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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Apr 07. 2024

아들의 부모성적표

가족 이야기 9.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 확실하다.





지난 2월에 있었던 일이다. 출근하자마자 모르는 02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생각입니다."


 나도 모르게 고라니처럼 비명을 지를 뻔했다. 작년 가을부터 매달 도전했으니, 7전 8기 정도 되겠다. 상상만 해오던 희소식이었다. 4월 호에 실린다고 한다. 명절 전에 올렸는데, 며칠 안 돼서 바로 연락이 왔다. 15일을 기점으로 마감을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랬나 보다. 


" 아시다시피 정해진 페이지가 작아서, 글을 조금 줄여야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오디오북으로 제작될 수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혹시 가명이 필요하신가요? 본명으로 기재해도 괜찮으신가요?

선물은 여러 가지 있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작업복으로 환복도 하지 않은 채, 밖에서 전화를 받았다.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소곤소곤 말했다. 올해 작은 목표였던 '좋은 생각 기고하고, 1년 치 구독을 상품으로 받아, 친정아버지 앞으로 보내주기'를 이뤘다.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40대부터 잡지 3가지 정도를 정기구독하셨다. 책상 옆으로 '월간 붕어, 바다낚시, 장기, 바둑' 같은 잡지를 꽂아놓은 책장이 있었다. 수입이 줄고, 손이 바쁜 농사를 짓다 보면, 우선순위는 바뀌기 마련이다. 우연히 '이찬원'이 표지 모델로 되어 있는 여성 잡지를 발견하고, 친정으로 보냈다. 이찬원 가수의 열성 팬인 친정엄마를 위해 보내드렸는데, 오히려 아버지가 그렇게 열심히 보셨다. '활자'를 좋아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아니까, 아버지께 꼭 보내드리고 싶었다. '책을 열심히 읽고 글을 쓴다'는 딸을 보며,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딸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아서 흐뭇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남편은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왜?' 눈빛으로 쳐다보니,


"요즘 패션이 고시생 같아진 거 아니?"


원래라면 엉뚱한 말에 찹쌀떡 맞먹는 찰진 말로 되받아야 나답지만, '맞아, 고시생. SNS 고시생' 눈으로 말하며, 파하하 웃어버린다.


일단 써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좋아하는 사물, 사람, 생활, 감정. 포기하면서 살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인지. 원하는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읽고 쓰고 해 나가는 과정에서 작은 결과에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좋다.


방방 뛰는 마음에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데, 남편은 술만 마시면 자꾸 친구들한테 자랑해 대서 조심스러웠다. 술이 과해지면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계속 말한다. 입이 안 열렸다. 나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아들에게 손가락까지 걸고 말했다. 


"엄마가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에 글을 냈는데, 채택돼서 상품으로 연간 구독권을 받았어. 그거 외할아버지 집으로 일 년 동안 매달 갈 거야. 엄마, 너무 좋아. 아빠한테 절대 비밀이야!"


"응! 두 번째 비밀이네.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돼? 근데 엄마 나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 네이버 작가라고 자랑했는데?"


네이버 작가가 뭘까? 브런치 작가를 말하는 걸까? 네이버 블로거를 말하는 걸까?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빠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아빠 빼고 다 소문내고 다녔구나. 고맙다. 엄마 자랑하고 다니는 아들이라... 무거운 어깨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솟고 있다. 부모의 취미생활을 보고 자랐고, 부모를 닮은 엄마가 되었고, 아이가 지켜보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 성적표일지 모를 '자식이 평가한 중간 성적표'를 받으니, 더 잘하고 싶다. 욕심 내본다. 내가 아버지에게 그랬듯, 자식에게 받은 '자기 일 좋아하고 성실한 엄마'라는 평가가 밤 맥주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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