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의 첫 튜터, 제나
이곳 시골에서는 어른들을 위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인 'Adult Learning Program'이 제공되고 있었다. 그중에는 영어를 가르치는 ESL 프로그램도 있었고, 대도시에서는 보통 유료로 제공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1:1 튜터링이 무료로 제공되었고, 나는 이 기회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이곳에 이사 온 직후, 남편은 이미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는 제나라는 튜터를 추천해 주었다. 나는 곧바로 연락을 취했고, 다음 날 제나와 첫 만남을 가졌다. 만남은 FCSS(Family and Community Support Services) 센터에서 이루어졌고,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서로 소개를 시작했다.
제나와 나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금방 친해졌다. 그녀는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으며 말했다.
제나는 아들 셋을 키우는 엄마였다. 남편을 사고로 잃고 홀로 아이들을 돌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그녀도 바이킹에 정착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상황을 나누며, 앞으로 튜터링을 어떻게 진행할지 이야기했다.
그렇게 제나와의 인연은 점차 깊어졌다. 신기하게도, 남편이 다니던 교회에서 제나를 다시 만났다. 공통의 접점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갔다.
제나에게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첫째 아들과 연년생인 두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인디지너스, 즉 캐나다 원주민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 제나는 원주민 사회를 떠나 이곳 타운의 한 노부부에게 입양되었고, 그곳에서 입양 자녀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성인이 되어 시내로 독립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해 갓난아기를 입양했다. 기적적으로 3년 후에는 연년생 아들 둘이 생겼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남편의 바람으로 끝나게 되었고,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이후 제나는 떠도는 삶을 살다가 입양 부모의 제안으로 다시 바이킹으로 돌아와 이주했다. 그곳에서 남자친구를 만나 재혼을 준비했지만, 불행히도 그는 기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제나는 슬픔 속에서 교회에 다니며 여러 일자리를 구하던 중, 이 튜터링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제나의 이야기는 마치 드라마처럼 흘러갔지만, 그녀는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자신을 잘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제나는 춤과 연극을 좋아했다. 그리고 가까운 도시에서 연극이 있을 때면 나를 데려가곤 했다. 맘마미아, 시카고, 바람이 불면 같은 공연들이었는데, 처음에는 한국에서 봤던 대학로 연극이나 뮤지컬과 비교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영어로 하는 공연이어서, 너무 졸려서 몇 번이나 눈을 감을 뻔했다. 그러나 점점 제나와 함께 공연을 보며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제나 덕분에 나는 시골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파운드핏, 스트레칭 요가, 탭댄스 프로그램 등을 함께 체험했는데, 특히 파운드핏과 탭댄스에 흥미를 느껴 계속 다니게 되었다. 한국처럼 수준 높은 수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수업은 친근하고 유쾌하게 진행되었고, 탭댄스 수업은 연령대가 다양해서 모두가 함께 웃으며 즐겼다.
하지만 그러던 중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이곳에서 코로나의 여파는 한국보다 훨씬 늦게 찾아왔고, 대응이 미흡했던 탓에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로 인해 정부는 모든 그룹 활동과 외부 활동을 금지시켰고, 그 여파는 이 작은 시골마을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튜터링 수업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언어를 동시에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지속되는 코로나의 여파로 제나는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하자, 온라인 데이팅 앱을 사용하며 여자친구가 생겼다.
온타리오주에 살던 여자친구와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나에게도 소개해주었다. 여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너무 기뻐 보여 잘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응원해 주었다.
그리곤 한 달 후 제나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떨린다며 쇼핑을 하러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승낙했고 즐겁게 길을 나섰다. 우린 쇼핑도 하고 네일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온타리오로 떠났다.
며칠 후 제나는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 이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제나는 그 이후 나와의 약속과 튜터링 수업에 소홀해졌고, 자주 취소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녀가 행복해 보였고, 그녀의 연애를 응원해 주었지만, 점점 취소하는 일이 잦아지자 나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결국 제나는 주변에서 자신과 자신의 여자친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다른 지역의 교회로 옮겼고, 튜터일도 그만두며 얼마 지나지 않아 타운을 떠났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가 친구일 것이라며 언제든지 연락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연락이 끊겼다. 제나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특별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비록 아쉬운 점도 있었고, 끝까지 마침표를 찍지 못했지만, 제나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에게 현지 문화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기에, 나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제나가 앞으로도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