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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밸런타인, 생애 첫 초콜릿

엄마가 두근두근

by 다독임 Feb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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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아들이 여자사람친구를 만나는 날은 매주 금요일 1시.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4시에 학원 가는 친구를 데려다주며 귀가하는 패턴이다.


오늘은 평소처럼 만남이 약속된 금요일, 그리고 밸런타인 데이.

외출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오늘 드디어 첫 초콜릿 받아오는 거냐며 산뜻한 농담을 건넸지만 아들의 반응은 그저 냉담하다. 엄마를 향해 검지손가락으로 '쉿' 신호를 하며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란다. 넉살 좋게 받아치는 재주 따위 하나 없는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럴 때는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아빠를 고스란히 쏙 빼닮은 무뚝뚝함은 누구 탓을 하리오. 이런 남자를 선택한 나잘못이라기 보단, 그냥 태생이 그런 거겠지.


외출 전 부지런히 샤워를 하고, 이틀 연속으로 머리 감는 모습을 보며 '자발성'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기름 고 눅눅한 머리를 고수하는 녀석이 연달아 머리를 감는 일은 몹시 드물기 때문이다. 어제 감았는데 오늘 또 감냐고 모르는 척 물어보니, 애꿎은 샴푸 탓을 하며 다시 제대로 감아야 할 것 같다며 말을 돌린다.


보송보송 비누 냄새를 풍기면서 외출한 아들의 귀가를 조용히 기다렸다. 과연 초콜릿을 들고 올까, 어떤 초콜릿을 들고 올까 궁금한 마음으로. 물론 빈손으로도 올 수 있지만, 어젯밤 아들방 너머로 들리는 초콜릿 어쩌고 저쩌고 하는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선명히 떠오르면서, 주책맞게 엄마의 기대감만 싹텄다.


집에 온 아들을 재빠르게 스캔하는데 어라, 빈손이다. 어떤 반응일지 알면서도 엄마는 자연스러운 질문을 던져본다.


-아들, 오늘 초콜릿 받는 거 아니었어? 빈손이네.

-.....(그 노무 손가락 "쉿")

-에이,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다 먹은 거야? 궁금한데 보여줘~~


잠바 주머니에서 못 이기는 척 작은 상자를 꺼낸다. 몇 개 먹어서 두  밖에 안 남았다며 보여주는데 귀여워서 속으로 깔깔 웃고 말았다. 몰드로 굳힌 초콜릿인지, 정성 들여 만들었을 서툰 친구의 손이 짐작되다가 서로 주고받을 때 분위기를 떠올려보니 내 마음속이 간질거려서. 많이 먹어서 고작 두 알 남은 상자를 보여주면서도 엄마에게 먹어보란 소리 한마디 안 하던 아들. 상냥하던 내 아들 맞나. 

(이놈아, 줘도 안 먹는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방 협탁 위에 고스란히 올려둔 초콜릿 상자는 대놓고 공개하면서 왜 친구에 대해서는 말을 그토록 아끼는지 물었더니 돌아오는 말.

-엄마, 내 사생활이잖아. 존중해 줘.


그래, 키만 컸지 엄마에겐 아직 꼬꼬마 꿀민이인데 너는 벌써 이만큼 자랐구나. 슈퍼마켓에서 킨더조이 사달라고 조르던 그 옛날의 추억들은 엄마 마음속에 잘 담아두고, 훌쩍 큰 네 모습을 존중하며 바라보기로 약속한다.


친구 연애 이야기는 집에서 그토록 떠벌리면서 본인 얘기는 몹시 말을 아끼는 아들. 부디 나의 브런치에 내 아들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읽고 넘어가주시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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