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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Jan 12. 2024

방학맞이 집밥프로젝트

집밥+인스턴트+엄마의 사랑

  12월 28일 e 알림이 왔다. 다른 학교들은 1월 첫 주에 한다는데 1월 1일 새해부터 깔끔하게 방학이다. 새해 연휴를 기점으로 늘어져 있는 아이들을 보자니 고작 첫날인데도 숨이 막혀온다. '그래 연휴니까 하루는 쉬자!' 덩달아 엄마도 주방 폐업을 하고 2024년 첫날은 소파와 한 몸이 되어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월 2일 아침이 밝아온다. 멘털을 굳게 다잡고 오늘은 가뿐하게 아니, 엊그제 꺼내놓고 깜빡한 불고기 처리가 시급하다. '뭘 해야 하지?' 치솟은 물가와 슝슝 빠져나가는 카드값 속에 지혜로운 엄마로 변신해 보자고 마법을 건다. '그래 되도록이면 해먹이자. 급하면 사 먹이더라도 최대한 내가 해보자.'라는 다짐과 맹세를 하며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사실 연말이 되며 겨울 방학맞이 냉장고 청소가 리스트에 있었지만 미루고 미뤄왔던 게 사실이다. 진작해 놨었으면 좋았을 터, 하지만 천천히 하나씩 해치우자는 마음을 다잡으며 뒤지고 뒤져서 양파와 버섯, 삼각김밥용 김을 찾고 "하쿠나마타타~"를 외친다. '그래 됐어!' 쌀과 현미를 씻어 밥을 안치고, 건강하게 먹여보겠다는 각오로 양파와 버섯을 잘게 다져 볶아낸다. 그리고 양념해 놓은 소불고기를 뜯어 볶으며 가위로 난도질을 해댄다. 고슬고슬한 밥을 넣고 주걱으로 칼로 자르듯 섞어낸다.

  사실 이러면 끝이다. 이 상태로 이쁘게 담아주거나 냉동실용기에 일회분씩 담아 놓기도 하지만, 오늘 엄마맘이 색다르니 조금 신경을 써본다. 삼각김밥용 김을 쫘르르 깔고 모양뜰을 놓고 꾹꾹 눌러 뚱땡이 삼각형을 만든다. 뜰이 좀 작은지 딱 맞게 하면 포장을 했을 때 뽀대가 안나더라! 산봉우리처럼 한 다음에 김포장지로 감쌀 때 살짝궁 눌러주는 센스. 이미 난 자뻑으로 믓찐 엄마가 되었다. 편의점에서 사 먹이지 않고 집에서 손수 삼각김밥을 싸주는 엄마로... 간식으로 먹이려 했지만 고이 담아 냉동실로 직행한다. 이건 비상식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상식량은 다음날 바로 탕진해 버린다. 운동 갔다 온 엄마가 오자, 몰래 핸드폰, 패드를 하다 점잖게 원위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지가 돌지만 '이 또한 처음이겠느냐!' '그래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멘털을 잡고 그 핑계로 삼각김밥을 2분씩 돌리고 라면을 끓여 고이 갖다 준다. '컵라면이 아니라 봉지라면 끓여준 나 칭찬해~ 김치는 썰기 귀찮으니까 패스하자!'

  이로써 순간 버럭할뻔했던 나를 잡아본다. '하루, 이틀밖에 안 지났잖아? 아직 방학 안 한데도 있다고 다시 잘 시작해 보자! 암튼 오늘 잘했어~' 엄마는 정신무장의 절실함을 되새기며 방학 동안 먹일 음식을 생각해 본다. 오늘도 햄버거와 버블티가 먹고 싶다고 조르는 딸이 있지만 맛난 거 해준다는 구라뻥을 치고, 꽝꽝 언 냉동밥과 소고기뭇국과 화석이 된 조기를 싱크대에 꺼내놓았다. 모든 밥과 국, 반찬들을 냉동실로 직행하는 엄마가 있으니 그게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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