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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Sep 27. 2024

절제가 주는 풍요로움

#포도의 수확량은 얼마큼이 좋을까 

와인의 품질과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알아가는 요즘입니다. 좋은 와인을 위한 포도가 자라는 데 있어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요건들 이외에 후천적으로 줄 수 있는 영향을 두 가지로 압축하면 노력과 수확량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노력'은 열심히 하면 되는 건데 '수확량'이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건 아마도 노력하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이 이야기인가 봅니다.


수확량을 어떻게 가져가야 한 해 동안 이루어지는 포도 재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걸까요. 풍성하게 많이 달리도록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가 않네요. 


포도의 수확량이 적으면 보다 더 농축된 풍미의 잘 익은 포도를 얻게 됩니다. 흥미롭고 매력적인 와인을 만들 수 있죠.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동반합니다. 전체적인 결과물이 줄어드니 토지 단위당 생산 비용이 높아지겠죠. 그러면 판매 가격도 올라가게 됩니다. 


대풍을 위해서는 물을 많이 공급해 주면 되지만 이렇게 하면 포도의 풍미와 당분이 희석됩니다. 스타일과 풍미를 살리기 어려우니 저가 와인이 될 수밖에요. 


그래서 대부분의 와인은 이 중간 지점에 위치하게 됩니다.


양극단의 선택, 밸런스 게임


예능에서 밸런스 게임이 나오면 저런 걸 물어보나 싶다가도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합니다. 아는 게 힘이기도 하고 모르는 게 약이기도 합니다. 빛 좋은 개살구라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걸요.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나을 때도 있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도 값싼 갈치자반은 맛만 좋죠.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니 그 어느 것이 정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융통성 있게 입장을 취해야겠지요. 


다다익선보다는 과유불급


고민 없이 선택한 삶의 태도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이라면 몰라도 사랑, 행복, 기쁨은 다다익선으로 남겨두기도 했지만 감정도 절제를 잊지 않으려고 해요. 좋은 기분에 흠뻑 취해 긴장을 푸는 순간 제 삶은 늘 새로운 숙제를 가져다 주곤 했습니다. 긴장과 더불어 사는 삶에 익숙해졌어요. 


갓 지은 따끈한 밥에 맛있는 반찬 한두 가지가 좋습니다. 


반찬이 서너 가지 이상 넘어가면 배만 부르고 맛있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의 밥상에 몇 번이나 올랐다가 다시 등장했는지 알 수 없게 말라 버린 반찬 서너 가닥으로 구색을 갖춘 한식 백반집은 발길이 안 갑니다. 지방에는 반찬 그릇을 2층으로 쌓아 올리는 푸짐한 밥상을 주는 곳도 있다는데 제 취향은 아닙니다. 사이드 메뉴가 많은 것보다 메인 요리 한 가지를 더 좋아합니다. 한 가지를 천천히 시간을 갖고 먹을 때 그 음식의 맛도 충분히 느끼고 귀하다는 생각도 들어서입니다. 즉석에서 말아주는 따끈한 우동 한 그릇이 저에게는 더 만족스럽습니다. 


아쉬우면 귀해진다


점심과 저녁 사이 애매한 오후 시간에 허기가 있어 한 김 나간 밥에 그동안 있었는지도 몰랐던 신 김치 한 가지만 곁들여 먹는데 어찌나 맛있던지요. 배도 고프고 다른 반찬도 없으니 그런 것도 컸겠지요. 아쉬워 보니 그제야 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슷하게 주어진 삶을 더 가치있고 소중하게 느끼고 살 수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커질테니 넘치지 않도록 여백을 두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위장을 비우면 모든 음식이 맛있고,

음식이 적으면 아까워서 귀해집니다.


책장이 한산하면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싶고, 

체중이 적게 나가면 옷장에 입을 옷이 많아집니다.


일정을 줄이면 지금 현재를 바라보고 느낄 여유가 생깁니다.

내 마음에 공간이 있어야 다른 이의 삶도 배려하고 아껴줄 품이 생깁니다.


매사를 절제와 금욕으로 빠듯하고 엄격하게 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긴장이 습관이 돼버린 저에게도 휴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다행히 마음 놓고 푹 빠져도 탈 없고 좋은 것들이 이 세상에 있어요. 그 순간만큼은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하고 '만끽'을 허락합니다.


가을빛 담은 청명한 하늘은 듬뿍 마음에 담고 싶습니다. 희망을 고인 푸른 호수에서 긴 두레박으로 물을 많이 퍼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이기에 마음껏 기대 봅니다. (이해인, <나의 하늘은> 가운데 일부)


가을 숲 사이로 부는 맑은 바람도 마음껏 마시고 싶습니다. 자연이 아낌없이 주는 선물은 감사하게 받고, 그렇게 따뜻해진 마음으로 모든 것에 너그러워지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제목은 몰라도 멜로디는 익숙할 거예요. 이 곡이 배경으로 흐르면 좋겠습니다. <Spread your wide wings>로 알려진 시셀의 노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94RJyGLEEI

Bred dina vida vingar, 시셀 슈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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