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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Apr 18. 2024

엄마들은 자기 배를 자주 본다

가족이야기 12. 엄마들의 뱃살

  길을 걷다 보면 나의 과거와 미래를 마주한다. 자동반사적으로 미소 지을 때도 있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도 있다. 인상이 찌푸려질 때면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동네에는 매일 대구 매천시장에서 각종 야채와 과일, 생선 등을 공수해 와서 파는 가게가 있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가게를 연다. 차가 도착하기 전부터 사람이 몰린다. 친정엄마 뻘인 엄마들이 줄을 선다. 물건을 구경하고, 사고, 계산하기 위해 말이다. 


 어제는 우연히 자신의 배를 보는 어머니를 봤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여사님들에게 '어머니'라고 부른다.) 사람 몸에 있어서 지방은 엉덩이가 가장 많은 게 과학적인 설명인데, 알고 있다. 엄마들의 배는 엉덩이를 넘어선다. 임신과 출산의 습관처럼 배를 본다. 가족들 먹을 음식 재료를 장바구니 가득 들고, 카트를 들고, 손주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기다렸던 배를 쓸듯이 쓸어본다.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안부전화를 했는데,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웃렛에 옷을 사고 싶어서 갔는데, 예쁜 옷들은 사이즈가 없었다. 우울해서 집에 그냥 갔다는 말을 했었다. 물론 많이 먹어서 쪘을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에는 안쓰러움이 있었다. 엄마가 만삭일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같은 아파트에 엄마 고등학교 친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가 와서 도와줬는데, 혼자 몸으로 아이와 집을 돌보면서 몸조리를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속상하기만 했다. 그때는 위로의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그런 엄마가 생각이 나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짧게 지나가는 어머니가 배를 보는 모습에 화가 났다. 당연한 듯 생각하고 있으리라. 조금만 더 이기적으로 살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쓰지 말지, 아이는 소중하지만 전부는 아니고, 남편이 성질 내면 들이 받지 스트레스받게 참냐고, 몸이 힘들면 집안일 좀 미루면 어때,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니니까 집안일하면서 살 뺄 생각하지 말고 제발 쉬라고. 혼잣말로 분노의 대변을 하고 있었다.


 엄마들은 여전히 '가정에서 쓸모'를 생각한다. 여자로 인생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가꾸는 게 어떤 쓸모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쓸모를 따졌었다. '아이가 있으니까, 장사를 하니까.' 생각을 깨는 게 처음이 어렵다. 못 본 척하고 이기적이면 사실 불편하다. 그래서 더욱 쓸모를 생각한다. 화목한 가정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전부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살면서 각자 결핍도 필요한 법이다. 우리 모두 독립된 자신이 필요하다.


 '자신만'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엄마들은 배를 그만 보고, 자신의 속마음을 보자. 배는 지난 시간일 뿐이다. 배는 조금 불러도 웃는 모습이 곱다. 딸처럼 여전하고, 손녀처럼 어여쁘다. 


엄마가 읽을 리 없겠지만,

그 어머니께서 읽을 리 없겠지만,

딸과 손녀들이 읽어주길 바라며.

나도 다시 생각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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