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래전 프렌차이즈 점장으로 일할 때 함께했던 알바생에게 연락이 왔다. 알바를 마치고 호주로 떠난 뒤 몇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이었다. 뉴질랜드에서 1년, 호주에서 4년 해외 생활을 하고 돌아온 동생은 영어가 유창하다. 그런 친구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래 묻어뒀던 갈증이 다시 올라왔다. 영어.
요즘 세상은 참 좋아졌다. 번역기 하나만 켜면 해외여행쯤은 거뜬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직접 떠오른 영어를 내 입으로 꺼내 세상과 연결되는 그 짜릿한 순간을 느끼고 싶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내 입으로 소통하는 삶,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외국어에 대한 이 욕망은 스무 살 무렵부터 늘 있었다.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번번이 하다 말고, 하다 말고, 결국 제자리에 머물렀다. 매번 멈추고 포기하곤 했다.
1년, 3년, 10년.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을 무시하고 편한 시간만 추구했다. 속절없이 시간은 흘렀고 그때 만난 현실은 괴롭기 그지 없었다.
“그때 포기하지 않고 이어갔더라면 지금쯤은…”
이런 후회는 늘 견디기 힘들다. 지금 생각해도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망연자실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가기로 했다. 지나간 세월처럼 후회만 남기지 않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멈추지 않고 전진하기로 한다. 미래의 내가 오늘을 돌아보며 그때라도 계속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매일 시도하고, 연습하고, 공부하며 나아가기로 다짐했다.
그냥 하자. 일단 하자.
그리고 이번엔 학원 대신, 친한 동생에게 직접 부탁했다. 사실 학원비가 비싸기도 했다. 더군다나 지금 회사를 다니며 살고 있는 곳이 역삼이라, 학원비가 일반적이지 않다. 또 서로를 잘아는 이 친구라면 누구보다 생생하게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놀랍게도 흔쾌히, 그리고 감사할 만큼 열정적으로 수락했다.
나도 간절한 만큼,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첫 수업이 있기까지 열과성을 다하여 과제로 내준 대본을 달달 외웠다. 회사 일을 마치고 밤 11-12시에 집에 들어와도 책상 앞에 앉아 영어 문장을 달달 외웠다. 소리를 내어 반복하고, 문장의 구조를 입에 익히며 점점 머릿속이 낯선 언어의 리듬으로 가득 차는 게 느껴졌다. 피곤보다 먼저 찾아오는 건 오히려 묘한 두근거림이었다.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수업 1시간이 10분밖에 흐르지 않은 듯했다.
내년, 신혼여행으로 뉴욕을 계획하고 있다. 그때만큼은 번역기 화면을 들이밀지 않고, 현지인과 눈을 마주치며 내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단순한 여행의 목표가 아니다. 지금 영어를 배우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이제 그만 하고 싶은 것을 마음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제발 직접 행동으로 꺼내자는 것. 그것을 하는 중이다.
이 멋진 세상에 태어났으니, 멋지게 세상을 누비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영어를 통해 자신있게 세계를 탐험 할 생각을 하니 지금 이순간도 짜릿함 온 몸에 가득하다.
생각해보면, 피아노도 그랬고, 파티 기획도 그랬다. “언젠가”라고 미루던 순간들이 지금 행동 하나로 현실이 되었다. 영어 역시 다르지 않다. 퇴근하고 매일 1시간씩, 그리고 일주일 한 번씩의 수업이지만 이 사소한 시작이 미래를 바꿔놓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 브런치 글에 늘 꿈꾸던, 직접 영어로 소통하는 뉴욕의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글을 쓸 것이다.
영어를 마음 속에 두고도 공부하지 않은 나의 70대와, 유창하게 영어로 내 의사를 밝히는 나의 70대는 인생이 다를 것이다. 후자인 나의 노년은, 젊은 나에게 너무나 고마워 하겠지. 덕분에 세상 구석구석을, 그토록 하고 싶던 영어로 직접 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아주 고마운 인사를 할 것이다.
나는 한 번뿐인 이 삶을,
평범 이하였던 내 삶을,
정말 값지게 살며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