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신뢰한다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친해 지기 위해 서로의 허물을 나누고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쌓이는 것이 우정이고 동료애다. 나아가 사랑이 되면서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오랫동안 쌓여 온 정만큼 서로를 구속시키는 감정도 없지 않다. 그런데 사이가 틀어지면 어떻게 될까?
“서로를 무너뜨리지 못해 분노한다.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상처를 안겨 주기 위해 서슴없는 공격을 가한다. 날카로운 공격에 인간관계의 상처는 패이고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남기게 된다.”
가까웠던 만큼 충격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황폐해 질 수 있다. 서로를 보듬던 정이 서로를 응징하는 악감정으로 변질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사람을 의지한다. 그렇게 의지했던 사람의 배신과 공격은 치명적이다. 상처가 깊어진 사회에서는 사람을 사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사람을 사귈 수가 없다.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관계에서 오는 안전함을 압도한다.
그래서 혼밥, 혼술, 혼영, 혼놀이 유행하는지 모른다. 사람을 사귀는 불편함과 두려움이 사람과의 관계를 기피하게 만든다. 이런 현상은 자신을 고립시키고 사회를 조각 내고 있다. 사회 속에서 관계적 자산이 축소되는 것이다. 관계되는 사람의 숫자가 적어지면 상처도 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관계의 축소는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 오히려 관계가 많아질수록 상처에 강해질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수용력이 넓어진다. 그런 경험이 상처를 이기도록 내성을 강화해 준다.
한 살씩 나이를 더해 가는 사람도 사람을 사귀는 것이 쉽지 않다. 바삐 살던 어느 날 나이를 먹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당황해 하는 사람이 많다. 아~, 내 나이가 언제 이렇게나 됐지? 하는 알 수 없는 허탈함을 느낀다. 주위의 사람을 경쟁자로 여기고 살아 온 날이 후회로 밀려 온다. 나이 먹은 사람은 밖에서 혼밥, 혼술을 못한다. 자신이 겪어 왔던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고 스스로도 그런 것을 용납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산에서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사람과 살아가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안정도 느끼고 존재의 이유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할 수 있고 허물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용서를 받을 수 있고 감싸 안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인간적인 관계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이유는 함께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있어서 행복한 사회가 정말 행복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