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인내, 아름다운 노력, 빛나는 결실
#인내하는 노력 #극복하는 노력 #전진하는 노력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삶에서 의연한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감, 긍정적인 마인드,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행동하는 모습이 멋있고 감동적입니다. 오래전 TED에서 에이미 멀린스를 봤을 때도 그랬어요.
척박한 흙에서 와인을 위한 더 좋은 품질의 포도가 열린다는 앞선 글에서는 포도가 겪는 고된 사투를 안타깝게 생각했다면, 오늘은 다른 관점에서 보려 합니다. 씩씩한 포도 입장에서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동기에서 비롯된 당연한 노력일 수도 있으니까요. 살기 위해 숨 쉬고 먹는 것과 같은 일인 거죠.
<다크호스(토드 로즈, 2019)> 4장. 전략 찾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도에서 태어난 라만은 생후 5개월부터 왼쪽 눈은 실명한 채 시력이 10%도 남지 않은 오른쪽 눈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영국 십자말풀이, 수학 퍼즐, 미스틱 스퀘어, 미로 게임, 체스를 즐기면서 유년기를 보냈어요. 십 대 시절에는 재미 삼아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독학했습니다. 큐브 맞추기를 즐기던 그는 손가락 감촉으로 파악한 패턴으로 푸는 과정을 그려보면서 미니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큐브가 어떤 모양으로 섞여 있어도 다 맞출 수 있는 체계를 알아냅니다.
13세에 나머지 시력마저 완전히 잃게 된 라만은 좋아하는 수학을 공부하는데 주어진 학습 도구들의 한계를 느끼고 자신만의 학습 전략을 짭니다. 수업 중에 빠르게 필기하기 위해 느리고 불편한 점자 대신 자신만의 속기 기호를 만듭니다. 라만은 자신의 묘수들을 잘 활용해 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합니다.
이후 라만은 인도 공과대학교 최초의 시각장애인 졸업생이 됩니다. 그 뒤 코넬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을 주제로 쓴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 후 어도비와 IBM을 거쳐 현재는 구글의 수석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영양이 많은 밭에서 자랐다면 가지와 잎이 너무 많아져 알로 갈 양분이 적어지면서 과실이 빈약해졌을 거예요. 오히려 메마르고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 물과 양분을 찾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 결과 여러 지층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여 매력적이고 풍부한 맛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결핍된 환경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노력한 보답은 고유한 개성과 결실로 돌아왔습니다.
상대방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죠. 메마른 환경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포도를 보면서 먼저 든 생각이 ‘대단하다’가 아닌 ‘얼마나 힘들었을까’인 것을 보니, 그늘진 마음의 습관이 아직까지 남아 있나 봅니다.
일상을 고단하게 하는 결핍을 안고 살아오면서 애썼던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그저 마지못해 버틴 수동적인 인내를 마치 극복에의 노력인 양 착각했던 제가 참 못났습니다. 나아지는 것 없이 수고와 상처만 늘어가던 시간이 아깝습니다. 적극적으로 물과 양분을 찾아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진짜 노력임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입니다. 남은 생은 깊고 강하게 뿌리를 뻗어서 다양한 양분을 듬뿍 흡수하려고 합니다. 어떤 향과 매력을 가진 삶을 완성할지 매 순간 기대하며 힘내고 싶습니다.
조현병으로 재능을 펴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진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천재 음악가와, 그를 안타깝게 여겨 도움을 주려 하는 신문 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솔로이스트>에 흐르던 선율이 떠오릅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오늘은 그가 가는 곳이라면 전쟁터마저도 인류애와 평화로 물들일 것 같은 요요마의 연주로 들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x_IibJH4rA
https://www.youtube.com/watch?v=fygUSgOC9A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