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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 vs. 호러>, 무대 위 당신의 선택은?

# 무대공포증 # 설레서 떨린다 # 공포로 떨리지 않는다

by 은수빈

무대 공포증은 무대를 발판으로 일하는 연예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어떤 가수가 자신이 무대 공포증이 있음을 고백할 때 적잖게 놀랐습니다. 자신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길 바라면서 어떻게 대중 앞에 나서서 들려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양립할 수 있는지 말이죠. 그 자신도 많이 힘들어서 극복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습니다.


대중의 시선을 받는 일, 무대에 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도 성향에 따라 그럴 수 있음을 지금은 이해합니다. 노래 부르는 순간의 감정, 연기하는 순간의 몰입을 보고 저 사람 자체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거였어요.


제가 봉사 활동을 다니던 시각장애인복지관에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오기도 했어요. 뮤지컬 배우나 성우 지망생도 있었고, 아나운서, 현직 배우들도 있었습니다. 복지관에서 가끔 강의를 부탁하기도 했어요. 마이크 쓰는 요령이나 소설 녹음할 때 연기하는 부분에 대한 레슨을 받으면 좋잖아요.


지정된 도서로 목소리 기부하러 왔던 배우가 있어요. 친하게 지내던 복지관 직원이 그 배우가 얼마 후 특강을 할 거라는 정보를 미리 알려왔어요. 평소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와 연기가 돋보이는 배우였는데, 특강을 앞두고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하더랍니다. 저에게 미리 귀띔 한 이유가 있었어요.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을 해달라는 거였어요. 앞에서 호응도 많이 해주고 실습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대본에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전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는지 강의 내내 수줍어하고,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TV에서는 완벽하게 보이던 사람이 그러니 인간미가 느껴져 사람들은 잘 따라주었고 강의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번쩍 손을 들고 앞에 나가 진행을 도와준 저는 별도로 인사 나눌 기회도 주어졌지요.


무대를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도, 심지에 우리가 보기에 거침없고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인 사람들도, 모두가 무대 자체를 즐기는 천성을 타고난 것은 아니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만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극복하는 거죠.


그러니 어쩌다가 가끔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아야 하는 자리가 불편함은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지당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떨려서 못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떨리는 일이라고 여기세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낍니다. 그러니 특별히 야속할 일도 자책할 일도 아닙니다.


여러분, 관점을 달리하면 이렇게 좋은 기회가 또 없습니다. 모두가 피하고 어려워하는 일이니 내가 조금만 신경 쓰면 엄청나게 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 시리즈를 읽으며 저와 함께 오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앞에 나가서 말하는 거, 정말 별거 아니라고요. 게다가 멋있게 말하는 방법은 얼마나 쉽고 간단한지요.


저도 앞에 나가면 떨리기는 하는데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해서 큰 불편은 없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고 두려운 분들이 주로 코칭을 받으러 오시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을지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효과가 있었어요. 여러분께도 알려드릴게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은 누구나 있으시죠. 주로 어떤 때였는지 떠올려 봅시다.


100m 달리기 질주한 후에,

밖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렸을 때,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았을 때,

공연 시작 전 기대감에 설렐 때,

귀중품이 제자리에 없음을 발견했을 때,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안전 안내 문자가 왔을 때,

기차역이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기차가 출발하거나 비행기가 이륙할 때,

부정맥,

기타 등등...


심장은 두 가지 경우에 두근거림을 알 수 있습니다. 공포와 설렘입니다. 100m 달리기와 부정맥은 체력과 건강상의 문제니 번외로 하고, 감정과 관련된 콩닥거림만 생각할게요.


그렇다면 무대를 앞두고 온몸이 진동하도록 뛰어대는 심장은 어떤 쪽의 이유 때문일까요. 강의할 때는 이렇게 여쭤보곤 했습니다. "발표를 앞두고 긴장되는 마음과 터질듯한 심장 박동은, 목줄 풀린 대형견과 눈이 마주쳤을 때와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되어 입장을 앞둔 때 (혹은 이상형이 갑자기 눈앞에 등장했을 때) 중에서 언제 와 비슷한가요?"


무대를 향한 공포가 아니라 무대를 향한 설렘으로 가슴이 뜁니다.


그래요. 설렘입니다. 멋있게 잘하고 싶은 바람, 사람들의 기대에 충족하고 싶은 간절함, 최고라고 인정받고 싶은 기대감이 모여 설레는 마음으로 심장이 뛰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박동을 공포로 인한 두근거림으로 여기고 무서워하는 거예요.


스스로에게 거는 마법


이 모든 것을 아는 저도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호흡이 빨라지는 순간 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이나 강의를 앞두고는 괜찮은데, 행사 사회 볼 때 그래요. 발표나 강의는 준비한 대로 제 역할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행사는 내내 현장 분위기와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과 돌발 상황 리스크에 대한 긴장감 때문입니다.


리허설 때도 괜찮았는데, 시작하기 직전 1분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두근거려요. 그러다가 막상 시작하면 차분해지는 걸 알아요. 그래서 시작 카운트다운처럼 심장이 덩달아 콩닥거릴 때 저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왜 이래, 잘할 거잖아. 연습 많이 했잖아. 리허설 때도 다들 멋있다고 했잖아. 잘할 거면서 왜 그래. 오늘은 특히 일도 잘하는 기획사잖아. 다들 현장 팀워크도 좋잖아. 성공적인 행사가 될 거야."


이렇게 길게 다 외워서 하는 건 아니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해요. 핵심은 이 한마디입니다. 왜 이래, 잘할 거면서.


발표든, 면접이든, D-Day가 다가오면 그동안 잘해오던 것을 다 잊고 갑자기 너무 떨리고 긴장된다며 걱정을 호소하곤 하세요. 오늘은 잘했지만 내일은 실수하면 어떡하느냐, 긴장해서 다 잊으면 어떡하느냐, 준비 안 한 거나 한 번도 생각 안 해본 걸 물어보면 어떡하느냐. 그럴 때 저는 말씀드립니다.


"죄송해요. 그런데 저는 정말 걱정이 하나도 안 돼요."


하고 싱긋 웃어드리면 다들 안도가 섞인 한숨과 함께 멋쩍은 표정으로 웃습니다. 고맙다면서도 제가 위로하느라 그런 거겠지 싶은 얼굴이라면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그동안 연습하시는 거, 나아지시는 거 제가 다 봤잖아요. 솔직히 처음에는 저도 걱정됐어요. 특히 그 이상한 습관 교정해야 할 때는 좀 심란하기도 했어요. 이번에는 손이 많이 가겠다, 시간 내로 될까, 그래도 일단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너무도 잘 따라와 주셔서 지금은 죄송하지만 걱정이 안 돼요. 처음 오셨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때 녹화한 거 보여드리면 힘이 좀 나시겠어요?"


이렇게 짓궂게 말씀드리면 그제야 다들 마음의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이 되더군요.




깜깜한 무대가 보입니다.


시간이 다가옵니다. 곧 당신도 무대에 올라갑니다. 하게 될 작품이 무엇인지, 역할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커튼이 올라가고 조명이 켜져야, 어둠 속에 가려져 지금은 보이지 않는 무대 배경과 소품, 의상, 무대를 바라보는 청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당신이 즉석에서 연출할 수 있습니다.


불을 켜자마자 어떤 장면이 나올 것 같은 가요?


뭉크의 '절규'를 닮은 가면을 쓴 잔혹한 살인마가 나올까요?

당신을 기다리며 앉아 있던 청중들은 모두 좀비였을까요?

아니면, 친구들이 기쁜 얼굴로 노래하며 촛불 켜진 생일 케이크로 당신을 맞이할까요?


무대에 서는 순간, 당신은 당신이 아닙니다. 연기자라고 생각하세요. 오늘 프리젠터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잘해서 할리우드 영화 속 마지막 장면처럼 졸업식 축사가 끝나자 강당의 모두가 기립해서 환호하는 장면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라고 생각하세요. 자신을 직접 드러내는 것보다 객관적인 인물로 여기고 감정 이입을 하는 것도 무대 공포를 이기는 방법입니다. 간지럽고 민망하죠? 그런데 저를 믿고 한 번만 해보세요. 저, 잘 가르치고 성과도 좋은 코치예요.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두 번째, 무대공포증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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