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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Jan 15. 2024

친정습격사건

진정한 냉털이는 친정마트, 심지어 공짜!

"엄마 나 지금 출발했어!"

"지금 온다고? 안 오는 줄 알았지~"

"간다 했잖아! 아는 줄 알았지! 한 시간이면 가~빨리 갈게"

"그럼 와서 밥 먹어~"

"애들이 여태 집밥 먹었는데 먹나? 치킨 사갈게~" 

  야심 차게 방학맞이준비를 하려 했건만, 일주일이 지나니 슬슬 힘들어온다. 포기는 못하고 결국 친정으로 도피를 선언한다. 양심은 있어 가는 길 치킨을 포장해서 닭고기 알레르기 있는 아빠를 빼고 친정엄마와 함께 닭다리를 뜯었다.

  그동안 바쁘다고 연락도 잘 못하고, 찾아뵙지도 못한 친정에서 엄마와 봇물 터지듯이 이야기보따리가 터지기 시작한다. 아이들 이야기부터 해서 내 이야기, 신랑이야기 그러다 엄마 지인이야기 등등 티비는 너 혼자 떠들어라! BGM으로 깔아놓고 손은 쁜 와중 노동요같이 이야기삼매경에 빠져든다. 그러다 자식들 챙겨주려고 감말랭이, 고구마말랭이, 모과청, 김장, 고추장, 된장, 마늘 빻기까지 하다 손가락, 손목부상에 이어 너무 아파서 주방 폐업을 하여 천하의 우리 아빠가 부엌에서 물 한번 묻히질 않거늘 물만두를 손수 끓여 엄마한테 내밀기도 하셨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뒤였다. 그 모습에 미안하고 죄송하고 눈물이 핑 돌려한다. 딸이 어렵다 바쁘다 하면 버선발로 쫓아오는 부모가 있는 반면, 자기들 바쁘다고 부모님들 잘 지내시겠지 당연지사로 여기고 살아왔던 일들이 죄스럽기도 하다.

  결국 그동안 못한 늙은 호박 가르기가 시작된다. 썩었을까 노심초사 걱정이 되겠만 시들시들한 호박을 고이 갈라 본다. '다행이다.' 속은 멀쩡하다. 아픈 엄마에게 미안하여 칼을 들고 나서본다. 일을 해본 적도 없고 잘하지도 못해 손가락이 아프지만 속으로 참아가며 이거라도 해보자며 덩치 큰 호박 두 개를 호박죽용과 호박꽂이용으로 썰어낸다.

  그다음은 이제 내 <실속 챙기기> 거진 한단에 오천 원이나 하는 파가 비싸 안 사고 미루던 터 현관문 앞에 누렇게 되어 이파리조차 아까운 파가 두 바케스가 있다. 들어올 때부터 눈에 밟혔다. '저건 내 거다!!!'

  어느새 내 딸까지 합세하여 누런 잎을 벗기고 파뿌리를 잘라가며 뽀얀 살을 보이니 너무 행복할 수가 없다. 부자라도 된 것처럼 파다발 속에 파묻힌 내가 뿌듯하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내일 파까지 썰어가야지 하며 머릿속으로는 쟁여갈 리스트를 마련한다.

마늘 빻은 거 1년 치, 겨우내 먹을 파, 냉동실에 화석으로 변신한 각종 나물들, 호박죽, 만두소, 쌀, 배추, 무, 사위 주려고 챙겨놓은 장어, 꽃게, 밭에서 딴 블루베리

까지 셀 수 없어 포스트잍에 고이 적어 싱크대 선반에 붙여놓는다. 친정에 오면 더 바쁘고 힘들고 지친다. 가벼운 손으로 와서 무겁게 짊어지고 트렁크 꽉 채워가려고... 그걸 노리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매번 그랬다. 심지어 오늘은 정말 조금 가져가는 것이다. 가기직 전 마트에 가서 엄카로 장을 봐서 쟁여갔던 시절이 있다.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내가 해드려야지 하지만 늘 받기를 한사코 거절하시고, 계산대에서 실랑이를 하다 결국 지고, 애들 용돈에 생일선물에 트렁크에 짐까지 꽉꽉 실어주신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다가도 힘들어 제대로 못 씻은 싱크대 선반을 씻고, 가스레인지 기름때를 닦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고작 마흔이 넘은 이 딸도 고단해진다.

시키지 않아도 먼저 하게 되고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마구 퍼주는 엄마의 마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했는데 어느새 칠십이 넘어버린 할머니가 되었다. 늘 평생 내 옆 느티나무처럼 버티고 있을 거 같은데 흰머리를 버드나무처럼 늘어트리고 여기저기 관절에 아프다는 말씀 거의 없었는데 이젠 나약해지는 부모님의 모습에 속상하다. 내가 버젓하게 자리 잡아 일으켜드리고 싶은데 나 자신조차 거느릴 힘이 없다. 핏물 단물 다 뽑아먹고 쥐꼬리까지 벽에 못 박기 위해 가져가는 나를 바라본다. 그 찰나 조카들이 왔다는 소식에 날아온 삼촌찬스로 애들은 삼촌집으로 놀러 가고 가는 길마저 마늘과 쌀을 실어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엄마의 쥐꼬리에 이어 동생의 수고까지 싹싹 긁어가는 못된 딸, 나쁜 누나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말하고 표현하고 행동하고 싶다.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도록...

엄마 사랑해요. 난 앞으로도 쭈욱 엄마 없인 아무것도 못해요. 제발, 부디 건강하고 나랑 행복한 시간 많이 갖어요. 최고의 엄마, 사랑스러운 엄마,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우리 엄마, 그리고 딸바보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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