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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Aug 13. 2024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눈맞춤

# 청중과의 아이 컨택 

발표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놀라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요, 특히 몸짓과 시선을 보면서 놀라곤 합니다. 눈이 천장을 향하거나 바닥을 보고 있어요. 그리고 한 곳에 고정되지 않고 계속 왔다 갔다 합니다. 정서불안이 따로 없어요. 차마 카메라나 청중을 바라보지 못하는 겁니다. 


발표자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게 바로 청중의 눈빛이거든요. 그 여러 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집중하고 있다는 건 정말 불편합니다. 오늘 그 걱정을 덜어드릴게요. 청중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지, 발표할 때 어디를 보는 게 좋은지 알려드립니다.


눈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선이 객석과 청중을 향하기만 해도 됩니다. 꼭 눈을 바라볼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넓지 않은 회의실에서 바로 앞에 심사위원 네댓 명이 앉은 채 오붓한 분위기에서 발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표자의 시선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면 이 방법을 써보세요.


1) 상대방의 미간, 코, 턱, 목(넥타이 매듭 부분)을 바라봅니다.


발표자와 청중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미간, 코, 턱, 목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상대는 자신의 눈을 바라본다고 느낍니다. 불편하게스리 눈을 안 보면서도 시선을 건네는 효과가 있어요. 발표하는 동안 심사위원을 고루 바라봐 주세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발표자와 눈이 마주치면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단, 이마는 보지 않는 게 좋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마를 바라보면 공격받는 것 같고 불안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발표와 같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줘야 할 때는 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적인 자리에서 못마땅한 사람이 있을 때는 살짝 해보세요. :D


2) 얼굴과 얼굴 사이 빈 공간을 봅니다.


A, B, C, D 이렇게 네 사람이 가로로 앉아 있다면 B와 C의 얼굴 사이 빈 공간을 보세요. 그러면 B는 C를 보는 줄 알고, C는 B를 보는 줄 알겠죠. 자신을 바라보지는 않지만 심사위원들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은 줄 수 있습니다. 


3) 인상 좋은 사람이 있다면 의지하세요.


모든 청중, 모든 심사위원이 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아요. 외모 자체가 따뜻한 인상이거나, 호의적인 표정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 바라보면서 의지하세요. 두루 고루 바라보면 좋지만 발표자의 마음이 편한 것도 중요하니 그렇게 하셔도 괜찮습니다.


4) 청중이 많으면 시선 처리가 더 쉽습니다.


청중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돌아가면서 바라보면 됩니다. 특정 누군가와 실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 그룹의 가운데를 응시하면 객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바라보는 줄 알 거예요. 그렇게 할 여유가 없으면 뒤쪽에 벽시계든 대상을 정해놓고 그쪽 보면서 말해도 됩니다. 그런데 청중 가운데는 늘 열심히 들으면서 밝은 얼굴로 리액션 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 분들을 의지해서 시선을 유지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시선을 고루 주라는데 얼마큼의 간격으로 봐야 하나요.


적극적인 아이 컨택을 하겠다는 의지로 너무 자주 이 사람 저 사람 보는 것은 지양합니다. 어수선해요. 한 문장이 끝날 때, 혹은 한 단락의 설명을 마칠 때 시선을 옮깁니다.





청중들의 표정이 대체로 밝지 않은 이유


좋아하는 배우나 뮤지션의 공연이 아닌 이상 무대를 향하는 청중들의 얼굴은 대체로 무표정입니다. 뚱한 얼굴이죠. TV에서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를 보면 종종 객석을 비춰주는데요, 카메라의 포커스는 주로 손뼉 치면서 즐기는 사람들에 맞춰지는데 그 옆에 같이 보이는 이들의 얼굴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아요. 앞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무색할 정도로 딱딱한 표정이죠. 심지어 못마땅한 얼굴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 그분들은 자신의 표정이 그런지 전혀 모릅니다.


일반인들은 자신의 얼굴을 모니터링할 일이 별로 없어요. 사진 찍을 때 정도 순간적으로 연출하며 웃을 뿐 평소에는 표정을 만들 일이 없어요. 그래서 자신의 표정 등 바디랭귀지를 영상으로 볼 때 많이 놀랍니다. 


발표자를 두렵게 만드는 청중의 어둡고 뚱한 표정의 속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마음은 호의적인데 자신의 표정이 그렇게 뚱한 줄 모르거나 

2) 내용에 집중하면서 생각하느라 인상을 쓰거나

3) 잘 안 보이거나 잘 안 들려서 신경 써서 듣고 있거나

4) 인상과 표정이 원래 그런 모습이거나

5) 내용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서

 

5)의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대다수가 1)~4)에 해당합니다. 여러분의 발표를 듣고 있는 청중의 표정이 호의적이지 않더라도 얼굴만 그럴 뿐 마음은 따뜻할 거다 생각하면서 괘념치 마세요. 


남자 임원과의 눈싸움에서 이긴 사연


한 번은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남자 임원 한 명의 인상이 썩 좋지 않았어요.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다 거짓말이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벼르는 듯 의심 가득한 표정이었어요. 어쩌면 발표 내용에 집중하는 것일 뿐 그분이 원래 가진 표정이 그저 곱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40분 동안 진행하는 긴 발표 시간 내내 거슬릴 것 같더군요. 그래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압해 버렸습니다.


여자들이 많은 엘리베이터에 남자들은 혼자 못 탑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 여자는 타요. 이렇게 남자들이 가진 쑥스러움을 이용하기로 했죠. 그래서 그 임원에게 주로 시선을 강하게 꽂았고 일반적으로 아이 컨택하는 시간보다 길게 쏘아봤습니다. 대신 얼굴 전체적으로는 아주 활짝 웃었죠. "제 말이 맞그등요!" 의혹 가득한 그분에게 보낸 무언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렇게 서너 번 레이저를 발사했더니 이내 그분이 눈을 돌리면서 고개를 숙이시는 거예요. 그 후로는 저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대신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겨 집중하셔서 저는 편안하게 다른 분들과 고루 아이 컨택을 하며 발표를 잘 마쳤습니다. 심사위원에게 잘 보이고 좋은 인상을 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카리스마를 발산하세요. 


청중이 이곳을 보고 있다면 발표를 잘하고 있다는 신호


발표자는 청중과 눈을 맞추며 소통하고 싶은데 도통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일까요. 청중이 모두 고개를 숙인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면 얼마나 심란하겠어요. 그런데 모두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정말 발표를 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두가 스크린을 보고 있을 때입니다. 청중의 시선이 발표자가 아닌 스크린을 향하고 있다면 안정적으로 잘하고 있는 겁니다. 눈은 슬라이드에, 귀는 내 목소리가 온통 집중하고 있다는 거죠. 내용도 잘 구성했고, 말도 잘하고 있는 거니까요.


발표가 시작되면 그 자리의 주인공은 여러분입니다.


청중의 반응을 보면서 호의적이면 더욱 그렇게,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것 같으면 쉽게, 지루해하면 재미있게 연출하는 것도 발표자의 운영 능력입니다. 청중의 반응을 무시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만만하게 보지도 마세요. 발표자가 어떤 내용을 말하려나 궁금해하면서 그 시간을 기대한다고 생각하세요. 발표를 망치기를 바라는 청중은 없습니다. 잘하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여러분의 편이라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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