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증을 앓는 조직

by 라이프스타일러

‘육체’ 가 ‘생각’ 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 수 많은 가능성이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생각은 현실의 일에 부딪히다 보면 무뎌진다. 그래서 생각에도 휴식이 필요해 진다.


“사회적 관음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움직일 수가 없다. 우리가 겪었던 많은 사건이 그러면 손해라고 붙들어 앉히기 때문이다. 자신 속에 숨어 버린 자아는 이제 다른 사람을 통해서나 볼 수 있다.”


사라진 나, 묻혀 가는 나, 그것이 편한 나, 현대인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다.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고 나면 새로운 편안함에는 거부감을 갖게 된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친근한 접근이 중요하다. 그 핵심에 공감이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공감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공감은 긍정의 에너지를 끌어 낸다.


문제는 ‘행동은 없고 말만 있다’ 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워낙 교육열이 높다 보니 지금의 사람은 과거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말 못하는 사람이 없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가 똑똑하고 모두가 유식하다. 그런 영향 탓인지 일어나는 일마다 하려는 일마다 서로 의견 차가 크다.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너무나 어렵다. 한국인에게 형성되어 있는 독특한 자존심은 자기 중심적 의사결정에 익숙하다. 타인의 의견을 모조리 무시하기도 한다. 보는 시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말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로 없다. 합의되지 않으니 행동을 담보할 수 없다.


의견이 많다는 것은 다양성을 수렴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이해와 양보의 과정을 거치면 합의에 이를 수 있다. 합의된 내용은 모두를 구속하는 권위의 원천이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의견은 행동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를 보면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은 많고 옳은 소리가 넘쳐 나지만 정작 필요한 행동은 따르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이나 옳은 소리를 증명할 수 있는 행동이 없다. 주장은 옳지만 증명되지 않는다.


관념적인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관념이 지배하는 육체는 행동을 잃어 버린다. 모든 것이 가능한 상상 속에 머물다 보면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육체가 생각만큼 부지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육체가 행동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에서 육체가 자유롭게 놓인다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생각을 정돈해서 육체가 최적화된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생각만 많고 행동을 이끌지 못한다면 천천히 도태되어 갈 수 밖에 없다. 퇴화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생각과 행동은 서로를 부지런히 독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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