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묻은 감정을 읽다
[책정보] 제목 : 트러스트, 저자 :에르난 디아스, 장르 : 장편소설, 출판사 : 문학동네
[글정보] 제목 : [격파,벽돌책] 3. 트러스트 (1일차), 글쓴이 : oh오마주
질문 1. '트러스트', 우리에게 '믿음'이란 진실인가, 사실인가?
질문 2. 소설은 쓸모 있는 허구인가? 감정을 지닌 이야기인가?
질문 3. 현실을 참조했다면, 소설은 현실이 될 수 있는가?
질문 4. 믿고 싶은 것을 믿어도 될까?
'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는 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64쪽 : 저택은 파티의 소음과 셸던이 해둔 번쩍번쩍한 장식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달라져갔다.
66쪽 :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렇게 놔두기로 결정했다. 벤저민이 본질적으로 혼자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벤저민의 어마어마한 고독 속에서 그녀도 자신의 고독을 찾게 될 터였다.
71쪽 : 그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벤저민은 집에서 짧게나마 신혼을 즐기기 위해 이 주의 휴가를 냈다. 집이 두 사람 모두에게 충분히 낯선 곳이어서 그럭저럭 휴가 분위기가 났다.
73쪽 : 헬렌은 벤저민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미소 지었고, 평온한 온기를 담아 둘 중 누구도 그런 일에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벤저민은 그녀의 애정이라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헬렌은 티커를 고갯짓으로 가리킨 다음 저녁식사 때 만나자며 그를 방에 남겨놓고 나갔다.
76쪽 : 월스트리트는 벤저민의 정확성과 체계적 접근법에 혼란을 느꼈다. 그의 접근법은 꾸준한 소득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대단히 엄격한 수학적 우아함과 비인간적 형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모범사례이기도 했다.
77쪽 : 작품과 작가 사이의 거리는 오직 실망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처음에는 작가들을 만나지 않으려 했으나, 그녀(헬렌)는 살아 있는 작가들에게 특히 관심이 있었다.
79쪽 : 교제 초반부터 둘은 서로의 지성을 존경해왔다. 그리고 그보다 더, 두 사람 모두 번영하는 토대였던 침묵과 공백에 대한 서로의 이해력에 감탄했다. 벤저민이 일이라는 세계로 다시 움츠리고 돌아가 있는 동안 헬렌은 문학적 세계의 지평을 얼마든지 넓힐 수 있었다.
85쪽 : 벤저민이 헬렌에게 느끼는 존경심은 경외감에 가까워졌다. 그녀를 이해할 수 없고 위압적인 존재라고 여기게 된 그는 신비롭고 대체로 정숙한 성욕을 품은 채 그녀를 원했다. -중략- 헬렌은 한 번도 벤저민에게 잔인하게 굴거나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 오히려 그녀는 상냥할 뿐 아니라 애정이 많은 동반자였다. -중략- 그럴 때마다 벤저민은 불완전한 전율을 경험했다.
90~91쪽 : 그림이 분명해지자 대중은 빠르게 반응했다. 사람들은 애초에 그 모든 시장 붕괴를 설계한 사람이 벤저민이라고 말했다. 교활하게도 그는 처음부터 절대 갚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채권에 대한 무분별한 욕망에 불을 댕겼다. 미묘하게도, 그는 주식을 버려가며 시장을 끌어내렸다. 교묘하게도, 그는 소문을 퍼뜨리고 편집증을 부추겼다. 무자비하게도, 그는 월스트리트를 전복시키고 검은 목요일이 오기 바로 전날, 매도 대잔치를 통해 월스트리트를 엄지로 눌러 죽이려 했다. 모든 것이 - 시장의 파열, 불확실성, 공포 매도로 이어진 하락장, 끝내 수많은 사람을 망가뜨린 붕괴에 이르기까지 - 벤저민이 설계한 것이었다. 그가 보이지 않는 손 뒤의 손이었다. -중략-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이 한 나라의 경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중략-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희생양을 두는 게 편리하다고 생각했고, 반쯤 은둔자로 살아가는 괴짜는 그런 목적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98쪽 : 벤저민이 헬렌의 노력에 도움을 주었다면 그건 단지 헬렌의 행복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98~99쪽 : 헬렌은 이것이 광기의 시작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정신 자체가 살점이 되어 정신의 이빨에 뜯어먹히는 광기.
100쪽 : 취조자들은 불을 뿜으며 화려한 말을 쏟아냈지만, 벤저민이 한 행동 중 불법행위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은 명확했다.
1) 헬렌의 어린 감정이 방황하는 것을 보며(64쪽)
나의 십 대, 학창 시절. '방 확장'이라는 것이 선풍적으로 유행했다. 17살 생일에 생일 선물이라며, 엄마는 1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방과 연결된 베란다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줬다. 벽은 뚫었지만, 창은 그대로 작았다. 어린 내가 느끼기에, 큰 방과 작은 창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 작은 창에 대고 많은 생각을 내뱉었다.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책상에 고양이처럼 걸터앉아 창밖을 보며 '높네.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기차가 지나는 요란한 소리를 보고 들으며, '가네. 저 기차는 어디까지 갈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청소년기의 우울증 아닐까, 한다. 불안하고 예민한 감정을 타고났다고, 잘못이 아니라고 토닥여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 감정을 잊고 있었다. 헬렌의 감정이 이토록 방황하는 것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말해줄 수 있었다면.. 토닥여 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 마음을 쓸었다.
2) 그들의 조용한 애정(73쪽)
어금니를 꽉 깨물고 웃음 짓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이야기에 깊게 빠지고, 문장을 되새김질을 하는 것은 일상에서 불리하다. 심지어 감정을 켜고 끄는 버튼을 자유자재로 하지 못한다. 대체로 소설을 읽는 일은 '괴리감'이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일상이 지속되고, 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조금 나아지지만, '농도가 짙은' 문장과 문단은 하루 종일 떠오른다. 헬렌이 벤저민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조용한 애정씬은 가슴팍에 녹아버렸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사랑이고, 결혼이었을 것이다.
3) 화자가 하고 싶은 말, 벤저민은 냉혈한이다.(91쪽)
쉬지 않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어!'라고 상소문을 쓴 것 같았다. 마침표는 둥글게 포장했다. 하고 싶은 말은 '사회적으로 적응도 못하고, 똑똑한 머리로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을 채우는 냉혈한'이라 했다. 다행인 것은 일찍 판단하지 않아도 분개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들어봤기 때문에, 쉽게 공감하고 동조하지 않아도 된다. 이토록 공평한 소설이다.
*주식티커(72쪽) : 주식 시세 전광판을 뜻한다.
*펀더멘털(89쪽) : 주식투자에서 종목의 기초적인 정보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