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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Apr 16. 2024

글 쓰는 우리는 가족, 작가님들께

가족이야기 11. 브런치 작가님들





  사전과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글에 단어를 마음대로 쓴 나를 반성한다. 도안 없이 짠 뜨개와 같다. 오직 느낌만으로 만든 음식과 같다. 내 마음과 유기체가 된 글은 진화를 바란다. 스스로에게 매일 말한다. '나는 결국 잘 될 사람이다.' 아주 작게 덧붙인다.


 "마음만은 이미 박완서, 유시민, 나태주입니다." 



글쓰기에 가장 많은 부분은 독후감이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양질의 독서생활을 영유하고 있다. 독후감 유형은 2가지다. 작가를 더듬으며 읽는 '꿈꾸는 서재', 책을 천천히 마음대로 뜯어읽는 '격파, 벽돌 책'이다. 둘 다 매력 있다. 긴 장편 소설만큼은 천천히 여행처럼 홀로 읽고 싶다. 독서 계획은 여행 계획과 같다. 나름대로의 여행법이 있다. 돈 없고 시간 많던 젊은 시절부터 아주 주관적으로 다녔다. 아무리 인기 많아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남들 다 가도 '내가 별로면 안가' 못 박았다. 오사카 성보다는 이끼 가득한 교토 사원 계단이 좋았다. 단수이 강 노을 앞에서 교복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아기 길고양이들을 돌보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영국의 어떤 도시보다 오래 머물렀던 브라이튼, 흐린 날에 바닷가 자갈에 앉아 먹었던 1파운드 샌드위치 점심이 스릴의 정점이었다. 사람만 한 세갈(진짜 큰 갈매기)들에게 뺏기거나 해코지당할까 봐 한입 먹고 가방에 넣기를 반복했다. 오랜 내 취향을 존중한다. 책은 마음의 여행지다.


 유명한 소설과 극본을 쪼개어 읽었다. 공감할수록 감동하며, 부족함을 깊게 인정했다. 하루키는 망치질을 처음 시켰고, 이병헌 감독은 다시 '멜로'를 체질로 만들어줬다. 트러스트에서는 이야기를 다각도로 보는 신비함을 찾았다. 새의 선물에서는 아름다운 아이의 시선에 접속했다. 파우스트에서는 아주 큰 고래 뱃속에서 거대한 파도를 타는 듯한 멀미로 고생했다.  '격파, 벽돌 책'을 거듭할수록 더욱 '진짜 감성'에 목마르다. 


이런 내 마음은 살아 있는 시다.

 시 공모전을 준비하며 시문학을 공부하는 중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짧은 글들에서 내공을 느끼고 감동을 받는다. 시를 즐겨 읽는 사람들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다. 허밍과 같은 시로는 만족할 수 없다. 좋은 시를 계속 찾아 읽으니, 쓰고 싶은 욕심이 난다. 조금씩, 사실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시와 시인들, 시를 알아가는 방법들을 찾고 있다.


 시는 원론부터 어렵고 알수록 복잡해진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실전에 가장 가까운 공부는 아무래도 평가자의 이야기다. 2023년 신춘문예 해설을 하는 기성작가들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신춘문예 및 신인문학상 이름과 심사자 이름을 생략한다.)


시인은 내밀한 고백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자다.


시적 사건을 다루는 솜씨나 인식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자기식의 어법이 안착되어야 한다.


시의 홀가분함


시는 긴장이고 충돌이다. 새로운 시는 안전과 완전과는 멀리 있다.


경쾌함이 겨냥하는 것이 불분명할 때가 잦으면 맥이 풀리기도 한다.


(산문에서 쓰는) 설명적 부분을 덜어내고 특유의 응집력으로 시적 개성을 확보하기를 권한다.


소소한 일상을 담담한 어조로 스케치하는 경쾌함과 부박함을 구분해야 한다.

: 그럴듯한 분위기는 조성하고 있지만 알맹이가 없고 장황한 경우, 문장을 만들고 행과 연을 꾸미는 기술은 있지만 단 한 줄에도 시적 진술의 맛과 힘이 담기지 않은 경우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을 사유와 이미지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문제적 현장으로 벼리어 내미는 솜씨를 가지자.


시의 에너지를 잘 담아낸 작품, 고루 탄탄한 수준에 이른 작품을 선별하려 노력


시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을 느낄 수 있었지만 기본기(오타 검열 등)를 더 연마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자신만의 언어 감각과 리듬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언어의 경제성'을 고려한다면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산문을 쓰려는 것인지, 산문시를 추구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는 모호한 경계. 감정의 오리무중만을 흥건하게 펼쳐놓고는 끝나버리는 시. 이미지를 그러모으지 못하고 문장 한 줄 한 줄을 그대로 허공에 날려버리고 분사하는 듯한 시 쓰기가 반복되는 일련의 문학 현상을 나는 '산시(散時);흩뜨러 진 시'라 부르려 한다.


(산시 이어서) 창작자들이 붙들고 있는, '시는 어렵게 써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지적하려는 데 있다. 그 어려움이란 대게 쓰는 이의 머릿속에 시를 가둬두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결국 아무 이야기도 꺼내놓지 못하고 시 이전의 상태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즉, 명쾌함이 필요하다)


단단한 습작 과정을 엄숙히, 치열히 통과한 흔적이 엿보였으며 세련된 구조에 천착(파고들어 연구) 하고 자신의 발성에 세심히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의 배치를 한두 편 바꿔 읽으니 연인이 같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는 여정으로 읽히기도 해 참 입체적이구나 싶어 덥석 들어 올렸다.


서정시라고 알아온 범위의 작품들은 이제 우세종이 아닌 듯했고 '다른 서정'이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더 큰 세를 이루고 있었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중 주목할 만한 응모작들의 취향은 이 둘 바깥이 아니라 둘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응모작들은 어디까지나 이해 가능하고 감식 가능한 범위 안에 놓여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긴 분량의 시들은 전개 과정에서 다소의 흔들림이 보였고 말이 산만할 때가 있었다. 행갈이와 연 구성에 일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는 점도 사족으로 덧붙여둔다.


비근한(쉬운) 발상적 내면의 사소하다면 사소하다 할 갈피들을 세심히 만지고 되짚는 조용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허세 없이 오래 같은 자리에서 견디며 시작(時作;시 쓰기)에 몰두해 온 자취가 엿보이는데, 의미 맥락이 다소 불분명해도 시상을 이어나가는 여러 지점들에서 남다른 감각이 묻어난다.


눈을 붙드는 직관이 살아 숨 쉰다.


 여전히 목만 축인 기분이 들지만, 이런 공부가 꽤 만족스럽다. 오늘도 하나라도 더 배워 내일은 점만큼 더 똑똑해지고, 더 잘 쓰고 싶다. 여기서 '더 잘'의 의미는, '나도 계속 읽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상황을 말한다.


 오늘 들었던 오디오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 큰아버지는 피터에게 늘 '한 우물만 계속 파는 게 좋다'라고 한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물을 파며 나오는 돌과 풀들의 자리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 목표여도 좋다. '책을 쓴 작가'가 종점이어도 좋다. 나 하나뿐 아니라 모두를 위해 사는 삶을 택해도 좋다. 정해진 행복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은 '인간의 굴레' 밖을 돌아봤기에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방황일지 모를 '시를 공부하는 시간'이 더욱 좋다.


 우리는 살아있는 시,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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