식

한국이라면 아무리 "편하게 간단히 준비 해오라"고 해도 메뉴 선정부터 어려웠을 것이다. 각 가정마다 손맛이 다르고, 아무리 정성을 들여 해 와도 뒤에서는 가혹한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럽 음식이 그렇듯, 독일 음식도 대충 빵 굽고, 과자에 햄을 올리거나, 샐러드를 버무리거나, 고기를 굽거나 찌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즉, 손맛이 중요한 음식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음식은 그저 즐기기 위한 것일 뿐, 누가 뭘 가져왔는지에 대한 질문, 조리법이나 맛에 대한 호불호가 없었다. 그저 재료에 뭐가 들어갔는지, 채식메뉴인지 아닌지만 제대로 적으면 OK였다. 손님중 우리가 유일한 아시아인이었고 한/일식이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했는지 기분좋게도 우리 메뉴는 금세 동났다.


3. 숙박 형태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숙박이었다. 파티 장소가 차없이는 절대 못오고, 주변 편의시설이 적은 장소였기 때문에, 친구 부부는 호텔 건물을 통째로 임대했다. 그래서 초대된 모든 사람들이 같은 호텔에 묵었다(우리는 일정 조율이 늦어져서 옆도시 호텔서 숙박). 길게 휴가를 내고 온 가족중엔 거기 4일 이상 숙박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래서 파티 전후로 호텔 로비나 복도에서, 심지어 아침 식사 자리에서도 서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만난 사이인데, 강제로 한 장소에 몰아넣고(?) 계속 봐야하는 어색함을 견뎌야 한다.

더 놀라운 건 1층에 사우나가 있었다는 것. 독일 사우나는 남녀 혼성, 그것도 나체로 들어가야 한다. 모두가 주인공인 친구 부부와 연결된 사람들이고 어쩌면 나중에 다시 어디선가 만날지도 모를 사이인데, 얼굴 트자마자 서로의 몸까지 다 볼 수 있는 상황이라니. 한국 정서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지 않은가.




한국이었다면 분명 불편하고 어색했을 이런 특징들이, 약간의 어색함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내 친구가 워낙 마당발이고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형태였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형식의 파티는 비단 신랑/신부 두 사람만의 축제가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네트워킹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역시 오며가며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고, 마찬가지로 들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이 짧고 굵게, 큰 행사로 치러지고 끝나지만, 독일에서 내가 여태 참석해본 결혼식 가족파티는 분위기를 느슨하게 풀어 함께 즐기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행사다. 덕분에 사람들은 긴장보다는 여유를, 체면보다는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독일인들이 남얘기 안한다는 뜻은 아니다. 뒤에 가서 남얘기 하는 건 세계 어느나라 사람들이나 비슷하다).


잘 생각해보면, 결혼식이라는 건 두 사람이 맺는 약속인 동시에, 그 약속을 지켜볼 공동체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한국과 독일의 방식은 겉으로는 많이 달라도 그 핵심은 닮아 있는 것 같다. 다만, 독일식 방식은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만 하다.


(모든 독일인이 이런 식으로 결혼파티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한국보다 하객들이 준비하고 도와야 할 부분이 많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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