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이란 어쩔 수가 없다. 주차장 1층과 2층 사이에 존재하는 주차장을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 말고 누가 알겠는가? 주차장을 들어 서면서 분명 한 층만 올라 갔는데 되돌아 왔을 때는 차가 보이지 안는다. 홀린 듯 존재하는 중간 이층 주차장의 발견은 황당함을 넘어 어이가 없다. 중 이층 주차장을 알리는 많은 안내 표시가 있다.
귀가 따갑게 반복되는 방송도 있다. 그럼에도 매 번의 컴플레인은 모두에게 스트레스다. 안내문이 고객의 익숙해진 관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관성이 지배하는 행동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무시하도록 만든다. 삶도 그런 것 같다. 익숙해진 관성의 삶은 내가 사고하지 않아도 어제처럼 나를 이끌고 있다.”
안심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기대된다. 미래가 안전하게 예측된다는 것은 삶에 커다란 위안이 된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안전한 일로 바꾸어 주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일도 일어나고 지나간 일에 후회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시 그 평범함에 익숙해 질 테니까. 사람의 생활 습관은 참으로 무섭다. 일단 형성된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익숙한 관성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 안전한 생활을 담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심각한 위험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작은 변화를 무시해 버린다. 작은 변화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평균적인 정보로 처리해 버린다. 그런 태도는 어떠한 변화가 찾아 오더라도 적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환경 속에 삶을 고정화 한다. 자신의 삶만이 멈추어 선 채로 천천히 시간 속에 매몰되어 간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런 사실 자체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emart가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상품 판매에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과거의 마트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공급하는 곳이었다. 상품의 공급이 부족했을 때의 개념이다. 지금은 상품이 부족해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지나치게 많은 상품이 선택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문제다. 지금은 만족이라는 감성적 충족감이 중요해 졌다. 고객의 감성을 어떻게 만족시켜 줄 것이냐가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혔다.
고객의 니즈와 욕구에 맞추어 상품이 제공하는 가치를 재구성하는 것이 emart의 핵심역량이 되었다. 상품이 저렴하다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다. 저렴한 상품의 공급은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는 동반자다. 대형마트가 단순히 상품만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고객이 놀러 가는 놀이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즐거운 일일 것이다. 유통을 성숙한 산업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습에 기꺼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아닌 소비문화의 성숙을 통해 소비문화에 새로운 기회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