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라벨 #클래식 음악 #복잡한 이름 #알고 보면 이름일 뿐
- 긴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 정말 많고 다양하다.
-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 처음에는 잘 아는 사람 옆에서 귀동냥하는 게 빠르다.
- 충분히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 즐기려면 돈이 든다.
- 다 됐고, 이름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
두 가지를 마음에 떠올리며 공통점을 적어봤습니다. 제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대략 감이 오실 거예요. 와인과 클래식입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는 주로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드는데요, 브랜드별로 맛을 보면 저마다 독특한 풍미와 매력이 있습니다. 밭이 10m만 떨어져 있어도 전혀 다른 와인이 된다고 하죠. 포도의 맛에 미묘한 차이를 주는 건 토양에 포함된 자갈, 모래, 석회, 그리고 다양한 미네랄 성분 때문입니다.
와인 라벨에 포도밭 이름까지
프랑스 최상급 와인을 나타내는 AOC, 이 라벨에 표시되는 지명이 좁은 범위일수록 고급 와인이라고 보시면 돼요. 지방, 지역명은 물론 마을 이름에 심지어 포도밭까지 씁니다. 밭에 대한 자부심도 만만치 않아 1급과 특급(프리미에 크뤼, 그랑 크뤼)으로 나누니 그렇잖아도 생경한 외국어로 쓰인 라벨이 더욱 복잡합니다.
한창 와인을 공부할 무렵, 모처럼의 약속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와인 리스트를 열어보는데 신세계가 펼쳐졌어요. 당시에는 품종별 아로마와 부케, 지역별 특성이 친숙하니 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메뉴판에서 맛과 향이 느껴졌습니다. 만년필로 쓴 듯 길고 긴 필기체의 그 신비로운 문자는 알고 보면 사실 지역명, 포도 품종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경기도 이천시 OO면 OO농협 임금님표 진미쌀>이나 다름없어요. 그 순간에는 마치 판타지 영화 속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고고학자가 된 것 같았어요.
클래식 음악의 신비도 풀어볼까 합니다. <클래식 사용 설명서(송사비 지음)>에서 아주 쉽고 친절하게 알려준 그대로 가져올게요.
Piano Sonata No.16 in C Major, K545. 1st. Allegro
이 복잡한 코드를 해독하면 이런 의미가 나옵니다.
Piano Sonata No.16 in C Major K545 1st. Allegro
악기이름 I 곡의 형식 I 곡 순서 I 곡의 조성 I 모차르트 I 악장 정보 I 빠르기
알고 보니 뜻은 쉽지만 길이는 여전히 길죠. 그런데 협연에 지휘자, 오케스트라까지 들어가면 더 복잡해집니다. 라디오에서 좋은 곡이 나와서 제목이라도 알아둘라치면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죠, 치마로사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 1악장 '라르게토', 오보에 사이먼 덴트, 블라디슬라프 차르넥키가 지휘하는 포르츠하임 남서독일 캄머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하셨습니다."
음악 검색 앱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유튜브에서 <조성진 비창>으로 검색하면 들을 수 있으니 부담 없습니다. 마음에 들어 몇 번 듣다 보면 비슷한 곡을 추천해 주니 살짝 무서운 세상이다 싶으면서도 편리함은 인정합니다.
클래식과 와인은 입문할 때 진입 장벽이 있기는 해요. 그러다가 내게 맞는 취향을 만나면 그런 기쁨이 또 없습니다. 이름만 해독하면 그 뒤에 이토록 매력적인 세상이 드넓게 펼쳐지니 약간의 수고로움은 감당할만합니다.
그 세상으로 들어간다 해도 어렵고 고급스럽고 비싼 게 전부는 아닌 듯해요. 연예인 누구처럼 로마네 콩티 빈티지 12병들이 세트가 아니라도 저에게는 그와 함께했던 와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와인입니다. 그날 집에 오면서 들었던 곡이 생각나네요. 9월이었고, 자정이 조금 넘은 무렵이었고, 가을비가 왔어요. 몽블랑 향기가 아직도 그윽한데,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S7C4dZyzHrc&list=PL0iwG4Dr06rzy6Q1F_wan27t3C_1ObebG&index=9
본문에서 제목의 코드를 풀어드린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입니다. 지난 세기에 피아노 광고에도 나왔었죠. 소녀들의 로망을 자극하던 그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VfuBfcgF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