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오마주 Apr 11. 2024

남편 친구 이야기

가족이야기 10. 또 다른 가족 남편 친구



‘눈썹 짙은 파랑새’ 친구, 갈색 펠리컨께

(일종의 헌사)


인사이트, 메타인지, 그런 단어들은 중간에 지지대가 있다. 단어 자체만으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 삶이 계단처럼 혹은 상승 그래프처럼 아름답고 진취적이다. 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 문득 작아지는 그림자를 보며 생각한다. 그림자는 왜 검은색일까? 나는 초록색을 좋아하는데, 색깔을 선택할 수는 없을까? 색깔이란, 늘 눈에 의존한다. 눈은 얼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늘 유심히 본다. 특히 글에서 더욱 그렇다. 글과 문단, 그리고 문장에서 단어까지 다 끊어 읽으면 좋으면서 괴롭다. 가끔은 냉수 한 잔처럼 시원한 한 문장에 리셋되는 순간을 찾는다.


출처 : 나무위키

우리 남편 친구들은 남편처럼 투덜이 스머프 같다. 조금 키 큰 스머프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술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카톡 하는 척하면서 이야기들을 몰래 메모장에 쓰기도 하고, 바보들이라 속으로 낄낄댄다. 물론 자동 반복 청취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돌림노래를 부르는 착각이 든다. 스머프라도 파란 얼굴들이 다 똑같지는 않다. 우리 남편은 사실 앵그리버드를 닮았다. 한 번씩 잘생겨 보이는 마법이 일어나는데, 내가 '파란 안경'같은 사람이라면, 남편은 눈썹 짙은 파랑새 같다.

앵그리버드 블루 + 특별한 눈썹

파랑새가 술 취해서 허우적거리면 그 옆에 갈색 펠리컨이 있다. 서로 둘이 마주 보고 서로 더 잘생겼다, 남자답다, 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짜증 나지만, '어영부영, 여자 저차, 아예 아예' 대답한다. 사실 그런 재미가 없으면 삶이 녹록지 않다. 우리 인생이 겉으로 대단해도 속은 다들 외롭고 무르다. 둘이 어깨동무하는 모습은 두리안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어쩔 때는 악취가 맛있게 느껴질 때도 있으니 말이다.

출처: 나무위키

작은오빠 괴롭히는 막냇동생처럼 매일 괴롭혀도 사람 좋게 웃는다. 우리 집 파랑새 말로는 스머프들 중에 가장 감수성이 뛰어나단다. 태생이 할리우드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유준상처럼 말끔한 외모에 진정성 있는 감수성, 표현도 수려해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야말로 버터 머금은 경상도 토박이 펠리컨이다.

펠리컨이 파랑새와 술을 한잔 먹은 다음 날 찾아왔다. 내가 '글을 쓰고 돌아다닌다'라는 소식을 들었다며 날 자극했다. 그러더니 손을 비비며 웃었다. 책을 사주고 싶다고 했다. 농담은 언제나 하는 거라서,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 문화상품권으로 줬으면 좋겠네요."

파랑새는 왜 나를 말리지 않았지? 빵에 취한 나를 왜 그냥 두었나? 모두가 웃었지만, 나만 웃지 못했다. 아, 진심은 목까지만 허락하는 것이거늘.. (계좌를 알려줬어야 했나?)

얼마 후, 오가는 길에 주웠다며, 문화상품권을 다섯 장 덜컥 가지고 왔다. 두 손으로 내게 내밀었다. 기회가 되면 내가 쓰는 이야기에 자기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순간 얼었다. 눈물이 날 뻔했다. 경상도 남자들은 이게 문제다. 간단하게 감동시킨다. 이런 감동은 정말 오래간다. 말을 많이 하고 생색을 냈다면, 부담스러우니 도로 가져가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게 기뻤다.

책상에 고이 모셨다가, 오늘 책을 사려고 상품권을 꺼냈다. 결제를 하면서 또 한 번 응원의 문장을 되새겨본다.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애틋하다. 응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주저앉아도 조금만 앉고 또 일어나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꼭 응원하고 싶었다. 응원할수록 더욱 열심히 하고 싶게 만들고 싶어졌다.


그저 습관처럼 행복을 바라고, 기대와 실망을 오가며 좋은 것만 가득하길 바란다. 반팔에 재킷을 걸쳤다가, 기분 좋게 걸으며 팔에 건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짝 엿듣고 웃는다. 재밌다, 하며 하늘도 보고 풍경도 본다. 그런 봄날의 온기를 사랑한다. 그런 날들이 소복이 펠리컨에게 내렸으면 좋겠다.



이전 08화 밥솥이나 운전할까(2) 뒷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