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에 희망을 걸어 보지만 매번 별다른 성과없이 비난만 쌓여 간다. 정해진 것은 쉽게 받아 들이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받아 들이지 않는다. 거부감도 심하다. 어쩌면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 남들뿐 아니라 자신과도 싸워 가야 한다면 얼마나 고단한 삶이 되겠는가?
본질적으로 인간은 안전과 쾌락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것 같다. 굳이 고된 길을 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현재에 만족한다. 그런 만족이 지속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 희망 때문에 모든 변화에 완강하게 저항한다.
미래를 보는 자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고달프며 만족할 수도 없다. 현재의 순응이 미래의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안다. 공감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를 준다.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만들며 보수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오늘이 지나면 그렇게 중요했던 그 하루도 가고 그렇게 안달했던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앞으로 다가 올 미래를 위해 오늘의 일부를 쪼개서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행복을 담보해 주는 소중한 일이다. 힘든 일은 뭐라 바꿔 말해도 힘들다. 여름철 옥상 주차장에서 후끈거리는 태양 아래 3시간 동안 차량 유도를 한 적이 있다. 우리 일곱 명은 힘들었다. 그런데도 힘들다는 말을 하기 조차 어려웠다. 밀집 모자에 토시와 썬크림까지 완벽하게 무장을 했다. 숨조차 쉬기 어려운 햇살의 장막 속에서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진입하는 차량을 통제하고 층별로 배분하고 유도했다. 그런 배려가 있어서 고객은 덜 불편했을 것이다. 혼잡의 불편과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서 있어야 했다. 힘든 일은 힘든 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전에는 5시간 동안 그랬었으니.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다.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면 힘든 줄 모르고 지나간다. 일에 대한 만족감이 도파민을 분비시켜 몸의 감각을 마비시키나 보다. 아니면 ‘나 진짜 힘들었구나’ 고 자신의 마음을 달래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힘들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힘들었던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면 고통은 보람으로 승화된다. 힘든 것에 대하여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능동적인 태도로 부딪혀 가는 에너지가 넘친다. 힘들다는 것을 겨우 견뎌냈다고 생각하면 다르다. 내부의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 든다. 힘들었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진다.
가급적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진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마음과 몸이 모두 숨으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더욱 움츠리고 초라해지는 자신만 남게 된다. 편하게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래,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위로해 줘야 한다.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한다. ‘그래, 나는 참 잘했다, 앞으로도 잘 할 것을 믿는다’ 고. 자신에게 신뢰받는 자신은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활기찬 에너지로 충만하다. 힘든 것은 같지만 그 내면의 에너지는 다르다. 자신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