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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임 Dec 07. 2024

여의도에 처음 간 오늘

집회는 처음이라

서울 토박이지만 동남쪽 끄트머리에 오래 살아서인가. 여의도는 갈 일이 없었다.

유명했던 63 빌딩도 가보질 못했으니.

공항 갈 때 차에서 멀찍이 본 풍경이 다 일 것이다.


12월 7일.

오늘은 남편과 마음먹고 여의도행을 결정했다. 지하철로 고속터미널역까지 간 다음 9호선 국회의사당역으로 갈아타는 코스는 의외로 간단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환승역에서 생각지 못한 인파를 마주했고, 도무지 열차를 탈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간파.

빠르게 버스로 이동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가니 다시 당황했다. 우리와 같은 무수한 시민들이 버스를 타려고 중앙 정거장을 가득 메운 상태 아닌가. 국회의사당을 향하는 버스는 이미 만차여서 탈 수 조차 없다. 어쩔 수 없이 조금 걷더라도 다른 버스를 겨우 탔는데, 역시 터질듯한 만차 상태.

승객들은 대부분 같은 행선지인 듯했다. 두꺼운 옷과 꾸역꾸역 끼이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기사님의 사이다 발언("국민들이 돌아가며 귀싸대기를 날려야 해")에 웃기도 하고 창 밖의 풍경에 잠깐은 위로가 되었다.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원하는데 희망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대방역에서 내려 30여분 도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같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과 무리 지어 한참 걸으니 신길역이 나온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든다.

날씨는 왜 그리 좋던지. 영하에 가까운 기온에 찬바람까지 더해진 날씨지만 걸음은 사뿐사뿐 의기양양했다. 처음 본 여의도의 빌딩숲과 공원길도 근사했지만 시간이 없으니 사람들을 따라 부지런히 걷는다.


이미 발 디딜 틈 없는 국회의사당 일대. 내가 본 풍경은 고작 저만큼이었을 뿐이지만, 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었다. 결과는 분노와 절망을 안겼지만, 함께 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있음을 목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광적으로 뉴스를 클릭하며 두려움에 잠식되었던 지낸 며칠. 끝나지 않을 현실이 두렵기만 하다. 아니, 이제 시작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 100만 명과 함께한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느 모임이든 분란을 조장할 수 있다며 정치 얘기는 되도록 금지하는 분위기다. 속으로만 움켜쥐고 있다가 오늘은 마음껏 외치고 왔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윤석열은 퇴진하라

-국민의힘 해체하라


정치는 정치인들의 놀음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정치는 곧 삶이고 사회이며, 내 아이들의 미래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난 정치를 잘 몰랐다. 무지했던 20대에는 이명박을 지지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는지 관심 없었다. 박근혜는 안된다며 문재인에게 투표하라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당시 박근혜 당선을 기뻐했던 시어머니(이제는 아니지만)와 남편의 말싸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당시, 아이들이 어리다는 핑계로 촛불집회에 나가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잘못된 사실에 대해 "아니요"를 말할 힘과 나의 무지를 뉘우칠 용기가 조금은 생긴 것 같다. 언론의 눈속임으로 가리고 덮어진 사실들 뉴스공장을 보며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사회의 이슈와 논쟁들을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정치와 사회에 대한 내용들을 부모와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는데,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난 일들 투성이라 요 며칠 마음이 불편했다.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무작정 욕과 비방만 토해내기 전에 지혜롭게 알려주는 부모가 되길 바람 해본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지난날이 마음은 편하겠으나 자식에게 떳떳하려면 안될 것 같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동네에 도착했다. 추위에 온몸을 두드려 맞은 몸도 달래고, 그 와중에 배는 고프니 오늘의 저녁식사는 김치찌개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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